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애리 Jul 07. 2016

지난 한 주을 위한 변명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에 관하여

시간이란 인간의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라고 하면 누구나 시계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시계는 시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다 계량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도구일 뿐이다. 면으로 이뤄진 2차원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존재는 선과 점 밖에는 보지 못하듯, 4차원 시공간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간이란 보이지 않는 어떤 개념일 뿐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인 시간은 우리가 절대로 마음대로 쓰거나 남에게 빌려줄 수도 없으며 통제할 수도 없는 차원이다.


이렇게 물리학까지 끌어다대면서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을 보면, 지난 주에 내가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어찌됐듯 합리화하려는 게 분명하다.




시초는 단 한 번의 늦잠이었다.


며칠째, 비가 오고 습한 장마다.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몸은 처지기 마련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아침, 나는 30분 동안 스누즈 알람을 계속 끄면서 늦잠을 잤다. 그 날은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글을 쓰지도 못했고, 헐레벌떡 사무실로 들어가서 멍하니 컴퓨터 화면만을 들여다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집에 와서는 아침에 계획을 지키지 못했던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비를 핑계로 저녁 운동을 취소하고, 저녁 늦게까지 드라마를 보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밤 12시. 나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결국 새벽 2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단 한번의 어긋남은 한 주간 이어졌다. 일주일 내내 늦잠을 자고 운동도 안었다. 처음에 뭘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공부도 하나도 하지 않았고, 밤 늦게까지 간식을 먹어댔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시간을 살해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오늘 하루만 이러는 것 뿐이야. 오늘은 너무 oo하니까.'라는 식으로 매일매일 합리화를 하면서.


어쩌면 애초에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어학시험을 공부하겠다, 두꺼운 철학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마스터하겠다, 팔굽혀펴기를 100번까지 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겠다, 이런 목표가 아니라, '그냥 무미건조한 삶을 바꾸기 위해서 목표가 필요해'라는 뭔가 애매모호하고 목표답지도 않은 목표였기에 더 방향을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시 목표가 뭔지 모르겠다 등등 하는 고민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의미없는 나날을 다시 일주일 이상 보내고 나니, 처음 이 '월든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의 질문(물론 나는 생각하기 귀찮아서 회피해왔다)으로 되돌아온다: "대체 나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싶은가?"




사실 처음부터 내가 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내가 인생이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다고 느낀 것은 목표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있는 목적을 찾기 위해서는, 현재 내 삶에 있어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찾아내야 했다. 즉, 그 말은 내가 현재의 내 삶 전체를 제대로 직면하며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인생이 가장 비참하여 불만족스럽다고 여긴다. 이러한 현재에 대한 불만이란 진보를 위한 동력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현실은 늘 이상과 동떨어지며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삶은 피하고 싶은 수십가지 장애물로 가득차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삶의 형태를 바꾸거나 현재의 삶을 피하는 모험을 하기엔 잃을 것이 너무 많기에, 다들 안주를 택하고 그저 불평만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어른스러운 삶이라고 배웠고, 책임감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것으로 여겨왔다.


내가 애초에 '월든 프로젝트'라고, 문학적인 인용까지 해가면서 거창하게 내 삶을 개선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불만족때문이다. 그리고 이 불만족 속에서 많은 부분은 현재의 내 직장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 안정적이고, 지루하며, 그래서 (좋은 의미가 아닌 나쁜 의미에서) 공무원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꼬박꼬박 월급을 주긴 하지만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서 내 사고와 얼마 남지 않은 창의력, 내가 가진 생기를 갉아먹는 크립토나이트인 현재 나의 직장.


많은 직장인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도 떠날 생각을 수십번도 더 했다. 그러나 소위 '책임감' 혹은 '어른스러움' 때문에, 직업에 대한 내 열정을 갉아먹는 직장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모험을 하기에 나를 가로막는 것과 나에게 기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변명이다. 한 살이라도 젊었던 시절에 나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경제적 고통까지 감내하면서 열정적으로 뛰지 않았던가.


해법은 간단하다: 원하는 걸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제는 이 직장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숨이 막히는 경직된 조직과 일상적인 모멸감, 그리고 지리적이고 문화적인 고립감 속에서 일을 하고 살아가면서,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삶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떠나기가 두려워진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혼자서 징징거리면서 자기계발서를 읽거나, 'Eat, Pray, Love'를 읽으면서 막연히 떠남을 동경하는 것 뿐이다. 결국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 처럼 '길들여'졌고, '어른스러워'졌으며, '책임감을 가지게'되었다. 결국 내 삶의 무미건조과 지루함은 이런 불만족에서 기인되었고, 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불만족을 회피해가면서 식단과 운동과 작은 목표만들기 따위로 적당히 덮으려고 했던 것이다.


확실히,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말은 맞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을 위한 오트밀 팬케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