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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Jan 30. 2018

멈춰진 순간 속에 장편소설이 있다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 레핀Repin의 그림 속 인간군상에 대하여 2

"코러스도 마찬가지로 배우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안나 카레니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안나의 비극적인 로맨스-사실 이것은 분량면에서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 소설은 안나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그녀의 주변에 얽히고 섥힌 수많은 인물들이 저마다 제각각의 목적과 생각을 가지고 행하는 사건들로부터, 삶에 대한 하나의 주제를 던져준다. 톨스토이는 이들을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의 배경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그들 역시 이 소설을 이끌어가도록, 각자의 추구하는 바에 따라 고난과 좌절을 겪으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도록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에서 코러스 역시 배우의 하나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바꾸어 말하면 주인공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등장해서 간주곡을 부르는 역할이 아니라, 그 비극의 주제를 제시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 속의 수많은 인물들은 단순히 배경이나 코러스가 아니다. 그 소설은 안나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그 배경에 있는 수많은 인물들 각자의 이야기이도 하다. 톨스토이는 하찮은 인물까지도 영혼 깊숙이 관조하여 그들의 삶과 본질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렇듯 <안나 카레니나>가 정말로 매력적인 이유는, 이 개성많은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건들이 모자이크처럼 하나의 큰 그림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인 것이다.

 



투르크 술탄에게 보내는 자포로제 코사크들의 답장/ 203×358cm, Oil on Canvas, 1891 / 러시아 미술관 소장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크림반도와 흑해, 카스피해 인근 지역에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다. 지금의 터키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투르크나 몽골계의 칸국(khanate)들과, 현재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지역의 공국과 루스 국은 지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충돌을 해왔다. 수 차례에 걸친 전쟁은 페테르 대제의 근대화 정책으로 러시아 제국이 우위를 차지하기 전까지, 러시아 입장에서는 오스만 투르크에 저항을 계속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은 종교와 민족이 다른 다수의 집단들이 할거해왔다. 그 중에서 카작 혹은 코사크라고 부르는 집단은, 농토에서 떨어져나온 자치민 혹은 용병으로서 그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과 가끔씩은 기독교 세력에도 위협이 되는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카작'과 구분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이들을 '코자크'로 표기한다) 


자포로제의 코사크들은 당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역으로 끊임없이 패권을 확장하려고 하던 오스만 투르크에게 큰 위협이었다. 주로 용병으로 일하던 이들 코사크들은 자유민 집단으로서 꽤나 큰 군사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당연히 그 지역으로 진출하려고 애썼던 오스만 투르크와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1676년,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4세의 군대와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에 있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자포로제의 코사크가 승리를 거뒀는데, 메흐메드 4세는 오히려 코사크들에게 자신에게 복속하라는 엄숙한 어조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를 받은 자포로제의 코사크들은 술탄에게, 악마로 시작해서 엉덩이로 끝나는 욕설과 비웃음이 가득한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이 편지의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1870년대 한 아마추어 민속학자가 후대의 사본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레핀은 이 이야기에 매우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그는 자포로제의 코사크들을 자유와 형제애의 상징으로 바라보았다. 자포로제의 코사크들이 술탄의 편지에 대해 욕설이 가득한 답장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장면을 그린 그의 작품 <투르크 술탄에게 보내는 자포로제 코사크들의 답장(Письмо запорожцев турецкому султану)>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잘 담겨 있다. 





많은 역사화들에서 인물들은 하나의 장면을 위해서 존재한다. 종교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채 정지된 포즈를 취하기도 하며, 사건의 중심에 선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단순히 배경에 머물러 있기도 하며, 그림 안의 모든 인물들이 살육현장에서의 고통이나 전쟁의 비극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위해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화를 볼 때면 그것이 정지된 한 순간이며, 하나의 주제나 목적을 향해 만들어진 정교한 무대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레핀은 다르다. 자포로제 코사크들을 그린 이 거대한 그림 앞에 서면, 등신대의 인물들이 캔버스 속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따각따닥 말굽소리와 철컹철컹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다소 투박하고 거친 코자크들의 말소리. 테이블을 빙 둘러싼 코사크들이 어찌나 와글와글 제 이야기를 해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민족도, 출신도, 연령도 다양한 이들 코사크들은 편지를 쓰는 인물을 둘러싸고 제각각 한 마디씩 참견을 하고 있다. 파안대소하며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이도 있고, 몸을 기울이며 참견을 하는 이도 있다. 뭘 하나 싶어서 멀뚱이 서서 보는 이들이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수줍은 많은 이도 있는 반면에, 카리스마가 있어서 늘 집단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한 인물은 짐짓 연극적인 심각한 어조로 편지 내용을 불러주고 있기도 하다.


편지와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인물들과 함께, 그림 속에서 딴짓을 하는 인물들도 왕왕 눈에 뜨인다. 편지 쓰는 인물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으며, 수염을 쓰다듬으며 딴생각을 하거나 담배연기를 뿜으며 다른 이를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인물은 다른 인물을 약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이도 있으며, 사실 편지에 딱히 관심이 없으면서 특정 인물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나 혹은 그저 이 무리에 끼고 싶어서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은 인물도 있다. 


이 그림을 살아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바로 생생한 인물들이다. 절대로 코사크들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제각각의 행색과 모습, 얼굴 표정을 한 채, 제각각의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다. 화가는 그 그림 속에 제각각 모두 다른 코사크들의 삶을, 정지된 단 한 순간 안에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레핀의 작품들 속의 인물군상은 모두 제각각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레핀의 작품들은 마치 톨스토이가 쓴 장편소설을 읽는 것 같다.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숨쉬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림 밖으로 뿜어내고 있다. 어느 인물 하나도 단순한 배경 역할에만 그치는 자는 없다. 다른 화가였다면 그저 흐릿한 대중 가운데 하나에 그쳤을 작은 인물에게도 레핀은 캐릭터를 부여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멈춰진 순간 속에 압축하여 넣는다. 


전체 속 각각의 개인들에게 개성과 생명을 부여하는 레핀의 이런 능력은 역사화는 물론이고 기록화 조차도 그 그림 자체를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1901년 러시아 제국 의회의 모습을 그린 기록화인 아래 그림에서는 자신의 초상화 앞에 앉아있는 황제를 중심으로 앉아있는 각료들의 모습이 마치 실제를 그대로 캡쳐한 것처럼 펼쳐진다. (확대보기는 이 곳을 클릭하세요)  편집증에 휩싸여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후 후회하며 그를 부등켜 안고 있는 이반 뇌제의 모습을 그린 역사화나, 권력을 쥐려다 실패한 뒤 수녀원에 유폐되어 자신의 추종자들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황녀의 모습을 담은 아래 그림 속에서도, 그림 속 인물들의 얼굴 표정에서 그들의 생각과 느낌,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1901년 5월 7일 국가의회 / 400×877cm, Oil on Canvas, 1903 / 러시아 미술관 소장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 200×254cm, Oil on Canvas, 1885 / 트레쨔코프 미술관 소장
노보제비치 수도원에 감금된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황녀/ 202×145cm, Oil on Canvas, 1879 / 트레쨔코프 미술관 소장


메마른 황토길에서 벌어지는 종교행렬을 따라 가는 군중들의 모습을 그린 기념비적인 아래 작품에서는 레핀이 표현한 더욱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볼 수 있다. 성상에 손을 한 번이라도 대어서 기적을 바라는 민초들에게 마편을 드는 관리와, 신심으로 가득찬 간절한 표정으로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초라한 행색의 빈민들. 그중에서 레핀은 꼽추 소년에 주목한다. 


레핀은 꼽추소년을 민초들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를 그리기 위해서 수번의 습작을 거친 레핀은, 마침내 쿠르스크의 십자가 행렬을 그린 이 작품 속에서 휘청거리지만 당당하고 결연한 표정으로 행렬을 따르는 꼽추소년을 표현할 수 있었다. 레핀이 표현해낸 꼽추소년은, 장애로 힘겨워보이고 또 행색도 남루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귀족이나 고귀한 왕족에 뒤지지 않는 기품이 뿜어져 나온다. 신화나 먼 역사 속의 세계만을 그리는 아카데미의 전통에 반발한 레핀답게, 그는 종교 행렬을 그린 이 작품 속에서도 개개의 민중들에게 주목한다. 


쿠르스크의 십자가 행렬 крестный ход в курской губернии / 175×280 cm, Oil on Canvas, 1883 / 트레쨔코프 미술관
레핀이 그린 꼽추 소년의 이미지들-레핀은 위 그림의 꼽추소년을 그리기 위해서 수번의 습작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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