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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Oct 05. 2021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게 잘못인가?

공정, 정의를 추구하는 10대

넌 왜 곧이곧대로 말하는 거야?


  10대들은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어릴 때는 고양이가 알을 낳는다는 터무니없던 거짓말도 잘 믿더니 요즘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잘 안 믿습니다. 하기는 요즘 10대들은 메주가 뭔지도 잘 모르지요.


  언젠가 식탁에서 있던 일입니다. 아마 콩나물 냉국이 평소보다 짜게 밥상에 올라왔을 겁니다.

  “윽, 짜다. 짜서 못 먹겠네.”

  콩나물 냉국을 좋아하던 둘째가 갑자기 식탁에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그래? 난 괜찮은데. 엄마가 애써 만들었으니까 조금 먹어봐.”

  “아니, 짠 걸 짜다고 하는데 뭐가 잘못이야. 그럼 쓴 약도 달다고 해야겠네. 치!”

  둘째의 말발에 완패. 더 따졌다가는 자칫 망신만 당하니, 인정할 수밖에요. 만약 그 자리에서 버릇이나 예의가 없다고 지적했다면, 둘째는 또 투덜거렸을 겁니다. 

  “무슨 말도 못하게 해!”라고요. 

  다행히 식구들은 아주 유연하게 대처했고, 그러자 둘째도 엄마 눈치를 살피더니 숟가락을 몇 번 입에 대는 시늉을 했죠. 


  10대가 되면 상황이나 맥락과는 상관없이 시시비비를 따지는 데에 열심입니다. 그래서 공감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10대들은 유독 공정한 것, 정의로운 것에 대해 관심이 높습니다. 조금 먼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1960년대에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많이 했다고 하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은 당시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10대였으니까요. 학생들이 물불 안 가리고 저항하면 그 뒤에 어른들이 호응하는 일이 역사 속에서 자주 목격되고는 했죠.  


  요즘은 첫째, 둘째 가릴 것 없이 학교생활 하다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식탁 앞에서 여과 없이 이야기합니다. 급식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학교 냉방이 형편없다, 시험 일정이 학교 편의적이다, 애들이 도서관에서 너무 떠든다 등등 시비 삼을 것들을 거침없이 늘어놓죠. 부모라고 예외가 아니고, 다른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호 위반이나 과속도 경찰이 아니라 애들 무서워서 조심하죠. 둘 다 어릴 때는 얌전하더니 전에 없던 비판이 부쩍 늘었습니다. 


부당한 것을 더 강하게 느끼는 까닭은?


  이런 변화는 10대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합니다. 뇌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죠. 우리 뇌에서 부당한 것에 대해 불편을 느끼는 영역은 뇌섬엽입니다. 뇌섬엽은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에 덮여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대뇌피질이죠. 뇌섬엽은 주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수행하게 한다고 하네요. 또한 뭔가 불결하거나 지저분한 것에 대해 혐오를 느끼게 하고, 고통을 느끼도록 디자인되어 있다고 하죠.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제품의 이미지를 보면 쾌락의 중추가 활성화되는 반면, 고가의 가격을 보는 순간 뇌섬엽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이지요. 


  부당하거나 옳지 않은 것, 부당한데도 그것을 고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 남들은 힘든데 누군가는 편하게 살고 있는 것, 다른 사람들과 달리 누군가 특혜를 누리는 것, 그래서 그것들에 대해 때로 불편하고, 때로 분노하고, 때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그것이 곧 뇌섬염이 작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뇌섬엽이 발달하는 시기가 바로 10대 후반부터입니다. 가장 활성화되는 시기는 20대죠. 그런 까닭에 10대부터는 공정과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에 분노하며, 20대에는 부당한 일에 시위도 벌이고 자기를 희생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뇌섬엽의 작용이 생애 후반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전두엽이 발달해서 더 큰 맥락에서 현실을 이해하기 때문이지요.


입바른 소리는 입이 바른 소리로 듣자     


  10대들이 부모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면 기분이 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입바른 소리는 10대 스스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공정한 가치에 대해서 눈을 뜨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숙해 가는 과정이지요. 그러므로 10대들이 지적할 때는 이 아이가 점점 성숙하고 있구나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입바른 소리 한다고 비난하거나 억누르면 어떨까요? 그 순간에 10대들은 뭔가 공정하지 않다, 억압당했다, 비합리적이다, 저 사람은 기성세대다, 꼰대다. 그러므로 더는 말해 소용없다, 말하지 말자, 차라리 저항하자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먼저 공감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부당하다고 여길 때에는 뇌섬엽은 물론, 편도체도 활성화될 게 분명하니까요. 공감을 표한 뒤에 냉정하고 차분해지면 그때 상황과 맥락을 설명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극단적인 옳고 그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대신, 주어진 조건 안에서 현실을 이해하는 능력이 서서히 향상될 것입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끼는 거 아냐’ 이런 말하는 거,
전형적인 부모 꼰대 소리 듣습니다.
더러운 것, 부당한 것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어도 한때려니 하고 지나가세요.
괜히 따지려 들다가 녀석한테 말립니다.
10대는 주변을 개의치 않아요. 왜냐? 잘 안 보이니까요.
그러니 맥락 없이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말만 툭툭 내던지죠.
그런 말에 상처받지 않으셔도 돼요. 
입바른 소리에 공감해주면, 10대도 공감하는 법을 배웁니다.
나중에 녀석이 기분 좋아졌을 때 귓속말로 말하세요.
‘그런 말 딴 데 가서 조용히 해주면 안 돼? 실은 나도 쪽팔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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