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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Aug 22. 2021

소년, 율곡은 어째서 가출했을까?

친애하는 10대의 부모들에게

인형처럼 예쁘던 딸, 어째서 반항할까?


  딸은 어릴 때 인형처럼 예뻤습니다. 인형처럼. 마리오네트라고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손목, 발목 관절에 실을 매달아 움직임을 조종하는 체코의 전통 나무 인형이죠. 어릴 때 딸은 겉모습도 깜찍했지만 마치 마리오네트 인형라도 되는 듯, 부모가 마음먹은 대로 곧잘 반응해줬습니다. 때때로 실이 엉킨 마리오네트처럼 말썽을 피우기도 했지만 엉킨 매듭이 풀리면 다시 사랑스럽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죠. 그런데 10대가 되자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아무리 엉킨 매듭을 풀려고 해도 잘 안되는 거죠. 마치 실이 끊어져서 아무리 당겨도 소용없는 인형처럼 말입니다. 


  또 다른 삽화를 하나 떠올려 봅시다. 우리나라 오천원 권 지폐의 주인공 율곡 이이 선생. 그는 중국에서 들어온 유학을 철학적으로 완성한 조선의 정신과도 같은 분이시죠. 그런데 혹시 이 분이 10대 때 가출 소년이었던 걸 아실까요? 


  율곡의 나이 16세. 어머니 사임당이 돌아가시고 아버지 이원수는 어머니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스무 살이나 어린 여자를 후처로 삼았습니다. 당연히 사임당의 자식들은 새어머니와 불화를 겪었고 소년 율곡은 어머니의 시묘살이를 마치자마자 그만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도 모르게 말이죠. 스스로 아버지와 연결된 실을 끊고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홧김에 찾아간 곳은 금강산 마가연. 그곳에서 소년 율곡은 승려가 되고 말았습니다. 불교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유학을 공부하던 소년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율곡은 나중에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반성합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망령된 슬픔을 잊고자 마음이 어두워져 깊은 산으로 들어갔노라고. 대학자 율곡에게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율곡의 10대 시절 뇌를 열어본다면, 아마 그 시기에 율곡의 뇌는 한창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공사 중이었던 거죠.      



10대의 뇌는 공사중?    


  10대 초반이 되면 뇌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부모에 대한 의존을 끊고 대신 독립을 위한 뇌를 다시 만들어가는 것이죠. 특히 전두엽에서는 기존에 쓸모없는 신경망을 제거하고, 쓸모 있는 신경망을 강화하는 가지치기가 대대적으로 진행됩니다. 


  리모델링은 분명히 뇌를 더 좋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사 중에는 사용에 제한이 생긴다는 것이죠. 전두엽의 기능이 오히려 그 전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기능들이 떨어지는 것일까요? 


  우리 뇌에서 전두엽은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분노와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전두엽이 공사 중이라면, 10대들은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공감 능력을 갖추기 어렵죠. 게다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상대를 비난하기 일쑤일 것입니다. 


  전두엽은 미래를 계획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능력이 부족한 10대들은 앞날에 대한 계획을 잘 세울 수가 없고 계획을 세워도 엉성해서 잘 지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충동적인 행동을 일삼고 자기행동이 불러올 결과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율곡 선생이라 해도 10대의 전두엽 리모델링 기간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소년 율곡은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시서화에 뛰어났던 아내 사임당의 그늘에서 항상 열등감에 시달리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런 아버지가 젊은 여자를 후처로 맞이했으니 가슴 속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뿐일까요? 자기 앞날을 예상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승려가 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지요. 이 일은 두고두고 일생을 쫓아다니며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가 죽은 지 200년이나 지난 뒤에도 윤휴, 허목 같은 선비들이 그를 학자의 탈을 쓴 승려라고 공격할 정도였으니까요.      



더 이상 마리오네트가 아니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전두엽의 리모델링은 대체로 10대 초반에 시작해서 늦게는 30대 초반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가지치기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되면 전두엽의 기능은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하죠. 중학교 때보다 고등학교 때, 고등학교보다 대학 때 머리가 성숙해지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항간에 ‘군대 갔다 오더니 철들었다’는 말을 어른들이 하고는 합니다. 사실 군대 때문에 철이 들었다기보다 그만큼 전두엽이 안정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지요. 


  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10대들은 부모가 마음먹은 대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자녀를 인형처럼 이끌 수 있다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죠. 10대들은 빠르지는 않지만 혼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공감 능력까지 갖춘 독립된 존재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순간 실이 끊어졌다고 당황해서는 안 됩니다. 당장은 아이를 키우던 재미가 사라지고, 부모만 바라보던 자녀의 외면에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실이 끊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죠. 실에 묶여 그저 예쁘게 반응하는 10대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자녀가 안 하던 일을 할 때는 독립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세요. 
마음의 끈을 하나씩 끊어줘야 독립을 하겠죠?
서운하지만 그렇게 크는 거죠.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할 때, 함께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세요. 더 심해질 테니까요.
차라리 공사 중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실제로 뇌가 공사중인 소리일 수 있죠.
충동적인 행동이 진정되면 그때 대화를 시도해봐요. 
공사를 하다가 휴식을 취할 때죠.
그때는 이야기가 좀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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