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린 Sep 16. 2021

부모들은 왜 자녀를 통제하려 할까?

나는 왜 사랑하는 딸을 통제했을까?   

  

  부모들은 대체 왜 10대들을 통제하려 할까요? 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큰딸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 때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10대들의 특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딸에게 몹시 통제적이었죠. 


  늦잠 자는 것, 방이 지저분한 것, 편식하는 것, 동생과 사소한 일로 다투는 것, 말 함부로 하는 것, 시간 지키지 않는 것, 공부 안 하고 속인 것, 인터넷으로 시간 보내는 것, 게임 하는 것, 책 읽지 않는 것, 화장하는 것, 좋은 친구 만나야 하는 것까지 쉴 틈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딸아이를 통제했습니다. 아이는 그때마다 사정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나는 변명하지 말라고 다그쳤죠. 그랬더니 큰딸에게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혼자서 중얼거리며 입술을 뜯는 습관이었죠. 정말 어리석게도 그 순간조차도 아이에게 화를 냈습니다. 어른 앞에서 중얼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말이죠. 


  만약 이런 상태로 부녀지간이 계속되었더라면 어땠을까요? 파국이었겠죠. 다행히 그 즈음 우연히 10대들의 심리에 대한 강의를 듣고 ‘아차’ 싶었습니다. 그 후 잔소리와 통제는 줄이고 큰딸을 존중하기 시작했죠. 예를 들면 화장하는 딸에게 화장품을 함께 골라주거나, 큰딸이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처음에 어색하게 느꼈지만 어느덧 루틴이 된 아빠의 태도에 마침내 마음을 열었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죠. 혼자 중얼거리거나 입술을 뜯는 습관도 사라졌습니다. 딸이 말할 때, 끝까지 들어주는 게 효험이 있었던 거죠. 


  어째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자율성을 통제하려 들까요? 내 경험을 말하자면 100% 불안과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습니다. 딸이 아니라 나의 불안과 낮은 자존감이 문제였죠. 돌이켜보면, 나는 나의 현재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자존감도 낮았죠. 10대 시절 가난과 방황으로 명문대 진학에 실패하고, 그 때문에 만족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망상과 불안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던 거죠. 그래서 딸은 나보다 더 나은 미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범했던 과거의 잘못들을 딸이 되풀이하는 게 보기 싫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딸에게 비친 10대 시절 나의 그림자가 싫었던 것이죠. 결국 부모의 낮은 자존감과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 그리고 부모의 불안이 자녀에 대한 통제로 이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통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일단 큰딸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입술을 뜯는 좋지 않은 습관이 생겼죠. 혼자서 불만을 중얼거리는 일도 생겼고요. 통제적인 상황에서 스트레스성 물질이 분비되었던 것입니다.      


통제를 당하는 존재는 어떻게 될까?     


  유명한 스키너 박스 실험을 떠올려 봅시다. 제임스 올즈와 피터 밀러는 스키너 상자에 쥐를 가둬두고, 쥐들이 먹이보다 성적 쾌감에 집착하는 것에 주목해서 쾌감중추를 발견한 신경과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진행한 실험 중에는 스스로 상황을 선택할 수 있는 쥐와, 주어진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쥐를 비교하는 실험도 있었죠. A쥐가 쾌감을 선택하면, B쥐도 쾌감을 느끼고, A쥐가 먹이를 선택하면, B쥐도 먹이를 얻는 실험이었습니다. A쥐는 자율적이고 B쥐는 쾌감을 느끼더라도 통제적인 환경에 놓여 있었죠. 

  실험 결과는 B쥐가 A쥐에 비해 훨씬 일찍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쾌감이 주어져도, 상황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데에서 B쥐는 스트레스를 겪었고 코르티졸이 과다 분비되어 뇌가 손상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쾌감을 주는 자극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면 높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마련한 좋은 경험도 그것이 일방적인 한, 끔찍이 해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자신이 겪어온 잘못을 자녀가 되풀이할까 봐 지나치게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서울대에 못 가서 서러운 일을 당했으니, 너는 반드시 서울대를 가라. 우리 집안에서 병원을 물려받을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 반드시 의대에 진학해라. 내가 살아보니 미술이나 음악을 선택하면 사회에서 인정받기가 어렵다, 성공하기 어렵다. 


딸의 꿈! 혹시 내가 꾸는 꿈?


  안타깝게도 문제의 핵심은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자녀가 아니라,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부정하고, 또, 자신의 자존감이 높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웅변하는 부모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의 부모, 현실을 부정하는 부모를 자녀는 어떻게 바라볼까요? 아마도 부모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스스로 잘못 살았다는 인생 루저의 말을 신뢰할 수는 없으니까요. 따라서 자녀를 위한 최선은 통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을 긍정하고, 높은 자존감을 지닌 부모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자기 꿈이 아니라 자녀를 통해 꿈을 꾸고, 자녀를 성공시켜 그 덕에 자기 자존감을 높이려는 것은 자녀에게 엄청난 부담입니다. 착한 10대들은 겉으로 멀쩡해도 속으로 골병이 들기 마련이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반항으로 점철된 삶을 시작하게 되죠. 또한 통제는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통제 당하는 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줍니다. 코르티졸을 증가시켜 정신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죠.


  알은 스스로 깨고 나올 때 소중한 생명이 됩니다. 아무리 밖에서 빨리 나오라고, 혹은 더 나은 개체가 되라고 그 어떤 조치를 취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칫 알을 깨뜨릴 위험만 커질 뿐이죠. 필요한 것은 뭘까요? 그 무엇보다 관심과 애정으로 기다리며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입니다. 재촉과 통제는 금물이죠.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자녀에 대한 통제 수준을 이틀만 점검할까요? 어렵다고요?
 잔소리 빈도와 아이 얼굴만 체크해도 될 겁니다. 
자녀의 삶을 괄호로 묶고 부모 스스로의 자존감을 체크합시다. 자존감이 낮다면? 당장 자존감을 높일 계획을 짜세요. 자녀 생각은 잠시 꺼두고요. 
 부모의 어린 시절 꿈과 현재 자녀의 꿈이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해보죠.
만약 너무 일치한다면
자식에게 대리만족을 강요한 건 아닌지 되새겨야겠죠?


이전 05화 사랑받기 위한 간절한 호소, 자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