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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Nov 03. 2015

그림에서 메타픽션까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세르반테스의 '돈 끼호떼'

마치 그 화가는 자기를 담고 있는 그림에 나타나는 동시에 그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에 한꺼번에는 나타날 수 없는것처럼. 그러나 그는 이 두 개의 서로 양립할수 없는 가시성(可視性)의 문지방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미셸 푸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패러디한 피카소의 작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 1656)’


어린 공주가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시녀들은 어린 공주의 비위를 맞추며 그녀를 달래려고 하고 있고, 옆에는 광대와 난쟁이, 개가 서 있다. 


공주와 화가 사이에는 시녀 마리아 사르미엔토가 쟁반에 병을 받쳐들고 공주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있으나 공주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다. 그 반대편에는 시녀 이사벨 데 벨레스코가 몸을 기울이며 서 있다. 이사벨 데 벨레스코의 뒤에는 수녀의 복장을 한 마르셀라 데 울로아가 옆에 있는 사람과 조심스레 담화를 나누고 있으며, 그들 앞에는 애완견 한 마리가 앉아있고, 그 뒤로 여자 난쟁이 마리 바르볼라는 정면을 쳐다보고 있으며, 어릿광대 혹은 난쟁이인 듯한 니콜라스 데 페르투사토는 애완견의 등에 발을 대면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림의 왼편에는 화가가 커다란 캔버스 앞에 팔레트와 붓을 들고 서서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면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저 뒤편 층계로 이어진 문 앞에는 여왕의 시종인인 호세 니에토(Don José Nieto Velázquez)가 커튼을 걷으면서 정면을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공주의 뒤편 벽에는 거울이 하나 걸려있다. 그 거울에는 희미하게나마 위엄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나이다. 


미술사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수많은 해석을 낳은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1660)의 이 그림은 원래 스페인의 국왕인 펠리페 4세의 가족을 그린 그림이다. 


40여년동안 왕실화가로 재직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긴 벨라스케스의 단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스페인 왕실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19세기가 이르러서야 프라도 박물관을 통해 대중에 공개된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모사하여 58점에 이르는 연작을 남겼으며, 마네 역시 마찬가지로 벨라스케스를 존경하였으며, 달리는 이 작품을 모사하여 독특하게 재해석된 그의 작품을 남겼다. 벨라스케스의 이 작품은 인상주의의 대표기법인 알라 프리마(Alla Prima) 기법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 1656



“그는 지금 꿈을 꾸고 있어. 그가 무슨 꿈을 꾸는 것 같니?”  트위들덤이 물었다.
“그걸 누가 알겠어.”   앨리스가 대꾸했다. 
“이런, 바로 너에 대한 꿈이야!”  트위들덤이 의기양양하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왕이 너에 대한 꿈을 다 꾸고 나면, 네가 어디에 있을 것 같니?”
                                                                                                             -루이스 캐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누구의 시선인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처음 보는 순간 신선한 매력이 느껴진다. 그 이유 중 대부분은 아마도 아마도 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바로 작품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그의 모습은 그가 그리는 그림 속에 들어있다. 그렇다면 화가는 이 그림의 창작자인 동시에 이 그림 속의 등장인물이다. 만약 정말로 화가가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라면 그는 어떻게 포즈를 취한 자신을 그릴 수 있었을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순간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전체가 완성되어 우리 앞에 선보이고 있다. 그 순간 이 그림은 허구가 되고 화가의 의도대로 교묘하게 배치된 진실이 되는 것이다. 


이 작품 전체가 거울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와 마르게리따 공주, 그리고 시녀들과 난쟁이 광대들이 커다란 거울에 비쳤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화가는 초상화를 그리는 풍경을 배치해놓고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다. 그 풍경의 주인공은 화가 자신이다. 화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초상화를 그리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그러나, 화가가 바라보고 있는 커다란 거울을 가정할 경우 커다란 거울에 비친 이 방의 풍경 뒤편에 있는 또 하나의 거울과 그 속에 비친 왕과 왕비의 위치가 모호해진다. 또한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서 왕가의 가족들을 배치한다는 것도 사실과 어긋날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또다른 거울상 활용을 볼 수 있는 '거울을 보는 비너스'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면, 마르게리따 공주의 초상화를 그리는 중에 벌어진 풍경으로 볼 수도 있다. 어린 마르게리따 공주가 초상화의 모델이 되는 동안, 궁정 어릿광대와 난쟁이, 애완견이 공주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입을 삐죽거리며 지루해하고, 시녀들은 당혹스러워하며 어린 공주를 달래고 있다. 그리고 화가의 반대편에서는 공주를 지켜보고 있는 왕과 왕비가 있다. 


또는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는 벨라스케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는 중 마르게리따 공주와 시녀들, 난쟁이 등과 함께 있는 화가 자신을 그린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왕과 왕비는 그림 속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림의 시선 속에서 왕과 왕비는 이들을 지켜보는 반대편에 존재하며, 거울을 통해서만이 간접적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을 보는 감상자 역시 왕과 왕비와 같은 편에 위치하고 있다. 즉, 왕과 왕비인 감상자는 이 작품에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그림의 피사체이며 그림의 상황 속에 들어있는 존재임과 더불어, 이 그림의 감상자이며 이 모든 상황의 관찰자이다.

 

이 작품은 현실과 적절히 배치한 허구가 섞여있다. 화가는 그림 속에 존재하며 관찰차를 바라보고 있고, 관찰자는 그림 밖에 존재함과 동시에 그림 속 거울에 그 모습이 반영되고 있다. 이 그림을 보아서는 누가 관찰자이고 누가 파사체인지 헷갈리는 독특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마치 『돈 끼호떼』처럼 현실과 허구가 뒤섞이고 창작자와 창작된 세계의 경계가 흐릿한 기점에 서 있다.      



돈 끼호떼는 산손 까르라스꼬 학사를 기다리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산초가 말한 그 책에 쓰였다는 자신의소식을 들을 기대로 부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야기책이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나리의 위대한 업적을 기록해 둔 시데 아메떼 베넹헬리는 축복받을 겁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 누구나 즐겨 읽을수 있도록 아랍어에서 평범한 우리 에스빠냐 말로 번역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은 그 호기심 많은 자 또한 축복받을 것입니다” (산손 까르라스꼬 학사)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 끼호떼> 2권 중에서



돈 끼호테의 저자와 메타픽션


벨라스케스가 ‘시녀들’이라는 독특한 작품을 그리기 약 반 세기 전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탁월한 이야기꾼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1547-1616)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대, 최초의 근대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위대한 작품 『돈 끼호떼(Don Quijote de La Mancha, 1605/1615)』가 탄생했다. 


『돈 끼호떼』는 무모함의 대명사로 많이들 불리운다. 기사소설에 미쳐서 자신이 방랑기사라고 믿고 사실은 농부인 시종 산초와 함께 거인이라고 착각한 풍차로 돌진하는 돈 끼호떼의 모습은 유머와 함께 그려지곤 한다. 전쟁에서 왼쪽 손을 다친 채로 귀국했던 세르반테스는, 스페인에 돌아와서 라 만차의 시골 향사 알론소 끼하노라는 영감의 이야기를 쓴다. 



알론소 끼하노 영감은 자신이 방랑기사라고 착각하여 돈 끼호떼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이고, 시골 농부 산초 빤사를 꼬드겨 자신의 시종으로 데리고 방랑을 떠난다. 그는 방랑기사에 걸맞게 흠모하는 귀부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골 농부의 딸을 엘 또보소의 둘시네아라고 이름붙이기도 하고, 모험을 찾아다니며 온갖 사고를 친다. 


돈 끼호떼의 이 모험 과정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액자식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백미는 각각의 액자식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고 또 얽혀서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가장 독특한 것은, 이후에 나온 속편에서 저자인 세르반테스가 ‘돈 끼호떼의 모험’을 번역한 번역자라고 언급되면서, 작품 속의 인물이 작품을 이야기하고 작가가 작품 속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돈 끼호떼』와 ‘시녀들’이라는 작품이 나올 무렵, 스페인은 항해를 통해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제국이 되어간다.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와 종교들이 섞여있던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이 시대에 카톨릭을 통해서 단일성을 찾으려고 한다. 다중적인 시선은 하나의 도그마로 묶여버렸다. 이러한 시대 맥락 속에서 『돈 끼호떼』와 거의 동시대의 미술작품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독특한 작품이 나온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예술가는 그 민족의 안테나로서, 시대가 가져온 폭력을 읽고 그것에 반항한다. 『돈 끼호떼』와 ‘시녀들’에서는 그 시대에 대한 반항을 읽을 수 있다. 다중적이고 복잡한 시선과 주체와 객체의 혼란은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에 의해서 탁월한 작품으로 드러났고, 그것은 이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참고

미겔 데 세르반떼스(민용태), 『돈 끼호떼 』Ⅰ,Ⅱ, 창비, 2005     

루이스 캐럴 원작/마틴 가드너 주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나라의 앨리스』, 북폴리오, 2006

허경, <푸코의 벨라스케스-‘시녀들’ 혹은 표상의 표상성>

조민현, 〈시대의 위기와 예술적 상상력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의 인식론적 상관성을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문학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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