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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Oct 01. 2015

너무 준비없는 여행

뜬금없이 블라디보스톡 2

이번 여행은 사실 너무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경찰들한테 검문을 당할 것을 대비하여 온갖 법령을 출력해오긴 했지만, 사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데다가 부산에서 겨우 2시간 걸리는 곳이라, 나는 제주도 여행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제주도에 처음 가본게 작년 여름 출장으로 간 것이 다였고, 그 때는 순진하게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제주도 관련 유머, 예를 들어서 제주도에 갈 때는 여권이 필요하다는 유머를 진짜로 믿고 있었던 육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블라디보스톡 여행과는 상관없으니 패스) 


블라디보스톡에 온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듯 했다. 공항에서 만난 한 여학생은 택시 타기가 겁나서 아예 공항에서 노숙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세계 여행을 하는 또 다른 커플 역시 언어 문제로 택시를 어떻게 탈까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택시 타고 흥정하고 가면 되지 뭐


이게 내 머리 속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출입국심사를 통과할 때도 별 생각이 없이 항공사 직원들이 서는 라인에 서 있다가 화들짝 놀라서 외국인 심사하는 곳으로 다시 옮겨가느라고 거의 끄트머리에 나오게 되었다. 게다가 심사를 받고 나가는데,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줄 알고 가만히 서 있다가 출입국 심사원이 "아가씨девушка, 나가라고, 나가라구요!"하고 소리를 지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겨우 나오니, 처음에 택시를 쉐어하여 같이 가기로 한 여학생이 한국인 커플을 데리고 나를 기다리고 서 있다. 택시를 쉐어하여 가기로 하고 돈을 모은 뒤 택시를 잡았다. 젊은 택시기사였는데, 러시아어로 한 군데 섰다가 가자고 하자, 1200루블을 부른다. 나는 처음에 인터넷정보에 나와있는대로 1500루블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커플들에게 여학생은 대학생이니까 그냥 우리가 세 명이서 500씩 내어서 1500루블(택시기사가 바가지를 안씌우는 게 너무 고마워서) 주는 게 어떠냐고 물었고 그러기로 했다. 그렇게 호텔에 와보니 피로에 찌든 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무뚝뚝하게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나는 여기서 또 머리가 안 돌아가서 몇 번 바보 같은 말을 하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대강 짐을 푼 뒤에 밤이지만 근처를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혼자서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을 일이다. 공항에서 노숙할 것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처음 본 여학생을 설득하여 내 호텔로 같이 데리고 왔는데, 그렇게 같이 온 여학생은 나와 달리 꽤나 용감했다. 나는 용감하기보다는 처음보는 사람을 잘 믿는 것 뿐이지만, 밤에 밖에 나가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하는 여행자였는데, 그녀는 어찌나 용감했던지 모르는 여자(그러니까 여기선 나)를 따라 호텔로 오기도 했던 데다가, 한 밤중에 호텔 근처를 탐험해보자고 나서기까지 한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바로 옆의 슈퍼마켓에 갔다가, 내친김에 그냥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블라디보스톡이 이렇게 작은 줄 그 날 밤 알았다. 여행 가이드북에 나온 역부터 혁명광장, 그 외에 박물관 기타등등… 지도상에서는 좀 멀었던 모든 것들이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고, 또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식이다.  


그러나 며칠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고 공항에서 계속 기다리고, 저녁 때 오므라이스를 먹고 체기가 있던 나는 너무 피곤했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해변도로를 돌아서오는데, 차를 탄 남자들이 우리에게 휘파람을 불고 가기도 하고, 야타족을 만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피곤, 피곤, 피곤. 같이 온 여학생만 생생하다. (그녀에 대해 말하자면, 모 학교 대학생이었는데, 공항에서 노숙한다기에 나는 싱글베드 하나가 더 있는 내 호텔에서 함께 숙박을 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9일 밤을 같은 숙소에서 묵고, 다음날 반나절을 같이 다니다가 헤어졌다.) 


첫 해외여행이라는 그 여학생은 노트에 갈 곳과 필요한 러시아어를 빽빽하게 적어놓고 밤에도 어찌나 씩씩하게 돌아다니던지, 생각없이 해외나온 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살았었고, 파리에서 1달을 있어봤으며, 세르비아와 우크라이나를 돌아다니고, 일본과 런던도 가봤지만 거긴 지나치게 안전하니 그냥 패스한다 해도 그녀보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서 '밤에 부패경찰한테 총맞을 수도 있잖아'하고 떨고 있는 반면에 그녀는 그저 씩씩하다. 나는 그 안전하다는 일본에서도 물론 겁나서 어두워지면 밖에 안나가긴 했지만,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내가 지나치게 겁만 먹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두 시간에 걸친 한밤중의 도시탐험은 주요 관광지를 보고, 야타족 두 팀을 만나고, 예상과는 달리 외국인한테 정말로 관심없는 경찰 아저씨들을 만나는 것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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