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내가 큐레이터를 직업으로 택한 이유는 인류의 문화유산과 예술을 위해서 몸을 바치겠다는 숭고한 의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수학도 못하면서(지금도 못한다. 그러나 수학을 언제나 짝사랑했다)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바득바득 우겨 지방 국립대에 들어가고 난 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10여년간 내가 현실성없는 선택을 해왔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책을 출간했으며(유감스럽게도-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다행스럽게도- 많이 팔리지않았다), 이야기를 쓰는 일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생각만으로 물리학과에 들어온 대학교 1학년 생이었던 나는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대학원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박사과정까지 끝내고 바로(는 아니겠지만, 포닥에 강사를 거쳐서) 교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외에 다른 미래를 생각해보지 못했다. 교수로 일하면서 방학 때 소설을 쓰는 것-그게 현실성 없던 나의 유일한 미래 계획이었다. 내가 얼마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지 않았느냐 하면, 대학원 때 1년 심지어 휴학까지 하고 국립 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도, 사실 뮤지엄계통에 진출할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원래 석박사통합과정이었던 대학원을 어쩌다보니 석사까지만 하고 나오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공부를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기에, 글을 쓸수 있는 일을 찾다가 기자로 일했다. 물론 기자의 업무 중 '기사를 쓰는 것'은 좋았지만, '돌아다니는 것'이나 '사람들을 만나 술마시는 것'은 정말로 싫었다. 그 와중에도 꾸준히 책을 몇 권 썼고, 출간했고, 지금은 대부분 절판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몇년간을 일하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직업을 구해야 되는 때가 왔다.
기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나 술자리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앞으로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여전히 작가가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와서 지원을 받아 카자흐스탄에 관한 책을 출간하고나서, 책을 한 권 출간할 때마다 한 6개월간 겪곤 하는, 성공적인 작가가 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컸다) 그러다가 내가 학예사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학예사로 일하면, 책상머리에 앉아 소설을 쓸 수 있겠지, 라는 게 내가 큐레이터를 택한 이유였다.
뮤지엄 계통은 공립과 사립으로 나뉘는데, (당시 성공적인 작가가 될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휩싸여있던) 나는 글쓰기에 할애할 기간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공립계통보다 준비기간이 짧은 사립 박물관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거기서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박물관 유물을 정리하고 연구하고 전시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갑자기 너무 마음에 들어버렸던 것이다.
사립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나는 유물과 관련된 연구발표를 했고, 전시를 기획했으며,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나는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나는 소설보다 연구발표문을 썼고, 전시에 관한 보도자료와 해설을 썼으며, 박물관 교육에 대한 책에 저자로 참여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유일한 정체성이 큐레이터요, 내 삶의 목적이 소장품 연구와 전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큐레이터로 여러 곳에서 일을 하고, 현재 일하고 있는 이 기관에 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큐레이터로서의 내 커리어만 계속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큐레이터가 아닌 나의 삶은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속된 말로 "언제부터 그랬다고?" 말이다.
큐레이터는 창의적인 직업이다. 그래서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군 중에 하나라고 한다.사실 연구하고 새로운 전시를 창조해내는 이 직업에 대한 만족이 너무 컸기에, 나는 다른 창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창작이라는 것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글쓰기'를 말한다.
큐레이터로 일한 뒤에도 나는 소설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에 출간한 소설은 몇 년 전에 쓴 것을 다시 고쳐쓴 것에 불과했다. 소설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수첩에 적곤 했던 버릇도 사라져버렸다. 나의 몰스킨 노트는 이제 1년에 단 몇 장만이 채워질 뿐이다. 나는 일기도 쓰지 않았다. 페이스북을 한 뒤로 유사 일기장으로 짧은 글만 쓸 뿐, 진정한 일상에 대한 고찰은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스트레스. 집에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보다 멍하니 TV를 보며 일을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망각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나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 일에 더욱 몰입했다.
그러다 어제. 문득 생각이 났다: 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작가의 데이잡(Day Job)으로 택했다.
물론 큐레이터로 일하는 것이 즐겁고 나에게 맞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큐레이터가 된 이유는 글을 쓸 여유를 벌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그 일을 사랑하고 몰입하고 (심지어 견학을 온 학생들에게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자부심에 철철 넘쳐 설명하고) 그 일이 나에게 잘 맞는다고 할지라도, 처음에 택했던 이유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려는 것은 글쓰기였다.
나는 전시를 만드는 일을 사랑한다. 새로운 작품을 만나고 작가를 연구하여, 남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점을 발견할 때는 전율이 느껴진다. 작품에 대해 해설을 쓰고, 전시를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쓰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도슨트가 따로 없어서 내가 해설을 해야 할 때도 나는 너무너무 즐겁게 한다. 심지어 전시실에 있는 사다리와 망치(그리고 다른 사람이 쓰지 못하게 숨겨놓은 내 전용 장갑)조차 사랑스럽다. 전시를 꾸미고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새로운 소설을 창작하는 것처럼 스릴이 넘친다.
물론 직업을 사랑하는 것이,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비록 박봉에 고되긴 할지라도) 작가의 데이잡으로 택했긴 해도 거기서 내가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열정을 발견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내가 이 직업을 택한 본질적인 이유를 잊어버릴 만큼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작가만큼이나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그러나,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나를 지나치게 힘들게 만들 정도로 큐레이터로서의 정체성에 몰입할 이유는 없다. 나는 큐레이터로서의 나에서 조금 떨어져서 냉정하게 모든 것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큐레이터로 일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바로 글을 쓰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