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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Jun 20. 2016

"미스" 허드슨이 있는 박물관

덕질을 위한 런던의 하룻밤3

박물관이란 참으로 고색창연한 느낌을 주는 단어이다. 


왕과 부유한 자들의 보물창고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박물관이 대중에게(지금과 같은 의미의 '대중'은 아니다) 공개된 것은 근대 이후였다. 타국에서 들어온 진귀한 물건들과 아름다운 미술품들이 가득찬 그 공간들을 처음 걸었던 보통 사람들은, 아마도 유물이 주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짓눌러 할 말을 잊었을 것이다. 사실 박물관은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여주고자' 지었던 것은 아니다. 박물관의 기능은 보존하고, 수집하고, 연구하는 것이며, '보여주는 것'은 박물관의 많은 기능 중 하나였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교육하는 것'이 포함되었지만, 박물관은 기본적으로 유물이 주인공인, 유물을 위한 마지막 성소였다. (물론, 한국 정부 관계자는 이걸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박물관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보스톤에서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이 19세기 말에 세워진 뒤로,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의 성소에서 교육을 위한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박물관의 한 하위분류인 미술관 역시 현대미술과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미술은 유형의 작품에서, 무형의 아이디어가 투사된 작품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현대의 미술관들은 동시대의 그림이나 조각작품을 단순히 수집만 하지 않고, 한 공간에서 예술가들의 창작을 보여주고 관람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퍼포먼스의 공간이 될 때도 있고, 영상 상영이나, 경험의 공감이 될 때도 있다 


제주도를 중심으로는 관광을 위한 체험 박물관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신기한 유물을 보여준다거나, 아예 유물이 없이 경험 제공하거나 교육을 제공하는 박물관이 생겨났다. 이들은 전통적인 박물관의 범주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시대변화에 따라서 현대의 박물관은 이렇게 다양하게 분화해나가고 있다.




셜롬홈즈 박물관이 '박물관'인 이유는, 하나의 주제로써 (비록 그 유물이 허구의 것일지라도) 일종의 유물을 통해서 관람객들에게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다시피 박물관은 유물의 진정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허구의 인물을 주제로 한 셜록 홈즈 박물관에는 유물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진정성이란 대체 뭘까. 사실 유물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그 속성 안에 '진귀'거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었던 것이 아니라, 역사와 시대의 맥락 속에서 그러하다고 합의된 것이다. 박물관의 유물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얼마나 매기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가짜 체험을 선사하는 이 박물관의 '유물'이 가지는 가치는, 그 박물관을 찾는 이들이 이것을 '가치있게 여기는 과정'을 통해서 결국 진정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의미가 부여된 물체를 보기 위해서 박물관에 가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셜록 홈즈 박물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셜록 홈즈의 유명한 사냥모자와 왓슨의 중절모이다. 우리는 당연히 이것이 시드니 파젯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것을 홈즈의 상징으로 오롯이 받아들임으로써, 바로 이 베이커 가 221B라는 장소의 맥락 속에서 사냥모자를 진짜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건물의 구조는 층 별로 한 두개의 방이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계단을 올라가며 만나는 수 개의 방 가운데에는, 셜록 홈즈에게 보낸 의뢰인의 편지가 전시되어 있는 곳도 있었고, 셜록 홈즈의 모델이 되었던 아서 코난 도일의 스승의 사진을 비롯해서 빅토리아 시대를 살아가던(홈즈에게는 동시대이겠지만) 사람들의 사진들이 벽에 액자로 걸려 있는 방도 있다. 셜록 홈즈와 왓슨이 함께 앉아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법한 2개의 안락의자가 벽난로 앞에 놓여있기도 했다. 당연하겠지만, 벽난로 위에는 유명한 '그 여자(The Woman)'인 아이린 애들러 의 사진이 당당하게 놓여있다.



아이린 애들러가 등장하는 단편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은 추리물로서는 다소 허접하지만 셜록 홈즈의 연애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더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는 셜록을 동성애 코드를 통해서 패러디하기도 할 정도로 여성에 대해 관심이 없는 셜록이 유일하게 자신도 동등한 존재로 평가하며 '그 여자'로 부르던 아이린 애들러 이후 팬들의 상상력에 따라서 숨은 악당이 되기도 하고 셜록과 비밀리에 결혼하기도 하면서 셜록 홈즈의 세계를 확장시켜나가는데에 기여했다. 아이린 애들러와 크게 관계는 없지만, 이러한 셜록의 비밀 결혼설은 이후 렉스 스타우트가 창작한 식탐가 탐정 '네로 울프'가 셜록 홈즈의 아들설로도 확대된다. 


이렇게 셜록 홈즈의 세계가 팬들에 의해서(혹은 팬 겸 작가에 의해서도) 더욱 확대되고 추가되는 과정을 거쳐서 셜록 홈즈는 마치 실존 인물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던 거처럼, 셜록 홈즈 박물관에서 보이는 수많은 유물들은 이것을 수집하고 전시한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와 관람하는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들이 만나서 하나의 합의점을 찾게 된다: "이 곳은 과거 셜록 홈즈가 살았던 곳이다" 





셜록 홈즈 박물관에 가면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이 입었던 치렁치렁한 치마와 흰색 에이프런을 한 여자들이 돌아다닌다. 셜록 홈즈 시리즈(영화이건, 드라마건, 소설이건 간에)를 한 번이라도 접했던 사람이라면 그녀가 누군지 당연히 안다. 바로 셜록 홈즈의 하숙지 주인이었던 허드슨 부인이다. 


셜록 홈즈 박물관에 가면 사실 수 명의 허드슨 부인을 만날 수 있다. 수 명의 젋은 여인네들이 빅토리아 시대 하숙집 아줌마가 입었을 복장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허드슨 부인이라고 하기엔 좀 젊다. 아마도 나이든 여성을 고용할 수 없었던 것 같은데, 박물관 직원들은 그 설정의 오류도 천연덕스럽게 넘겨버린다.


"아하, 허드슨 부인이시군요!"


나는 셜록 홈즈 박물관에서 만난 한 명의 친절한 허드슨 '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만난 이 하숙집 주인 아줌마는 통통한 장밋빛 볼을 한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였다. 내 말에, 허드슨 '부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오, 아니예요. 전 미스 허드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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