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첸치와 유디트: 목이 잘린 여자와 목을 자른 여자
“데릴라와 유디트, 아스파지아와 루크레티아, 판도라와 아테네같은 여자들처럼, 여자는 이브인 동시에 성모 마리아이다. 여자는 우상이자 하녀이며 생명의 원천이자 암흑의 세력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
중세 유럽에서 여성들은 이중적인 이미지로 간주되었다. 그 시대 여성은 이브이면서 성모 마리아였다. 남성을 타락시키고 원죄를 짊어지게 한 유혹자임 동시에 성스러운 예수의 어머니였다.
성경에 따르면 이브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신이 절대로 먹지 말라고 금한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도 그것을 권하게 된다. 선악과를 먹은 두 사람은 결국 최초의 낙원인 에덴에서 쫓겨나고, 인간은 그때부터 원죄를 짊어지고 고난의 삶을 살게 된다. 중세 시대 여성은 성경에 따르면 이브의 후손으로서 감각와 유혹의 상징이 된 것이다.
기독교의 지배적인 영향 속에서 중세 사회는 10세기 수도원 운동 등을 거치면서 성직자의 독신의무가 강화되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영향으로 성(性)을 죄악시하는 풍조가 퍼지게 된다. 10세기에 이르면 근친혼이 금지되었고, 장자상속제가 공고화되면서 장자를 제외한 아들들은 상속을 받지 못하고 수도사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남성들은 결혼의 상대자를 찾기가 더욱 힘들어졌고, 교회는 종교를 통해서 더욱 성을 혐오하는 풍조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바탕 아래에서 이브의 후손이자 유혹자인 여성은 성적으로 억압된 남성의 욕망을 투사하는 부정적인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이미지 속에서 여성은 유혹자이자 죄악의 근원으로서 간주되었고, 여성적인 것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12세기부터 시작된 성모 마리아 숭배의 유행과 아울러 중세 유럽에서 특징적인 ‘귀부인에 대한 연모’도 찾아볼 수 있다. 장자상속에서 소외되어있던 기사들에게 남편을 잃은 귀부인과의 결혼은 다시 재산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었다. 일례로 중세 잉글랜드에서는 영주인 남편을 잃은 부인이 군주의 지시로 특정 기사와 결혼하는 방식으로 거래되기도 했으며, 유명한 아키텐의 엘레노르와 같은 상속녀와 결혼을 통해 왕들이 영토를 획득하는 방식도 들 수 있다.
흔히 중세 기사들이 여성에게 바치는 낭만적인 발라드나 돈 끼호테가 빠져들었던 기사소설 속에서 방랑기사들이 귀부인에게 바치는 찬가는 바로 결혼을 통한 재산과 영토의 획득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분이 높은 귀부인에 대한 기사들의 연모와 함께,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성모 마리아 신앙은 여성에 대한 숭배와 성녀로서의 여성 이미지를 후대에 전해주었다.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1577-1599)는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상습적으로 자신을 학대하고 강간했던 아버지 프란체스코 첸치를 살해한 죄로 참수되었다. 그녀를 동정한 계모 루크레치아와 오빠 지아코모의 도움으로 베아트리체는 아버지에게 독약을 먹이고 망치로 머리를 쳐서 죽인 뒤, 실족사를 가장해서 높은 난간에서 시체를 떨어뜨려서 처리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상은 곧 밝혀지고 말았다.
프란체스코 첸치의 만행을 잘 알고 있던 로마 시민들은 베아트리체와 그녀의 가족들을 살려달라고 탄원했지만, 당시의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첸치 가문의 부를 차지하기 위해 베아트리체를 비롯한 범인들을 모두 사형에 처한다.
베아트리체 첸치는 참수형을 당하게 되는데, 참수형을 당하기 전 그녀의 모습을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가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그 그림은 이후 귀도 레니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던 바로크 시대 여성 화가 엘리자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 1638-1665)에 의해서 모사된다. 스탕달은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미술관에서 보고 영감을 받아서 『첸치 일가』를 썼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예술작품에 영감을 받아 창작을 하는 이 현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또한 영국의 시인 셸리 역시 이를 주제로 하여 시극을 쓰기도 했다.
잔인한 살인사건을 저질렀지만, 베아트리체 첸치는 한편으로는 희생자이기도 했다.
시라니의 그림 속 베아트리체 첸치는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젖은 눈동자로 어깨 너머를 돌아보고 있다. 이제 곧 사형장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아는 체념의 눈동자이자, 복수를 끝냈다는 안도의 눈동자이다. 웃고 있는 것인지 울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도록 미묘하게 굽어있는 입술은 마지막으로 무슨 말이라고 하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레니가 베아트리체 첸치라는 여성에게 감정이입을 했듯이, 시라니의 그림 속 여성도 화가의 공감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사형수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어쩌면 성스럽고 순결하게 보이기도 하는 이 여성의 아름답고 처연한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첸치 일가와 관련된 이 떠들썩한 사건으로 인해서 실존인물인 베아트리체 첸치가 살인자이자 순결한 희생자로서 많은 화가들과 문학가, 조각가들의 변치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면, 중세 이후로 지속적으로 소재가 되어온 성경 속 인물이자 또 한 사람의 살인자 유디트는 시대에 따라 그 이미지가 크게 변화해왔던 것을 볼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경,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당시의 인물인 유디트는 구약성서의 ‘유디트서’의 주인공이다. 젊고 아름다운 과부였던 유디트는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시리아의 장군인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가서 유혹한 뒤, 그가 잠든 사이에 목을 베어 바구니에 담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목이 성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본 앗시리아 군대는 퇴각을 하고 이스라엘을 지켜낸 유디트는 평생을 홀로 조용히 살면서 생을 보낸다.
유대민족의 영웅담 속 인물이었던 유디트는 중세시대 신학자들에 의해 유디트의 이런 겸손과 정숙의 이미지로 그려지며 기독교 신앙과 융합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유디트는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감정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은 미술 작품 속에서 유디트는 인간적인 감정과 고뇌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를 비롯한 공화정을 옹호하는 도시에서 유디트는 정의와 정숙의 상징으로 정치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메디치가의 상징 중 하나로까지 자리하게 된 유디트는 이후 메디치가의 몰락과 더불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띠게 된다. 16세기 북유럽의 르네상스 화가들은 유디트에게서 종교적인 색채를 벗기고, 그녀를 유혹하는 관능적인 여인이라는 이미지로 해석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이미지들은 이후 종교개혁과 함께 사라지게 되지만, 유혹하는 관능적 여인으로서의 유디트의 이미지는 19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부활하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유디트는 자주 살로메와 혼동되곤 한다. 사실 이전 시대에도 많은 화가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디트와 살로메는 서로 겹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에 이르면, 유디트는 적장을 유혹해서 살해한 영웅이고 살로메는 의붓 아버지 헤롯왕을 춤으로 유혹하여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게 만든 요부라는 차이점이 사라진다. 클림트의 유디트에 이르면 ‘목을 베는’ 행위와 에로틱한 유혹의 이미지가 그녀에게 남는다.
신화 속 살로메나 삼손을 유혹했던 데릴라처럼, 목을 베거나 혹은 머리카락을 잘라 힘의 원천을 없애는 행위는 프로이트의 거세공포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거세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유혹적이고 강한 여성에 덧씌우는 요부 혹은 팜므 파탈La Femme Fatale라는 비난이다.
남성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팜므 파탈인 클림트의 유디트는 에로틱한 이미지로 나타나게 된다. 황금빛 색채 속에서 가슴을 드러낸 채 따뜻한 열기와 흥분이 감도는 얼굴로 목을 벤 남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유디트의 모습은 살인에 대한 후회나 적장에 대한 혐오감보다는 마치 황홀경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클림트의 유디트는 사악한 것으로 여겨졌던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참고
시몬느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김현란, ‘중세 유럽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 : 혐오(misogyny)와 숭배(cult) : 사회구조적·제도적 요인을 중심으로’《西洋中世史硏究》 제27호, 2011 pp.69-98
신옥희, ‘타자 ( 他者 ) 에서 주체 ( 主体 ) 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여성 해방 사상과 현대 페미니즘’《한국여성철학》 제11호, 2009, pp.105-142
박수윤, 「유딧도상 연구-르네상스 시대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10
박성희, 「클림트와 쉴레의 작품 속 여성 이미지 비교 연구」, 강원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