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린 Oct 01. 2021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면

친애하는 10대의 부모들에게

‘그때는 다 이해했는데······.’     


  “요즘 애들이 인강에만 의존해서 큰일이에요.” 

  이런 염려를 하는 동료 중에는 수학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인강은 우선 재밌습니다. 강사들은 수강자 숫자가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시청각적인 만족감을 주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 뇌는 하나의 과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15~20분 정도라 학생들을 화면에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도파민이나 엔도르핀 분비를 자극할 수 있는 전략이 꼭 필요합니다. 인기 강사라면 자기 나름대로 매력을 갖춰야 하고 버라이어티한 전략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하죠.


  인강 뿐만이 아닙니다. 오프라인 강의도 마찬가지죠. 인기 있는 강사가 되려면 청중을 붙잡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인기 있는 강의와 실제 실력 향상과는 큰 관련성이 있을까요? 메타인지로 널리 알려진 리사 손 박사에 따르면 언변이 유창한 선생님의 강의와 그렇지 않은 선생님 강의는 학생들의 성취도에 큰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히려 언변이 유창한 선생님 강의를 들을 때, ‘자신이 더 잘 배우고 있다’, ‘잘 이해가 된다’는 착각에 빠진다고 하죠. 속된 말로 강의에 취해서 자기가 얼마나 이해했는지 점검하는 일에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인강이나 오프라인의 인기 강의는 듣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줍니다. 재미는 강의를 끝까지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좋은 도구죠. 그런데 이게 함정일 수 있습니다. 듣는 동안 다 이해한 것처럼 느끼게 하니까요. 10대 친구들이 간혹가다 ‘그때는 다 이해했는데, 왜 생각이 안 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소연하는 일이 종종 생기는 까닭입니다. 


너무 많은 input, 해마는 어떻게 처리할까?     


  어째서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이 지속되지 못하는 걸까요? 그건 그 기억이 완전하지 않은 기억이면서 동시에 단기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구조물은 측두엽에 자리 잡고 있는 해마입니다. 해마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를 기억으로 만들어냅니다. 기억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공장이죠. 그런데 해마가 모든 기억을 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을 만들어내고 일시적으로 보관하기는 하지만 기억의 장기 보관은 대뇌피질을 통해 이뤄집니다. 


  실제로 해마가 제거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장기기억이 온전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H.M이라는 이니셜로 알려진 헨리 구스타프 몰래슨이라는 사람이었죠. 그는 간헐적 발작을 치료하기 위해 뇌의 측두엽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 치료에 성공했지만 안타깝게 해마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수술받기 전, 과거의 기억은 온전했습니다. 대뇌피질에 장기기억들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은 서로 다른 뇌 구조물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10대 청소년들이 당시에는 잘 기억할 것처럼 느낀 지식을 어째서 돌아서면 잊는지, 시험을 치를 때 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지 설명해 줍니다. 강의를 들을 때는 해마를 통해 기억이 만들어졌지만 그 기억이 대뇌피질로 옮겨가지 않았기에 장기기억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임시저장소에 머물던 기억을 지워 버렸거나 그곳에 새로운 정보를 덮어쓰기 해버린 거죠. 강의를 많이 들으면서 공부를 꽤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지나친 인풋(input)을 감당하기 어려워 해마가 덮어쓰기를 해버린 것입니다. 그 전 기억은 지워지는 거죠. 


  그렇다면 어떤 기억들이 장기기억이 되는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습관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바로 절차적인 기억이죠. 쉬운 예로 술에 취해 블랙아웃을 경험한 사람이 집을 찾아오는 것도 절차적인 기억이 때문이고, 복잡한 자동차 운전 과정을 자동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절차적 기억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절차적 기억은 어떻게 생성되는 걸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자기 자신이 직접 과정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차적인 기억이 만들어지죠. 그러므로 수학을 포함해서 학습을 잘하려면 직접 생각하고 판단하고 추론하며 계산하는 활동을 반복해야 합니다.


강의의 효율성은 학습자 스스로 만든다     


  10대들이 인기 강사의 인강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효율이 있다, 없다를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재미있게 공부하다 보면 편도체가 해마와 연합해서 더 좋은 기억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오래가지 못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지적인 쇼를 보고 도파민이 분비되어 만족감을 얻을지 몰라도 장기기억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억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듣던 인강을 잠시 멈추고 스스로 직접 수행을 해봐야 합니다. 그것도 여러 번 반복해야겠죠. 그런 까닭일까요? 요즘 인강 강사 중에는 강의 시청후 반드시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해보라고 강하게 권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절차적 기억은 학습에 큰 장점이 있습니다. 단서나 맥락이 주어지면 거의 자동적으로 재생된다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당장 현관문 비밀번호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대부분 잘 떠올리겠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 분이라도 직접 현관문 앞에 서면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 것입니다. ‘현관문’이라는 단서를 주면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이 되죠. 마찬가지입니다. 수학이나 과학 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단서가 주어지면 절차적인 기억은 어렵지 않게 재생될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해마에서 대뇌피질로 기억이 옮겨가려면 필요한 것은?
답은 충분한 수면입니다.
잠 안 재우고 공부하는 거, 잔인한 일입니다.
시험이 다가오면 불안 때문에 유명한 인강 듣는 친구가 많아요.
연습이 없으면 다 소용 없을지 몰라요.
부모의 불안이 자녀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그럼 기억은 멀어집니다.
자녀가 편안하도록 릴렉스!
가벼운 산책, 스트레칭이 효과 만점이죠. 
이전 27화 뇌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