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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Sep 26. 2021

10대들의 지식은 왜 불완전할까?

-암기와 연습이 기억을 만든다.

너는 뭘 가장 잘해?


  국어 교사인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모의고사를 종종 풀어주고는 합니다. 요즘 수능 수험서를 보면 혀를 내두를 만큼 어려운 내용이 참 많습니다. 국어 영역의 비문학 지문을 보면 경제지문에는 명목이자율, 완전경쟁시장, 비교우위론이 언급되고, 논리학에는 분석명제가, 철학에는 부정변증법이, 과학에는 중합효소 연쇄 반응 같은 글이 나오고는 합니다. 국어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고난이도 지문을 출제하는 평가원이나 수능 연계교재를 제작하는 EBS가 사교육을 부풀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죠.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하나 있습니다. 딸은 비문학 지문 중 과학 지문은 거의 실수를 하지 않는 데 비해 유독 경제와 철학 지문에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까닭은 명확했습니다. 딸은 자연계열을 택해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과학 과목을 학교에서 두루 듣고 있는 반면, 경제나 철학은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었죠. 그런 까닭에 딸은 어려운 과학 지문을 척척 해결했고, 대신 철학이나 경제지문이 나오면 터덕거릴 수밖에 없었죠. 평소 자주 접하거나 알고 있던 개념은 쉽게 해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죠.    

 

암기와 연습이 필요하다고?     


  그럼 솔루션은 뭘까요? 다른 건 없습니다. 열심히 부족한 영역의 기본 개념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글을 읽고 글 속에서 근거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국어 영역이라 해도 글 속에 담긴 어휘가 낯설거나 개념이 이해되지 않으면 글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니까요. 거기에 처음 접하는 낯선 맥락은 10대들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암기와 연습은 충분할수록 좋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해서 반복적인 연습이나 암기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 것을 굳이 외워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또 암기를 하다 보면 생각이 경직돼서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못할 거라는 염려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뇌의 입장에서 보면 착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것을 보면 낯설고 두려워 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을 경계하듯이 말이죠. 이때 뇌의 편도체는 급격히 활성화되어 합리적인 이성의 작용은 후퇴합니다. 시험지를 봤는데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거나 온통 하얗게만 보였던 기억이 있다면 바로 편도체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행히 편도체를 잘 통제했다고 가정해볼까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 뇌가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낯선 것들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집중력, 더 많은 에너지를 뇌가 써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뇌는 지쳐 버리고, 그때부터는 익숙한 문제조차 집중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벌겋게 달구어진 뇌로 남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죠. 국어를 낑낑대면 수학은 울면서 풀어야 합니다. 수능 포기자 중 1교시가 가장 많은 까닭이에요. 


  그런데 만약 평소 익숙하던 개념이 나왔다면 어떨까요? 편도체는 공포나 불안을 느끼기보다 희망의 감정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어, 이번 시험은 잘 볼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겨나죠. 그럼 뇌의 흥분도는 가라앉고, 별다른 에너지의 손실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려운 문항을 만나면 그 문항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죠. 그러니 평소에 낯선 개념은 최대한 줄이고, 낯익은 지식과 용어를 늘리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이 될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배울 때를 생각해보세요?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는 그 쇠붙이가 몹시 두렵고 위태로운 물건 같아 보입니다. 넘어지면 크게 상처를 입을 것 같기도 하지요. 실제로 다들 몇 번 정도 넘어지면서 자전거를 배우게 되죠. 그러니 얼마간 자전거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계속 시도하다 보면 마침내 자전거 타기에 성공합니다. 그뿐인가요? 자주 타다 보면 돌발적인 상황에서 능숙하게 대처하는 힘까지 생기죠. 뇌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자전거 조작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뇌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수준이 된다면 학습의 효율은 아주 높게 향상되겠죠. 뇌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반복된 연습과 암기는 창의성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뇌 속에 지식을 새겨넣는 일입니다. 아무 때나 별 노력 없이 지식을 꺼내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이런 수준이 되면 뇌는 더 창의적이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일에 자기 에너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니 창의력의 뿌리는 반복된 연습과 암기에 있습니다.      


긍정적인 경험이 오래 남는다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습니다. 반복된 연습을 할 때 부정적인 맥락과 피드백은 절대 금물입니다. 제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였습니다. 불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죠. 아버지께서는 뒤에서 꼭 잡아주시면서 “잘한다, 잘한다”를 연발해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잘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졌죠. 잘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슬며시 자전거에서 손을 떼신 거 였습니다. 하지만 잘한다는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자신감이 붙고 자전거 타기가 온전히 제 것이 되었지요. 만약 거꾸로 아버지께서 “이러다 넘어져!”라고 불안을 조장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자전거 타기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배우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겠죠. 그 정도가 심했다면,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이고요. 


  그러므로 지식을 배우는 과정은 즐거운 피드백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낯선 것을 만나면 우선 불안합니다. 그러므로 불안을 잠재울 만큼 즐겁고 긍정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늘 상기시켜야 합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수학이 어려워져, 어려워져, 어려워져, 이런 식의 협박은 수학을 진짜 어렵게 만들 뿐, 제대로 된 연습도, 암기도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암기는 몰입할 때 가장 효율이 높죠. 산만하면 효율이 떨어져요.
 주위 환경을 단순하게 해주세요.
집중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부모님도 역시 휴대전화죠?
사용시간을 제한하세요. 그런데 자녀만 안 하면 그만일까요?
 부모님도 함께 줄이세요!
멀티태스킹! 이거 별로입니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수행하는 거,
집중에는 최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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