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참견을 참을 수 없었던 이유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에는 해결되지 못한 손님들의 방문을 받는다.
오늘 출근 지하철에서도 그랬다. 어제 있었던 일이 머리속에서 계속 맴돌았던 것이다.
어제 저녁 오랜만에 동네 책방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한달에 한번, 두달에 한번 정도 들르던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오랜만에 참석한 모임이었다.
참석한 이유는 해당 책이 이전에 읽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비폭력대화>,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스터디까지 했던 책이기에 가볍게 읽고 참석했다.
그 동안 참석하는 회원분들이 많이 바뀌었었다.
처음보는 두분이 계셨는데 두분다 가족간의 소통에 문제를 겪고 계시다는 말씀을 털어놓았고
그래서인지 <비폭력대화>를 무척 감명깊게 보신 듯 했다.
나도 처음 공부할 때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으니
그분들의 말씀에 동의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니 새롭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편안하게 이런 저런 의견과 소감을 나누었다.
그런데 내 가슴에 쿡하고 박힌 것은 책에 대한 의견 차이가 아니었다.
한 남자회원분께서 말씀하신 사연이었다.
그분은 자신의 딸이 자기가 밥을 먹는 소리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며 비난을 퍼부었다고 했다.
"더럽게 쩝쩝거리네!!" 딸이 했다는 워딩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왜 저렇게까지 공격적으로 얘기했을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 뒤 남자회원분은 화가나서 자기도 험한 소리를 했고 서로 한참을 싸웠다고 했다.
더 독하게 딸에게 상처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회원분은 참담한 표정이었다.
덧붙인 설명에서 딸이 저혈압이 있어서 가끔 학교에 늦게 간다는 점,
자기 생각엔 그냥 별일 아닌거 같은데 아내가 너무 과도하게 딸을 걱정한다는 것 등등
이런 사연을 듣고 보니 딸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그 아이를 저토록 날카롭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마저 아팠다.
어쩌면 뇌피셜일 지 모르는 생각들과 심한 감정이입에 나도 모르게
"딸이 정말 아버지를 비난하려고 그 말을 했을까요? 소리에 예민하거나 아프거나 한 상황은 아니었을까요? 혹시 물어보셨어요? "라고 참견했다. 그러고도 몇번이나 그분의 말에 끼어들게 되었다.
그 일이 내내 남아있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까지.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한테 왜 그 일이 그렇게까지 마음에 남았는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남자회원분과 그분의 딸에게 감정이입을 한 건 나와 아버지가 투사된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나를 못된아이 취급했던 아버지가 있었으니까.
나와 소리높여 싸운 아버지가 있었으니까.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던 숨막히는 경험이 있었으니까.
부모는 아이가 어떤 행동, 말을 할 때 자기 기준과 맞지 않으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부모를 괴롭히기 위해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행동의 이유중 대부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부모를 무시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나?
아이들은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부모를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아이는 늘 실패한다.
왜냐면 부모를 무시하는 행동과 말은 결국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자학과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결국 자기를 파괴할 말과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슬픈 아이들.
부모라면, 어른이라면 한번 쯤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그토록 징그럽게 연결된 사이가 바로 부모와 자식이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했었다.
그럼으로써 사실 아버지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혹은 나를 정당화했다.
"내가 맞을 짓을 했지" - (아버지가 가정폭력범은 아니야.) -(내가 가정폭력범 딸은 아니지)
"나는 맞은 게 아니라 아빠랑 싸운거야." - (나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 (나같은 딸을 만나서... 아버지도 안됐지)
그리고 그 고리는 나의 아이에게도 반복되었었다.
한 때 아이에게 심한 말을 했었다. 우리 아버지처럼...
"저 애는 날 괴롭히려고 그런다." "무슨 애가 저러냐."
그런 말로 나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이는 그저 나와 다른 인격체였을 뿐이라는 것을.
다른 경험으로 빚어진 완벽한 타인이지만 내가 내 기준을 버리지 못해 아이에게 날을 세웠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 어제 만난 회원분을 떠올린다.
사실 완벽하게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삶에 훈수를 둔다는 것은 거만한 태도이며 자기 과시다.
하지만 참견하지 않으려 애써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선을 넘나들기도 한다.
어제의 그 일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남겼다.
그리고 아직 풀리지 않는 숙제를 던져줬다.
어떻게 나의 경험과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
같은 지옥을 경험해본 동료로서 당신이 고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아마 이 숙제는 계속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