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래는 두 번 찾아온다

by 에투알 주아

https://youtu.be/djV11Xbc914?si=_flKbUKh74lWjW13


※ 본문에는 《라스트 오브 어스》 1·2편의 결말 및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연은 어디서 시작될까. 나에게 우연의 시작은 아마도 올해 2월, 양산의 작은 원룸으로 이사한 순간부터였다. 새 보금자리는 늘 곁을 지키던 컴퓨터가 설 자리조차 내주지 않았고, 나의 오랜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계획에 없던 플레이스테이션 5였다. 대학 전공서만 한 크기는 좁은 방에 안성맞춤이었다.



우연히 들인 게임기는 나를 또 다른 우연으로 이끌었다. 새 기기에 어울릴 게임을 찾던 중, 유독 많은 사람이 극찬하던 스토리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를 발견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장르였지만 어쩐지 마음이 갔고, 나는 곧 그 세계에 잠식당했다. 그곳에서 나는 딸을 잃은 밀수업자 조엘이 되어, 우연히 만난 소녀 엘리와 함께 좀비가 창궐한 폐허를 횡단했다. 서로에게 유일한 의지가 되어준 기나긴 여정의 끝에서 둘은 가족이 되었다.


그 거대한 서사가 남긴 여운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러나 현실은 이내 시시한 문제로 돌아왔다. 최근 달리기에 빠져 값비싼 장비들을 사들인 탓에 카드가 정지되었고, 덩달아 애플뮤직 구독도 끊겼다. 음악을 달고 살던 터라 그 빈자리는 컸다. 대안을 찾던 중 ‘내 취향의 음악을 귀신같이 찾아준다’라는 문구에 이끌려 스포티파이를 설치했다.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 스포티파이가 매일 건네는 낯선 노래에 내 손가락은 ‘좋아요’를 누르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앱은 내게 a-ha의 〈Take on Me〉를 건넸다. 신시사이저 전주는 유튜브에서 스쳐 들은 듯 익숙했지만, 후렴은 생소했다. 경쾌하고 매혹적인 리듬 속에 어딘가 몽환적인 분위기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온종일 그 노래만 들었다.



얼마 뒤, 전편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게임 구독 서비스에 《라스트 오브 어스 2》가 추가됐다. 나는 망설임 없이 시작했다. 이번 주인공은 엘리. 전편의 여정 끝에 겨우 찾은 평화는 조엘이 낯선 이들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당하며 산산조각 났고, 그녀는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났다.


여정 초반, 엘리는 폐허가 된 어느 집에서 먼지 쌓인 기타를 집어 들었다. 생전 조엘에게 배운 악기였다. 그녀가 조심스레 줄을 튕기며 노래를 시작했을 때, 나는 컨트롤러를 쥔 채 굳어버렸다. 며칠 전 스포티파이가 내게 건넸던 바로 그 곡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녹슨 기타 줄처럼 가늘고 위태로웠다. 이내 공간은 잃어버린 이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원래 그 노래는 질주하는 청춘을 노래했다. 확신보다 가능성에 도전하는 미래를 향한 고백. 하지만 엘리의 노래는 멈춰버린 시간을 되뇌었다. 그녀는 조엘이 남긴 음악으로 그를 기억했다. 나는 달랐다. 누군가를 잃으면 그리워하기보다 잊는 편을 택했다. 후회가 두려워 감정부터 지웠고, 기억은 그 뒤를 따랐다. 엘리는 그리움을 붙들었지만, 나는 외면으로 버텼다.


나는 사람 사이에 틈이 생기면 굳이 메우려 하지 않았다. 말실수가 거슬리면 연락을 늦췄고, 약속이 취소되면 다음을 기약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름과 함께 감정도 지워졌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쉽게 부서졌다. 트랙을 돌다 관중석에 앉을 때나, 코인 노래방에서 다음 곡을 고르며 숨을 고를 때였다. 나란히 걷던 그림자나 물병을 건네던 손길이 불쑥 떠오르면, 나는 매번 속수무책이었다. 그럴 때마다 억지로 밀어내듯 더 빨리 달렸고, 목이 쉴 때까지 더 크게 불렀다.


우연은 덮어둔 감정을 다시 불러왔다. 신나던 가사가 끊어질 듯 흔들리는 기타 소리에 실려 방 안을 채웠다. 엘리의 목소리가, 내가 손쉽게 지웠다고 믿었던 얼굴들을 하나씩 불러냈다. 불편했지만, 이젠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어떤 노래는 두 번 찾아와서야 비로소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니까.


https://youtu.be/sp_lC6hffPo?si=lKH7sjwbqF3NX_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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