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뭐가 중요해? 더 빨리 달려!

by 에투알 주아

"악!"

"야야, 니 괜찮나?"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멎었다. 왼쪽 무릎 바깥에서 송곳이 뼈와 인대를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이 터져 나왔다. 옆에서 친구가 무어라 외쳤지만, 나는 거칠고 마른 숨만 내쉴 뿐이었다. 시선은 저 멀리, 비현실적으로 빛나는 영대교에 고정됐다. 분홍빛과 주홍빛 광선이 다리를 따라 곡선을 그렸고, 그 빛은 다시 수백 개의 파편이 되어 강물 위에서 일렁였다.


타들어 가는 호흡, 두 손으로 부여잡은 무릎, 잡초 길에 나뒹구는 몸뚱이. 2025년 10월 11일, 저녁 7시 30분.


나는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비우기보다 뚜껑부터 덮는 편이다. 당장 해결할 수 없거나 마주하기 싫은 문제일수록 더 그랬다. 그 버릇은 몸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른을 앞두고, 내 몸은 그 방치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환절기마다 잔병치레했고, 지하철 계단은 태백산맥처럼 느껴졌다. 친구와의 여행은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방전되기 일쑤였고, 탄수화물과 술로 채운 밥상은 ‘당뇨 위험군’이라는 경고장으로 돌아왔다.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밀린 대가를 치르듯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불안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국밥에 새우젓을 쏟아붓던 친구는 고혈압을, 물보다 술을 즐기던 친구는 뇌경색을 걱정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꼬드겼다. 마침, 한 지인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운동”이라며 달리기를 권했다. 그 무시무시한 말이 이상하게 나를 홀렸다. 아무나 할 수 없다니! 낡은 운동화와 의지만 있으면 된다는 점도 더할 나위 없었다.


시작의 증표처럼 우리는 ‘러닝 워치의 나이키’라 불리는 가민(Garmin) 워치를 함께 샀다. 가민은 운동 기록을 SNS처럼 공유했다. 친구의 기록이 실시간으로 뜨자, 확인은 비교가 되었다. 운동 초반의 의지는 쉽게 식는 법이니, 서로를 묶어둘 장치가 필요했다.


우리의 계산이었다. 한 달도 안 돼 그 계산은 적중했지만, 이내 과열되었다. 가장 멀리 달린 사람이 이기는 ‘챌린지’ 기능이 불을 붙였기 때문이었다. 건강을 위한 달리기는 경쟁으로 변질됐다. 하루에 두 번씩 뛰는 친구가 생기더니, 급기야 ‘대리 러너’까지 등장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10월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양산천의 흙길과 아스팔트 길을 달려 순위를 끌어올렸다. 숫자가 노력을 증명했기에 터질 듯한 호흡과 후들거리는 다리의 고통도 견딜 만했다. 그러나 참으면 되는 줄 알았던 그 고통은, 몸이 보내는 적신호였다.


그날도 그랬다. 오른쪽 둔근이 뻐근하고 왼쪽 무릎에 얼음을 댄 듯 냉기가 느껴졌지만, 시선은 워치에서 떠날 줄 몰랐다. 그렇게 한 시간을 채웠을 때, 더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가까스로 집에 돌아와 확인한 병명은 ‘장경인대 마찰 증후군’. 몸이 보낸 신호를 무시한 대가였다. 건강을 찾으려다 오히려 몸을 해친 셈이다. 더 뼈아픈 것은 내 몸의 언어를 전혀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달릴 수 없게 되자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나는 밤마다 습관처럼 가민 앱을 열었다. 친구들의 프로필에는 ‘10km’, ‘15km’ 같은 숫자가 새로 찍혔다. 나는 부러움과 조급함, 낙오의 불안 사이를 절뚝였다. 12명 중 8위. 계단조차 제대로 내려가지 못하는 내게 그 숫자는 이제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인터넷에서 장경인대 부상이 고관절과 둔근 약화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장 다이소로 달려가 마사지볼과 폼롤러를 샀다. 몇 주간 그것들로 몸을 반죽처럼 밀고 두드리며 고관절 스트레칭과 보강 운동에 매달렸다.


다행히 통증이 빠르게 가라앉았고, 나는 운동 방식을 바꿔 다시 시작했다. 달리기는 주 2회로 줄이는 대신, 매주 한 번씩 등산을 시작했다. 속도와 거리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오직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움직인다는 새로운 규칙을 세웠다.


친구들의 권유로 울산 간월재에 올랐다. 17킬로미터를 다섯 시간 동안 오르내리는 길은 달리기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기대했던 억새 물결과 웅장한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폭우와 안개, 살을 에는 추위뿐이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정상 휴게소에 도착했을 땐 옷가지도 변변찮았다. 산행 내내 인적이 드물어 정상도 한산할 줄 알았지만, 넓은 평상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겨우 자리 잡는 와중에, 뒤에 앉은 할머니가 다리를 뻗다 내 엉덩이를 찔렀고, 한쪽에선 누군가가 어떤 커플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때 저들은 왜 싸우냐고 묻는 사람, 집이 어디냐며 감을 건네는 사람, 플라스크 물병을 신기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시끌벅적한 사람들 틈에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마냥 나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양산천을 달린다. 저녁이면 영대교에 불이 켜지고, 그 빛은 강물 위에서 여전히 아름답게 부서진다. 다만 이제는 멈춰 서서 강가의 들꽃을, 해 질 녘의 윤슬을, 제자리를 맴도는 오리를 바라본다. 러닝 워치의 기록 대신 휴대폰 앨범에 새로운 풍경이 쌓여간다. 나는 그 빛나는 풍경 속을 내 몸이 허락하는 속도로 지나간다. 서른, 비로소 내 몸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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