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의 창조적 가능성

수 천 장의 습작에서 배우다- 미켈란젤로

by 바다별다락방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한다. 인간에게 있어 이러한 행위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 더 나아가 스스로를 가장 잘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무엇이든 정리해야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를 특정한 종류의 사람이라 인식하고, 선언하고자 한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거에 유행했던 혈액형별 특성이나 최근의 MBTI가 그러한 특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특정 방식으로라도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위안은 오래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MBTI가 ESFJ이고, 그런 그는 ESFJ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에게서 그러한 성향이 보이지 않게 되면 '어? 내가 달라졌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도구가 자신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심지어는 MBTI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묘한 상황이 찾아오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도 MBTI의 신뢰도는 높지만 타당도는 낮다.)


그런데 과연 위의 방식대로 자신을 가르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선언하는 것이 우리의 창조력에 도움이 될까. 인간의 창조성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그것이 솟구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것은 늘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주변의 예술가들도 하나같이 말하는 바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분이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통제하지 않을 때, 창조성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머릿속으로 자신을 정리할 시간에 창조성이 흘러들어올 창구를 꽤 자주 열어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천재라고 불렀던 미켈란젤로는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였다. 그러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려야 했을 때,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그런데도 그는 해냈다. 그가 천재여서였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진 않는다. 천장화를 그리기 전, 그가 남긴 스케치를 보면 하나의 작품이 그토록 완성도가 높은 이유를 알게 된다. 아마도 수 천장이 되는 습작을 하는 도중에 창조성을 만났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출처: https://www.koreadaily.com/article/8068237

분명 그는 처음부터 창작을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나서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저 붓 가는 대로 따라갔을 뿐인데 거기서 예상치 못하게 '그분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뚜렷이 알았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저 자신을 열어두고 그 안에 몰입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는 중에 분명 실수도 했을 것이고, 덧 그리기도 여러번 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그가 남긴 것은 누가 봐도 완벽한 작품과 그의 발자취가 남긴 기록들 뿐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다른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남아있는 600여 장의 습작과 엄청난 대작 하나가 보내는 메시지는 잠들어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창조력이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아이디어를 쫓아다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자에게 거저 주어지는 영감이란 없다. 그 어떤 형태가 되었든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가능성과 미지의 영역에 대하여 열린 즐거움을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 과거부터 인간의 산물은 끊임없이 인간을 정의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 정도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의 시도 안에서 창조성과 조우하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와 가치는 바로 그 속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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