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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Sep 13. 2021

화를 잘 내는 10대들!

친애하는 10대의 부모들에게

불 같은 화를 내는 까닭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학부모가 전화상담을 하는데 다짜고짜 흐느꼈죠. 착하디 착한 아들이 갑자기 화를 벌컥벌컥 내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너무 놀라서 속상해서 하염없이 울다 전화를 했다는 거죠.


  10대들은 화를 잘 냅니다. 왜 이렇게 예민하고 사나운지 알다가도 모를 때가 있죠. 게다가 눈치는 어찌나 빠른지 자기한테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기색을 보이면 곧바로 알아차리고 공격적으로 변하고는 합니다. 마치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고 상대를 향해 잔뜩 경계하는 야수처럼 말이지요. 


  어째서 화를 잘 내는 것일까요? 불안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큰 개보다 작은 개들이 더 요란하고 사납게 짖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작은 개들이 더 맹렬히 짖어댈까요? 그건 불안 때문입니다. 사자나 호랑이처럼 강력한 힘이 있어서 상대를 제압할 능력이 충분하다면 불안할 이유가 없지만,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면 불안을 떨쳐내려고 화를 내는 것이죠. 


  10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자기 마음대로 일이 안 될 때,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마음속에 불안이 높아지고 화가 발생하죠. 예를 들어 시험 성적이 똑같이 나쁜 학생이라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학생이 전혀 노력하지 않은 학생보다 훨씬 더 화를 많이 낼 것입니다. 자기 노력으로 성적을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때문이죠.      



뇌가 불안을 먼저 느끼도록 설계된 까닭은?


  비단 10대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뜻대로 일이 안 풀릴 때 당황스럽고 불안을 느끼며 짜증이 나고 화를 터트립니다. 그런데 성인들은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주변 상황과 맥락을 보고 감정을 조절하려고 노력합니다. 성숙한 전두엽이 화를 절제하라고 명령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10대들의 뇌에서는 화를 절제시키는 전두엽이 아직 공사 중입니다. 대신 감정에 관여하는 대뇌 변연계는 꽤 성숙해 있죠. 그 중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의 감정을 담당하는 뇌 구조물입니다. 따라서 뜻대로 일이 안 될 때, 편도체는 급격히 활성화되어 극도의 경계 속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만듭니다. 벌컥 화를 내는 것이죠. 


  10대들이 화를 자주 내는 데에는 후두엽의 발달도 한 몫을 합니다. 후두엽은 뒤통수에 위치하면서 시각정보를 처리하는데, 대뇌 중에서 가장 먼저 성숙하는 부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두엽의 성숙은 10대들의 화장실 사용 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하죠. 흔히 아동이 청소년이 되면서 가장 먼저 변하는 건 화장실 사용 시간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거울을 쳐다보고 옷맵시와 머리를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그건 바로 후두엽의 발달 때문입니다. 이런 후두엽의 발달로 10대는 그 어떤 시기보다 시각적인 정보에 민감해집니다. 부모의 스쳐 지나가는 눈빛 같은 사소한 자극에도 불안을 느끼고 화를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필이면 화부터 내도록 뇌가 진화될 게 뭐지? 이성적으로 차분히 생각하는 전두엽부터 발달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부터 성숙했다면 아마 인간은 지구상에서 멸종했을지 모릅니다. 독립을 준비하는 10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모험을 떠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는 온갖 위험으로 가득 차 있죠. 따라서 위험을 감지하고 이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시스템이 뒤따라야 했을 것입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을 사려 깊게 따져본 뒤에 행동한다면, 그 사이 야수들에게 잡아 먹혔거나 벼락을 맞고 불에 타 죽을 테니 말이죠. 


  위험한 것을 보면 일단 ‘공포를 느껴! 피해! 뛰어! 덤벼!’ 이런 반응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멸망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위험을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후두엽과 이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변연계가 전두엽보다 먼저 성숙한 것은 진화적으로 적절한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10대들의 화를 잠재우는 좋은 전략은? 


  그럼 들끓는 화를 지닌 10대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같이 으르렁거리며 화를 낸다? 힘으로 억누른다? 가장 안 좋은 방법이지요. 적대심으로 가득 찬 사나운 개를 자극하면 오히려 더 사나워지듯이 흥분한 10대에게 힘을 쓰거나 화를 내면 10대들의 편도체는 더 활성화되어 공격적이 될 것입니다. 그럼 논쟁을 해서 하나씩 잘잘못을 따지는 게 좋을까요? 역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전두엽을 사용해서 이성적으로 따지려 해도 10대들은 여전히 편도체에 기대어 화만 낼 테니까요. 


  제일 좋은 방법은 화를 내는 이면을 바라봐주는 것입니다. 화를 내는 건 자기 뜻대로 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뭔지 경청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10분만 10대의 이야기를 인내심 있고 진실하게 들어보는 게 필요하죠. 처음에는 경계하고 어색해하면서 공격적일 수 있지만 자기 이야기를 애써 들어주는 이를 계속 적대시하지는 않겠지요. 아무리 흥분한 편도체라도 옆에 앉아 귀 기울이는 부모를 더 이상 위협적인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딱 10분! 그러면 10대는 마음을 진정하고 대화는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대개의 갈등이 부모들이 단 1분도 10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생긴다는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10대들의 화는 방치하거나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자주 쓰면 발달하기 마련이죠. 변연계, 특히 편도체를 우리 뇌가 필요 이상으로 쓰면 어떨까요? 당연히 필요 이상으로 공포와 분노의 회로가 발달하겠죠. 그럼 모르긴 몰라도 성장해서 감정적인 사람이 되기 쉬울 것입니다. 또한 문제해결력이 낮아지는 치명적인 약점마저 지닐 수 있습니다. 흔히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리거나 위기를 경험할 때, 머리가 하얘진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변연계가 지나치게 활성화되기 때문이죠. 뇌의 혈류가 변연계로 모이니 이성을 담당하는 뇌가 일순간 정지할 밖에요. 들끓는 감정이 불쑥불쑥 이성의 뇌를 습격해서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이를 막으려면, 화를 조절하고 다스리는 법을 10대 때부터 차분히 익혀가도록 부모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딱 10분! 10대들의 말을 경청하는 시간입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자녀가 화를 낼 때 함께 화를 내는 것은 싸우자는 뜻입니다.
솔직히 이길 자신 있나요? 만약에 이긴다고 쳐요.
누가 지는 거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겁니다.
화를 낼 때는,
"잠깐만, 크게 숨 들이쉬고 3분만 참았다 이야기하자!"
활성화된 편도체를 가라앉히는 방법이죠. 자신이 성질이 난다고요?
 그럼 본인도 크게 숨을 쉬세요.
화가 진정된 후에는 화를 일으킨 불안의 원인이 뭔지 차분하게 이야기해보세요. 아니면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뭔지 살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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