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파리에서 한 달 살기
절대로 그렇게 보이진 않겠지만, 사실 나는 내가 욕망하는 것들을 적당히 줄여서 실용적인 것으로 바꾸는 습관이 있었다.
대학은 장학금을 노리며 미련없이 집 근처인 부산의 국립대를 택했고(사실 동생이 서울의 사립대에 간걸 보면 내가 집안 형편을 지나치게 비관했던 게 분명하다), 대학교 때는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는 대신에 일본어를 써보겠다는 이유로 일본 여행을 택했다(아직 지원도 안했던 대학원을 위해 유럽배낭여행 비용을 저축하고 싶었던 거다). 유학을 가야 할만한 학문을 간절하게 공부하길 원했지만 대신에 국내 대학원이 (유일하게) 메리트가 있는 한국학을 택했다.(사실 대학원 면접 때도 내가 읽은 책과 관심분야가 한국학 쪽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리고, 나는 어떤 형식으로든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 희망을 해외봉사단으로 적당히 타협을 봤다.
생각해보면 내 삶은 지나치게 큰 이상과 이상을 충족시킬 수 없는 현실(그리고 지나치게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는 나의 소심함)로 가득차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4년 전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한 달 간 떠나기로 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주위 어떤 사람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파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15년 영화 <사브리나>를 보았을 때였다.
사브리나는 파리에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도중 창 밖에서 누군가가 연주하는 La vie en rose를 들으며, 창문을 열고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음악을 배경으로 사브리나의 편지, 그러니까 영화에서는 독백이 이어진다. 사브리나는 데이비드를 짝사랑하던 어린 소녀였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파리에서 2년이 지난 지금, 자신은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며 자신의 감정에 당당할 수 있는 성숙한 여성이라는 것을 안다는 미소다. 그녀는 편지에 그렇게 쓴다. '다시는 사랑이나 삶에서 도망치지 않겠어요'라고.
아코디언의 La vie en rose가 울려퍼지는 그 장면을 보면서, 파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파리에 가서 사브리나가 라이너스에게 추천했듯이 비가 내리는 날 우산 없이 볼로뉴 숲에 가서 젖은 밤나무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색에 잠겨보고, 20세기의 위대한 지성들이 걸었던 그 거리를 걸으며 파리의 공기를 마셔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말했던가? 나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을 보는 타입이라고.
나는 파리에 아무 이유없이 무작정 가고 싶다는 비실용적인 내 희망을 스스로 비웃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고 일을 했으며 학위를 땄다. 심지어 유일하게 내가 여행을 갈 수 있을 만큼 바쁘지 않았던 시기에도, 파리 여행 대신에 발칸 현대사 체험을 위한 세르비아 행을 택했다. 파리 여행은 지나치게 몽상적이고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파리는 근 10여년 간 나에게 일종의 닿을 수 없는(혹은 일부러 닿지 않았던) 존재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어쩌면 나도 파리를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다시피 파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낭만으로 가득찬 황금빛 도시는 확실히 아니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매연과 똥냄새로 가득찬 지하철과 담배냄새보다도 더 삶에 찌들어있는 생활인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파리에 직접 가지않고 여행 체험담만 읽어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현실을 알면서도 파리에 가고 싶었다. 프랑스어로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서 세느 강변을 산책하며 뜯어먹고, 이슬에 젖은 포석 위를 파리지앵처럼 걸어다니고 싶었다. 파리에 가서 그런 삶을 살아본다면, 내가 내 삶에서 찾지 못한 뭔가를 발견할 것만 같았다. 사브리나가 파리에서 결심했듯이 '다시는 인생에서 도망치지 않으리라'는 깨달음을 얻을 것만 같았다.
물론 여행 한 번 간다고 누군가 '옜다' 하고 그런 깨달음을 던져주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 시대, 여행의 의미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여행은 그저 낯선 곳을 가는 것 뿐이다. 여행을 간다고 해서 새로운 나 자신이 되었다고 꾀는 여행기는 전부 순 거짓말이다. 내가 현실 속에서 비참하고 짜증스럽다면 여행가서도 비참하고 짜증스러울 게 분명하다.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바뀌었다면, 그것은 여행으로 인한 게 아니라, 단순히 '내가 바뀌었기 때문에' 바뀐 것 뿐이다.
한 달 간 나의 파리 체류도 그랬다. 나는 파리에서 한국에서 발표할 세미나 발표자료를 미리 만들고 있었고 밤이면 노트북에 저장해놓은 영화를 보며 야식을 먹었다. 한국에서 그랬듯이 나는 파리에 와서도 거절 못하는 성격으로 귀찮은 사람들에게 시달렸고, 이따금씩 짜증스러웠고 비참했으며 외로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편안했다. 내 프랑스어가 형편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파리 시민들의 쿨하면서도 수줍음이 가득한 태도가 끌렸기 때문이다.
파리에 있을 당시 매일 들렀던 역 앞 카페에서 알제리인 여주인이 내려주는 에스프레소의 향기를 사랑했다. 장날 시장에서 파는 뜨끈한 수프에서 온기를 느꼈고, 길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뿡'처럼 들리는 'Pont' 발음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덩치 크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아프리카계 청년들이 서 있는 버스 정류소와 이것저것 간섭하다가 거스름돈을 헷갈려버리곤 하는 점원 아저씨가 있는 아파트 앞 슈퍼마켓을 지나가는 것도 즐거웠다.
나는 살아오면서 늘 내가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뭔가 대단하게 뛰어난 게 있어서 남들과 다른 것이라고 말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 희망사항일 뿐이고, 사실 나는 사람들 속에 섞이질 못하는 주변인이었다. 어딘가 거슬리는 존재, 어딘가 예민하고 괴짜같은 존재. 그게 바로 나였다. 어느 지역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나는 늘 그런 존재였다.
관광객이었던 주제에, 파리에서 나는 내가 나 자신으로 그저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 도시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이상하고 섞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 그대로 존재해도 괜찮으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늘 섞이기 위해서 나 자신을 어설프게 위장해왔었고 그 위장은 늘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카자흐스탄에서도, 세르비아에서도, 어디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아무리 비참하고 외롭고 짜증스러울 지언정, 온전히 나 자신이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 전 친구가 파리 여행을 앞두고 나에게 연락을 해왔을 때, 나는 문득 4년 전 나의 파리 체류가 생각이 났다.
나는 친구에게 볼로뉴 숲의 아침 공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내가 파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신없이 걷고 또 걸었던 파리의 거리와 지독한 냄새가 나는 메트로, 다양한 언어만큼이나 다양한 사기꾼, 도둑들이 있는 도시.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느꼈던 도시. 파리에서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쨌거나, 파리 여행은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충동에 몸을 맡긴 모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