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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Sep 28. 2021

뇌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려면?

어떤 단어가 빨리 외워질까?


  “아빠, 단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해?”

  둘째가 약간 짜증 섞인 소리로 다짜고짜 묻습니다. 얼마 전에 떨어진 영어 성적으로 자존심이 상한 탓인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어휘와 문법이 어렵다고 호소해왔죠. 

  저는 우선 성적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줬습니다. 중학교 영어 시험이 실제 영어 실력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줬죠. 학교 시험이 지나치게 까다롭게 출제되어 실제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어 공부는 달랐습니다. 중학교 때 어휘력을 키워놓으면 독해에 큰 자산이 되니까요. 


  우리는 당장 영어 단어장을 구입했습니다. 하루 한 강씩 30개 단어가 제시되고, 문장과 마지막 연습문제까지 꽤 구성이 좋은 책이었습니다. 요즘 바짝 공부에 열이 올랐는지 둘째는 이틀에 한 번씩 단어 시험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죠. 


  단어 테스트를 하는 첫날이었습니다. 둘째는 3개 강의 90개 단어 중에 3~4개 정도를 빼고는 거의 다 맞췄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increase를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decrease까지 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benefit를 물어보면 profit도 함께 맞춰냈죠. 한 마디로 인접해 있는 단어들을 쉽게 쉽게 연상한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꽤 중요한 학습 요령이 한 가지 숨어 있습니다. 인접한 내용일수록 빠르게 익힌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인접하지 않은 것들은 학습하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리죠.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의 뇌는 서로 다른 과제를 수행할 때, 효율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른바 멀티태스킹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과제에서 다른 과제로 옮겨갈 때에도 꽤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뇌도 재부팅 시간이 필요할까


  저는 가끔 이런 일들을 실제로 경험하는데요. 체육을 이제 막 끝내고 온 친구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려면 얼마나 애를 먹는지 모릅니다. 10대 남자아이들은 여전히 그라운드에서 볼을 차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이 흥분 상태니까요. 이 친구들을 진정시키고 수업에 집중시키려면 적어도 20분 이상은 허비를 할 때가 있습니다. 비단 체육 시간만 그런 건 아닙니다. 수학 시간 뒤에도 여전히 머릿속에서 풀다 만 수학 문제를 떠올리는 친구들이 있기도 하고, 과학 시간 뒤에도 국어를 가르치려면 애를 먹지요.


  여기서 잠깐, 어릴 때 심심풀이로 했던 숨은그림찾기를 떠올려볼까요? 아마 금방 찾아내는 이미지도 있었겠지만 꽤 애를 먹었던 그림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째서 숨은 그림은 잘 보이지 않는 걸까요? 그건 우리 뇌가 이미 그 대상을 주변 대상과 관련지어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뇌가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인식하려 해도 잘되지 않죠. 그만큼 뇌는 다른 생각으로 전환되는 데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인간의 뇌는 기존의 생각을 멈추고 뭔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재부팅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서 체육활동을 할 때의 뇌와 글을 읽을 때의 뇌가 서로 다른 만큼 하나를 끄고, 또 다른 하나를 켜기 위해서 시간이 걸리죠. 대체로 한 과제에서 다른 과제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쉬는 시간 10분 후에 성격이 전혀 다른 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은 뇌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서로 다른 성격의 학습을 짧은 시간 동안 자꾸 바꿔서 수행한다면 효율은 무척 떨어지겠죠. 부팅됐다가 다시 끄고, 부팅됐다가 다시 끄는 일이 반복되면 기록으로 남는 게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서로 비슷한 과제를 수행한다면 어떨까요? 이런 경우 비슷한 뇌의 부분이 꾸준히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뇌가 큰 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효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둘째가 서로 연관된 어휘는 아주 빠르게 익힌 반면에, 맥락도 없고 연관도 없는 단어는 잘 익히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뇌도 지친다는 사실, 기억해두자     


  따라서 10대들에게 학습 조언을 해줄 때가 있다면, 같은 성격의 공부를 묶어서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해주는 게 좋겠습니다. 연관성이나 인접성이 강할수록 뇌를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학습 계획을 짤 때, 국어와 영어는 연이어서 공부할 수 있게 하고, 수학과 과학은 별도로 계획을 세우는 게 좋습니다. 국어와 영어는 언어 중추인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이 활성화되고, 그와 달리 수학과 과학은 두정엽이 활성화되기 때문이죠. 국어 다음에 과학, 과학 다음에 영어, 그 다음에 수학. 이런 식은 개인별 차이가 있겠지만 뇌에게는 그다지 효율적인 스케줄은 아닙니다.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우리 뇌가 쉽게 피로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자들에게 의하면 뇌가 어딘가에 고도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5분 정도라고 합니다. 따라서 지나치게 몰입이나 집중을 강박적으로 요구해서는 안 되겠죠. 특히 아직 뇌 발달이 완전하지 않은 10대들에게는 집중하는 것 자체가 큰 고역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연관성 높은 공부를 배치하되, 난이도를 조절하며 학습하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아직 뇌 근육이 튼튼하지 않다면 말이죠.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지금 자녀의 학습 스케줄을 점검하시죠. 뇌가 쉴 시간이 있는지.
비슷한 공부! 중요해요. 그런데 너무 비슷한 것만 몰아서 하면
다른 쪽 뇌는 그동안 놀고 있답니다. 적당히 조절하는 능력을,
골고루 써야죠.
비슷한 과제, 쉬는 시간, 새로운 과제, 쉬는 시간, 다시 비슷한 과제,------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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