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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Oct 07. 2021

사랑받기 위한 간절한 호소, 자해

아동학대가 스테디셀러?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팔리는 브라질 소설이 한 권 있습니다. 지금도 매년 적지 않은 권수가 팔리고 있을 겁니다. 비결이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소설이 왜 이렇게 잘 팔리는지는. 바로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죠.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다섯 살짜리 꼬마 제제. 늘 장난을 쳐서 가족들로부터 매를 맞기 일쑤입니다. 어느 때는 일주일을 끙끙 앓을 만큼 채찍으로 두들겨 맞기까지 하죠. 


  가난과 아버지의 실직으로 아무도 돌봐주지 않던 제제. 아마도 먹고살기 힘들던 우리나라 1970~80년대의 상황과 많은 점이 비슷해서 이 소설이 그토록 대박을 터뜨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됐든 이 소설의 주인공 제제는 가족들로부터 늘 외면을 받고 자랍니다. 아버지는 직장을 잃고 노름에 빠졌고, 엄마는 밤늦게 공장을 다녔으며, 누이는 연애에 빠져 정신이 없었죠. 형이 있었지만 오히려 제제보다 더 미숙했습니다. 


  제제는 가족들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라고 봐야죠. 그럼 왜 제제가 매를 맞을까요? 그건 제제의 장난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죠. 이웃 아저씨의 안경을 세탁통에 숨겨놓고, 양초를 듬뿍 발라 길을 미끄럽게 만들고, 이웃집 빨랫줄을 끊어놓는가 하면, 가짜 뱀을 만들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놀라게 했죠. 스스로 매를 번 것입니다. 진짜 이해가 안 가는 건 매 맞을 줄 뻔히 알면서도 계속 장난을 친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참으면서 말이죠.     


자해는 사랑이 부족하다는 SOS!     


  이제 장면을 하나 바꿔 보겠습니다.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의 손목은 항상 손수건으로 묶여 있습니다. 아마 어젯밤에도 면도칼로 손목을 그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그었던 곳에 딱지가 생겨 면도칼을 조금 더 깊이 들이대고 있다는군요. 그만하라고 일러도 그다지 효과가 없습니다. 이 친구는 어릴 때 혼자 미국에 유학을 다녀왔다는데, 그 후로 생긴 습관이라고 합니다. 대체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저 웃기만 하죠. 스스로 아픈 상처를 만들면서 이 친구 왜 그런 걸까요? 


  두 장면의 공통점은 스스로 고통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결론적으로 사랑이 모자라서 벌어진 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고통을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어떨까요? 적어도 식구들이 자기가 장난할 때, 그래서 맞고 있을 때는 주목해 주니 말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손목을 그었더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줍니다. 빨간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면 어쩐지 살아 있는 게 느껴집니다. 다른 일은 훼방꾼이 많은데 이 일만큼은 스스로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알 듯 모를 듯 쾌감도 생기지요.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우리 뇌 속에 존재하는 전대상피질은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키죠. 집단에서 홀로 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까닭은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고통을 유발하는 장난이나 자해는 자신도 가족이나 또래집단에 소속되어 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려고 선택한 방법이라고 봐야겠죠. 이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자신이 소외당한다는 우울이 짙게 깔려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불편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청소년 중 1/3은 우울 증상을 경험했다고 하고, 자해를 시도하거나 해본 적이 있는 친구들도 꾸준히 증가한다고 합니다. 자해는 과도한 스트레스 해소, 자신에 대한 처벌, 대인관계에서 오는 좌절감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자해가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는 신호라는 것이죠. 소외 받는 자신을 알리는 SOS입니다. 고통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죠.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가 사랑받기 위해 매맞는 방법을 택한 것처럼.      


자해는 질책이 아니라 사랑이 필요하다     


  늘 손수건으로 손목을 감고 다녔던 친구 이야기는 사실 가공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비슷한 이야기는 그동안 교사생활을 해오면서 적지 않게 목격했던 일입니다. 밥을 먹지 않고 굶어서 몸무게가 30Kg가 채 되지 않았던 친구도 있었고, 손목을 습관적으로 긋는 친구나, 어린 나이에 알콜에 의존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을 상담해보면 대체로 부모들의 관심이 오로지 성적에만 몰두해 있는 경우가 많았죠. 그러다 뒤늦게 부모가 후회하고는 했습니다. 10대들도 느낍니다. 부모가 성적에 집착하는 게 자기를 사랑해서 그렇다는 걸. 하지만 그 사랑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죠. 그래서 마음이 힘들다는 신호를 강렬히 보내는 것입니다. 


  10대 청소년들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합니다. 경계와 불안을 느끼는 뇌는 아주 예민해 있고, 경쟁적인 입시 환경 때문에 쉬어도 쉬는 느낌이 없는 시간을 꽤 오랫동안 보내고 있습니다. 안정감을 주는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순간을 잊고 싶어서, 또는 특별한 보상을 받고 싶어서, 하필 택한 방법이 자해가 될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통증으로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잊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일시적으로 얻기 때문이죠. 끔찍한 것은 그것이 내성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보상회로를 교란해서 중독과 마찬가지로 더 심한 자해로 이어지죠. 습관적인 자해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당장 해야 할 일은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만약 자해의 기미가 보였다면, 곧바로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질책이나 꾸중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죄책감을 불러일으킬뿐더러, 하지 말라고 억압하면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더 높여서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입니다. 그러니 진심으로 원하는 게 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알려주는 게 좋겠죠. 새롭게 몰입할 또 다른 뭔가를 함께 찾아준다면, 그것 자체가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장난이나 사고를 자주 치면 우선 사랑이 부족한지 살펴보자고요.
부모 앞에서 유난히 사고를 많이 친다면, 사랑이 고픈 것일 수 있죠. 
자녀가 언제 스트레스를 받는지 체크하고, 해소하는 방법을 꼭 물어보세요. 
입술이나 손가락을 습관적으로 뜯는다면 보상체계가 나쁘게 형성된 겁니다.
더 나빠지기 전에 상담 받는 게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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