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drawing Jul 13. 2020

관계의 성장통





요즘 꿈을 꾸면 자주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가령 초등학생이나 고등학생 때로. 


그리고 주로 꾸는 꿈의 내용은 친구들과 그닥 중요하지 않은 시시한 일로 웃거나 떠드는 내용이다. 

근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지금은 관계안에서 잘 느낄 수 없는 

아무 계산 없이 그저 나의 가장 순수한 부분을 그대로 꺼내어 공유하는 기분이랄까. 


요 몇달간 사람이 싫어진 때가 있었다. 한 친구 관계에서 곪았던 염증이 터지니 나의 모든 부분에 염증이 묻어서 다른 관계까지 예민해지고 싫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자체가 무서웠다. 시간을 보내며 함께 피운 관계의 꽃이 이렇게 다 시들어버릴 것이었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왜 나는 내게 맞지 않는 상대의 언어를 허락하며 나의 아픔을 숨겼을까. 참으로 나의 시간과 감정들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한창 앓고 난 후에 보니, 어린시절 앞뒤없이 그저 즐거웠던 날들이 무의식중에 그리웠나보다. 

그리고 꿈을 꾸면 나는 그시절로 항상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내가 관계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어스름하게 싱겁고 아무렇지 않게 기쁜 감정들을 꿈에서야 느꼈고, 꿈에서 깨면 울기도 하거니와 한동안 잠에 들기 어려웠다. 그때의 그시절에 느낀 감정들이 현재 나의 상태를 더 초라하게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나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른이 아닌것만 같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관계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거라고 왜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관계에서 조금씩 발을 빼가면서 사람과의 거리를 조율하는 시기를 가지기 때문에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꼈던 경험들을 잠시 망각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내 자신에게 솔직한 언어와 대화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텐데 

괜찮은 척하는 말과 표정으로 우리는 한편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어기제는 대부분 상대도 느끼게된다. 방어기제를 단단히 세우고 있는 사람을 대하노라면 그 단단함에 상대도 기분이 나빠질 사소한 경우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방어기제를 세우는 것 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내게 솔직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방어기제를 섣불리 남발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감정과 마음에 솔직해 질 수 있을까. 


비우면 볼 수 있지 않을까. 

복잡한 생각과 감정의 찌꺼기들을 비우면 아주 사소하고 어쩌면 별거 없는 나의 솔직한 느낌만이 남는다.  

그 순간 느낀 나의 느낌이 나의 가장 솔직한 감정인 것이다. 

이런 순간을 회피하거나 지나치는 것이 습관화 되어, 그럴듯한 말로 그 순간을 모면하다보니

어느새 나의 솔직한 감정에 아주 보기좋은 찌꺼기들이 잘 붙어있던 것이다.

이러한 찌꺼기들을 비워야한다. 


살다보면 하루하루 내게 무언가 쌓이고 누적된다. 그것들이 정보든 감정이든 말이다.

계속 누적시키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터질 것이다.

사람이 다룰 수 있는 용량은 한계가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산다는 것은 누적시키는 동시에 비워가야 하는 것이다. 


나의 가장 솔직한 목소리는 누적된 나의 신체와 정신에서 나의 솔직한 감정들을 분리나의 누적된 정보와 감정들로 확고해진다. 나의 솔직한 목소리로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을 불러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나의 밖으로 비워내는 것이다. 그것이 관계가 되었든, 물질이 되었든 사건이 되었든 말이다. 


그리고 한가지 알게된 사실이 있다. 

비워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비워낼 때에 성장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비워낸다는 것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를 내게서 떼어내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하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이 자녀를 독립시키거나 결혼시키면서 겪는 일종의 성장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그 성장통을 겪고 있다. 


지금 내 관계안에서 겪었던 일련의 씁쓸함은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던 관계들을 비워내는 과정에서 겼어야 했던 성장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익숙했던 무언가를 떼어내기란 참 쉽지않다. 

그것이 내게 상처를 주었던 것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 관계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내가 있었던 곳이 천국이 아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성장통을 겪고 얻게되는 홀가분 함. 비로소 나다움으로 돌아가는 순간들이다. 


나의 꿈속에 계속 출연한 학창시절의 풋풋하고 순수한 웃음들은

현재 내가 성장통을 겪고 있는 동시에, 가장 '나다웠던 웃음을 지었던 순간'들을 

찾아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픔은 분명히 지나간다. 대신 아픔을 겪는동안 애먼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화를 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그저 이 성장통이 나를 통과하여 지나가기를 나의 일을 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아픔이 나를 통과하기에 아주 좋은 자세와 태도로 버텼다고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노동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