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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Oct 02. 2021

메타인지? 가르치면 늘어날까?

친애하는 10대의 부모들에게

설명의 힘?


  우리 집에는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하나 있습니다. 주인은 둘째 딸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한 용도죠. 


  본래 우리집에는 스케치북만한 조그만 화이트보드가 있었습니다. 낙서도 하고 그림도 그려보라고 행사 때 쓰고 폐기한 것을 아이들한테 가져다 줬었죠. 일단 없던 물건이 생기면 누구나 호기심을 갖습니다. 둘째는 낡은 화이트보드에 자신이 읽고 있던 「지킬과 하이드」의 인물관계도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소설 속 인물이 너무 복잡하다면서 눈앞에 정리해 두려고 한 것이죠.


  별 기대가 없었는데, 웬걸 둘째는 꽤 자세하게 인물을 분석해놨죠. 그러더니 종종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적으며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이트보드가 너무 작다며 아쉬워하길래 꽤 큰 화이트보드를 선물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생긴 화이트보드를 둘째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지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침한 둘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뭔가 뿌듯하면서 살짝 오만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죠. 

  “내 설명 들을 사람?”

  ‘아무도 안 들으면 알아서 해’라는 무언의 압박이 뒤섞인 소리였습니다. 화이트보드에 뭔가잔뜩 적어놓고 둘째가 자랑스럽게 서 있었죠. 고등학교 다니는 큰애는 바빠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지만 둘째를 외면했다가는 두고두고 서운하게 여길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는 적당히 오버하면서 진지해져야 합니다. 과하지 않은 칭찬은 필수고요.

  “멋지다! 우리 딸. 그래 어디 한 번 설명해 줘.”

  “자, 아빠! 내가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봐.”


  이렇게 시작된 설명이 인류의 기원부터 메소포타미아 문명, 함무라비 법전, 이집트의 태양신으로 이어졌습니다. 화이트보드에 적힌 정보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신나게 설명해 주었죠. 그 자체만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부분에선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아, 맞다’를 연발하며 화이트보드의 한쪽 면을 지우고 새롭게 뭔가를 적었습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새로운 설명을 채워 넣었죠. 그러더니 어느 부분에서는 아예 자기 방에 들어가서 책을 찾아보고 설명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느끼고 보충한 것이죠. 


화이트보드, 부족함을 깨닫는 거울!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는 것, 메타인지가 작동한 것입니다. 처음에 둘째는 자기가 공부한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가족 앞에서 설명하려 했죠. 준비를 많이 할수록 자신감은 커집니다. 그런데 자신감과는 달리 자기를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은 줄어듭니다. 자신감이 커질수록 자신을 완벽하게 여기고 오류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둘째가 스스로 모자란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특히 자기 객관화에 서툰 10대들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둘째가 문제를 발견한 것은 화이트보드에 내용을 요약하고, 그것을 아빠에게 설명하는 도중에 이뤄졌습니다. 가르치는 동안 자기를 점검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둘째의 일은 내가 직장에서 수업할 때 종종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도 수업할 때 어느 부분에서 갑자기 막힐 때가 있죠. 학생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때가 이해가 모자란 부분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스스로 부족한 점을 깨닫는 데에는 직접 설명해 보는 것만큼 효율적인 것은 없죠. 설명하다 보면 막히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자신의 취약점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스스로 모자란 점을 발견한다는 것,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하거나 연습량이 많을수록 자신이 완벽하다고 여기기에 실수를 찾지 못하죠. 그런데 둘째가 스스로 모자란 부분을 찾았으니 참 대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럴 때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오, 대단한 걸.’이라는 단 한 마디입니다. 만약 설명 한 번 잘못했다고 10대에게 ‘잘못 설명했네.’, ‘똑바로 다시 해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피곤하다. 이제 그만해. 알았으니까.’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불쾌감과 좌절감만 남기겠지요. 그리고 10대 친구는 앞으로 더 이상 요약하고 설명하는 일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옳은 지적이어도 스스로 찾지 못한 오류는 기분만 상하게 할 뿐이죠. 스스로 부족한 점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최선입니다. 


부족한 것을 가장 잘 느끼는 것은 누구?


  마당에 심은 나무가 무엇이 부족한지는 나무가 가장 잘 압니다. 나무를 빨리 키우려고 주인이 애걸복걸하며 물이나 비료를 잔뜩 줘봐야 오히려 나무는 시들시들 앓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0대들이 성장하는 데에 가장 필요한 것은 10대들 자신이 잘 압니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는 이런저런 일들을 직접 경험해봐야 알죠. 수분이 부족한지, 무기물이 부족한지, 혹은 햇빛이나 기온이 모자란지, 그것은 오로지 당사자가 가장 잘 알 수 있죠. 물론 체험하는 동안 실수는 벌어질 겁니다. 하지만 실수는 영원한 패배가 아닙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가는 훌륭한 단서죠. 그러니 10대들이 직접 탐구하고, 직접 설명하고, 직접 가르치는 경험을 해보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지요. 


  메타인지? 오늘 당장 화이트보드에 아는 것을 써보도록 하는 게 어떨까요? 그럼 분명히 틀리거나 모자란 정보들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자녀가 뭔가 설명하거나 보여주려고 할 때, 귀찮다고 피하면
자녀의 메타인지는 ‘그대로 멈춰라’가 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당장 들어주세요!
‘화이트 보드’는 유용성이 높아요.
그냥 큰 거 하나 사서 맘껏 사용해보라고 하세요.
어릴 때 놀이 중에 선생님 놀이, 좋아하셨죠? 
우리집 둘째 시험 기간에 저는 이런 걸 했습니다.
 ‘역사 인물, 스무 고개’ 둘째가 꽤 좋아하더군요.
놀이처럼 퀴즈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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