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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Aug 22. 2021

지랄발광 17세

친애하는 10대의 부모들에게

사춘기는 지랄발광의 나날일까?    


  토요일마다 우리집에서는 가족 시네마 시간을 갖습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가족끼리 돌아가며 영화를 보는 일종의 주말 루틴이죠. 얼마 전에는 큰 딸이 ‘지랄발광 17세’를 골랐죠. 원제목은 The Edge of Seventeen. ‘열일곱의 끝’으로 해석되는 이 제목을 굳이 지랄발광이라고 번역한 건, edge의 파생어인 edgy가 “날카로운, 화를 잘 내는, 몹시 초조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네요. 어찌됐든 영화는 짓궂고 유별난 17살 소녀 네이딘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랄발광이라기보다는 좀 까부는 정도랄까요? 엄마가 없는 틈을 타서 술을 마시고, 선생님한테 쫓아가 자살할 거라고 허풍을 떠는 정도니까요. 


  엽기적인 지랄발광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났습니다. 2018년 5월 18일. 미국 텍사스주 산타페 고등학교를 다니던 17살의 디미트리오스 파구어티스. 평소 과묵하고 평범하던 이 소년은 이날 아침 엽총과 사제 폭탄, 38구경 리볼버로 무장한 채 평화롭게 미술 수업을 진행하는 교실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내가 다 쏴 죽일거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총을 난사했지요. 학생 아홉 명, 교사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안 돼 인디애나중학교에서도 중학생이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죠. 고작해야 열다섯 살밖에 안 먹은 아이가 총기를 난사한 것입니다. 지랄발광이 아니라 엽기적인 범죄가 일어난 것입니다. 


  먼 나라 이야기일 거라고요? 글쎄요. 총기규제가 엄격하기에 망정이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일으키는 지랄발광, 아니 범죄의 수준도 만만치 않습니다. 집단따돌림, 구타, 성폭행, 차량탈주 후 연쇄 추돌 사고까지. 만약 총기가 허용되었다면 미국 못지않게 잦은 총기 사고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죠. 

대체 10대들은 어째서 충동적인 일을 벌이는 것일까요?     


왜 10대들은 지랄발광할까?    


  까닭은 머릿속에 있습니다. 10대들의 뇌는 전쟁에서 무능한 지휘관이 이끄는 오합지졸 부대나 다름없습니다. 병사들의 에너지는 차고 넘치는데 전략과 전술이 형편없어서 사건과 사고가 끝이질 않는 것이죠. 전쟁에서 지휘관은 앞일을 내다보고 미리 계획을 세우고, 결과를 예상하며 전략을 짭니다. 그뿐 아니라 병사들의 능력과 성향을 파악해서 효율적인 전투를 수행하게 하지요.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휘계통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부대 안에서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을 것이고 전투의 효율은 떨어질 것입니다. 


  10대의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청소년기는 급속한 신체적인 성장 못지않게 머릿속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뇌 구조의 발달이 골고루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정의 중추는 활성화되는 반면, 뇌를 전체적으로 지휘하는 전전두엽은 스무 살이 넘도록 여전히 발달 중이랍니다. 아직 사관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생도가 어떻게 실전에서 부대를 통솔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고 충동적이고 자극적인 결정들을 할 수밖에요. 운전도 못하는 10대가 차량을 탈취해서 고속도로를 내달리듯, 10대들의 충동성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기관차와 비슷합니다.      


발광하는 10대들을 진정시키는 힘은?      


  물론 모든 10대가 지랄발광하는 것은 아닙니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10대를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뇌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걸까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겉으로는 멀쩡한데 내면에는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착한 아이로 성장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 괜찮아 보일 수 있습니다. 내면은 멍투성이지만요. 부모한테 버림받을까봐, 혹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늘 착하게 성장하는 10대들도 꽤 있습니다. 


  둘째는 좋은 백업 지휘관을 지닌 경우입니다. 사관학교를 거치지 않아서 정식 지휘관은 아니지만 병사들 중에는 경험이 많은 부사관이 지휘관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는 합니다. 10대들에게 부사관 역할을 해주는 건 누구일까요? 바로 부모겠죠. 부모들이 아직 다 자라지 못한 10대들의 전전두엽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가 있지요.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어렵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때, 부모들의 조언은 10대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경험 많은 부사관이 경험이 부족한 장교를 백업해주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부사관이 지휘관과 갈등관계에 빠진다면 어떨까요? 지휘관이 결정해야 할 일을 부사관이 미리 결정해버리거나 지휘관의 결정에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거나 잔소리를 한다면? 마찬가지로 부모가 10대 청소년에게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거나 중요한 일들을 당사자와 상의 없이 결정해버린다면? 그럼 10대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고, 감정은 들끓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좌충우돌하는 10대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겠지요. 더 엇나가고, 더 난폭해지고, 더 소통이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10대들에게 백업 지휘관의 역할을 수행하되, 지휘관의 자리까지 넘봐서는 안 되겠지요. 미숙하고 답답하겠지만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 사관생도가 좋은 지휘관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좋아질 거라고 인내심을 가지고 믿어 보게요.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최근에 일어난 자녀와의 갈등을 떠올려보세요.
혹시 자녀가 내린 결정이나 판단을 무시하지는 않았을까요?
판단에 대한 책임은 판단을 내린 사람 몫입니다.
괜히 덤터기 쓰지 맙시다. 
 자녀는 부모의 이력서와도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공식을 머리 속에 두고 살죠. 
마음에 안 드는 옷, 화장, 머리에 대해 간섭하는 정도를 줄입시다. 
사소할수록 자율성은 더 훼손되었다고 느끼니까요.
‘머리도 맘대로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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