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파리에서 한 달 살기
내가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던 것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초겨울이었다. 초겨울이지만 파리의 날씨는 무척이나 따뜻했다. 여행의 시작이라 흥분으로 들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달 동안 살 짐을 좀 무리다싶을 정도로 큰 트렁크에 짊어지고, 게이트에서 어쩌다 만나서 수다를 떨게 된 한국인 관광객과 함께 공항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시간이 되면 만나기로 약속하며 각자의 숙소로 향하는 노선도를 보면서 RER에 올랐다. 나는 북아프리카 이민자의 가방 같은 커다란 트렁크를 내 앞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내 주위에는 수많은 다국적 관광객들이 들뜬 표정으로 여행을 기대하며 수다를 떨어대고 있었고, 현지인로 보이는 덤덤한 표정의 (역시나 다국적인) 시민들은 지친 표정으로 집으로 실어줄 열차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파리를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떠올리는 그 곡 'La vie en rose'였다.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아코디언을 든 한 남자가 멋들어진 동작으로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객실 안의 관광객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그 곡을 연주했다.
오! 정말 파리스러워!
내 앞에 앉아있던 미국인 관광객들이 탄성섞인 감탄을 내질렀다. 저녁 나절 선선해지는 공기 속에 울려퍼지는 아코디언 소리는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짧은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연주자를 따라 들어온 조수가 객석을 돌아다니며 수금을 시작했고 홀린 관광객들은 아낌없이 방금 환전했던 유로화를 주머니에서 내어놓았다.
아코디언을 든 남자는 꾸벅 인사를 한 뒤 다음 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열차는 '파리스러움'에 감탄할 준비가 되어있는 비행기에서 갓 내린 수많은 관광객들로 꽉 차있었고, 그는 관광객들에게 파리의 관문에서 만족감을 주고 먹고 사는 직업인으로서 열차가 출발하기 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다음 칸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라는 도시를 동경한다. 파리에 가서 살아보고 싶어하며, 파리에서 낭만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하며, 파리지앵이 되고 싶어 한다. 파리지지엔 시크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파리라는 도시가 표상하는 것은 세련됨과 도회적인 것 그 이상의 무엇이다. 그런데 이 파리스러운 것이란 대체 뭘까.
내가 꿈꾸었고 또 생각하는 파리스러움은 뾰롱통한 표정의 프랑스 모델들도 아니고, 와인과 베레모도 아니며, 아코디언 악사도 아니다. 내가 느낀 파리스러움은 사람들 속에 있는 어떤 것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다.
'파리스러운' 아코디언 연주를 들었던 며칠 뒤, 나는 또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때 헬륨 풍선 몇 개를 든 아주머니가 지하철에 탔다. 갑자기 문이 닫혀버렸던 터라 풍선을 연결한 실 하나가 문틈에 끼어버렸다. 헬륨 풍선은 바깥에서 지하철 창문을 통통 대면서 따라왔고 다행히 다음 정거장에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까지 잘 살아남았다.
그때 어떤 승객 중 하나가 풍선을 든 아주머니에게 제안을 했다. 풍선이 끼어있는 걸 기관사가 못 본 모양인데 두 개를 끼워서 가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장난이 시작되었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을 거치면서 풍선이 두 개, 세 개로 늘어났고, 객실 안의 승객들은 전부 그 모습을 보면서 범죄의 공모인이 되어 깔깔 대며 웃었다. 내 옆에 있던 어떤 할머니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저거 좀 봐, 이번에는 들킬거야.....(그 다음 말은 못 알아들었다)...'라고 의견을 내어놓기도 했고, 범죄의 주동자인 승객 아저씨는 승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익살스런 미소를 짓기도 하고 시치미 떼는 척 하기도 하며 좌중을 웃겼다.
사실 달리 웃기지도 않는 장난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깔깔대며 한참을 웃어댔다. 맞다. 나는 방금 '우리는'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 같은 부류에 대한 동질감과 함께 타인에 대한 배타성을 드러내며 사용하는 바로 그 단어 '우리'. 그러나 내가 지금 사용하는 '우리'에는 애초에 배타성이 들어있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형성된 공감을 매개로 하여 각기 다른 사람들이 마치 친한 친구인 듯 의견을 내어놓으며 한마음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바로 이 객차의 분위기가 바로 외국인인 나에게도 '우리'라는 표현을 쓰게 만들었고, 마치 나도 익살극 속의 하나 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나는 분명 언어에 익숙지 못하고 낯선 타인이었지만 그 장난을 보고 웃고 있는 그 순간 만은 그들 속에 있었다.
한국의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장난을 친다면, 그래서 좀 웃고 싶다면 우리는 드러내놓고 말을 걸거나 얼굴에 표나게 파안대소를 하진 못한다. 대신 웃음이 나려는 볼을 씰룩거리면서 머리 속으로 딴 생각을 해서 그 웃음기를 쫓아버리도록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파리의 지하철 객실 안에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던 낯선 타인들은 풍선을 매개로 하여 수십가지 의견을 내놓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으며 자연스럽게 범죄의 공모자가 되었다.
그 장난은 결국 몇 정거장을 안가서 꼬리가 잡히는 걸로 끝났다.
객실 저 끝에 앉아있던 한 할아버지가, 어디 그래서야 되겠냐고, 풍선을 전부 다 내어놓아보라고 제안했다. 장난의 주동자인 아저씨는 그 말에 따라 문이 닫히기 직전 슬그머니 풍선 뭉치 전부를 문 밖으로 꺼내놓았다. 당연히 그것은 기관사의 눈에 띄었고,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문에서 풍선을 빼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그 방송에 들리자마자 차안에 탄 사람들은 전부 기다렸다는 듯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잠깐의 즐거운 시간이 지나간 뒤, 다시 다음 정거장이 되었다. 장난의 주모자였던 아저씨는 풍선을 원 주인에게 돌려줬고 어느 새 시민들 틈에 섞여서 내려버렸다. 서로 얼굴을 보며 깔깔대고 웃어대던 시민들은, 파리 특유의 빠른 걸음걸이로 사방으로 흩어졌고, 객실 안에는 또 새로운 승객들로 가득찼다. 그렇게 희극은 막이 내렸다. 객실 안의 낯선 사람들을 모두 참여시키고 소속감을 만들었던 희극은 막이 내렸다.
파리는 코스모폴리스로써의 오랜 전통을 가진 도시였다. 이민자들과 외국인들, 그리고 수많은 낯선 타인들이 매일매일 거리에서 서로 얽히며 삶을 만들어가는 도시.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다양한 문화의 교차로에서 같은 공기를 숨쉬며 살아간다.
나에게 파리스러움이란, 중세부터 이어져온 이런 도시의 공동체 전통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공동체란, 지역과 씨족에 기반한 공동체의 정신이 아니라, 수천만가지의 다양한 색깔을 내는 구성원들이 도시라는 공간을 통해 만들어내는 공동체를 말한다.
나는 파리의 외국인이었지만, 파리에서 어떤 소속감을 느꼈다. 나는 파리에 가족이나 친구가 한 명도 없었고, 어떤 지역적인 혈연적인 연고도 없었지만, 그 도시 속에서 숨쉬고 걸어다니며 다양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느꼈다. 평생을 살아왔던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2년을 살았던 카자흐스탄에서도, 세르비아나 우크라이나, 러시아, 영국과 같은 같은 여행지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진 못했다. 그러나 파리에서 나는 내가 이 도시에 속해있다는 것을, 이 도시가 자아내는 거대한 문화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파리에 속해있었다고, 파리 시민들이 관광객에게 보내곤 하는 비웃음과 경멸의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노트르담 인근의 모자가게에선 좀 괴이한 유머감각을 가진 주인이 베레모를 눈도 안보이게 내 머리에 푹 눌러씌우며 '이렇게 쓰는 거야'라고 킬킬대며 (멍청한 관광객인 나를) 비웃는 일을 겪기도 했고,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으며, 범죄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기분도 상했고, 화도 났고, 우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따금씩 도시는 나를 파리스러운 사건 속으로 나를 초대한다. 풍선으로 장난을 쳤던 그 지하철에서처럼.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공모자적인 웃음을 주고받으며 귀여운 범죄의 동조자가 되는 기회를 파리는 나에게 제공한다.
도시는 장소만으로 대표될 수 없다. 도시를 규정짓는 것은 행정구역이나, 길의 이정표, 유명한 랜드마크가 아니다. 한 도시를 정의하고, 또 그 도시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다.
때문에, 나에게는 가장 파리스러운 것은 아름답지만 너무 뻔한 에펠탑이나 다소 클리셰같은 'La vie en rose'가 아니라, 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