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던 채식주의자를 드디어 읽었다.
한강작가는 수많은 사람의 삶에 들어갔다 나오고를 반복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책을 쓰면서 손을 앓았다고 한다. 손을 앓아서 타이핑 알바생을 두고 소설을 쓸 정도였다. 얼마나 다양한 삶의 군상들의 심연을 관찰하면 손을 앓게 될 정도가 되는 것일까.
"한낮의 여름 나무들이 마치 초록빛의 커다란 불꽃들처럼 그녀의 눈앞에 어른거린다." _ 채식주의자
한강 작가는 숲의 녹음을 초록빛의 불꽃들로 보았다.
불꽃은 다소 폭력적이다. 폭력적일만큼 강력하게 무언가를 뚫고 솟구치어,
주워담을 수 없을 만큼 하늘에 큰 파동을 일으킨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삶에 숨어있는 폭력을 기괴하지만 일상적인 방법으로 끌어내어 큰 파동을 일으킨다.
꾸역꾸역 지키려고 했던 삶은 끝내 자잘한 조각들이 되어 허공에 날아간다. 삶의 조각들은 숲의 초록빛 불꽃들 사이로 흩어진다. 다시 돌려 담을 수도, 찾을 수도 없이 흩어진다. 기다려도 답은 없다. 사라진 삶을, 지키려고 했던 삶을 회환의 감정으로 또는 쏘아보듯이 계속 쳐다 볼 뿐이다.
소설은 삶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삶의 문제를 의식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게 위로가 된다.
채식주의자는 내게 그런책으로 남을 것 같다
빈 욕조에 웅크려 누워 눈을 감으면 캄캄한 숲이 덮쳐온다. 검은 빗발이 창처럼 꽂히고, 깡마른 맨발이 진흙에 덮인다. 그 모습을 지우려고 고개를 흔들면, 어째서인지 한낮의 여름 나무들이 마치 초록빛의 커다란 불꽃들처럼 그녀의 눈앞에 어른거린다.
-채식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