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고유한 리듬을 찾아서
정신이 깨는 게 조금 더딘 탓도 있고,
때로는 밤새 몰아서 처리한 일들 때문에 자정쯤이 되어야 비로소 여유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미라클 모닝이 열풍이었을 때는 올빼미인 제가
무슨 게으름뱅이인양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패턴이 나약함이 아니라
내 일의 '방식'임을 알아차린 후부터,
이 시간을 편하게 즐기기로 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실행'의 시간입니다.
회의가 있고, 결정을 내려야 하고,
저와 함께하는 크루들과 움직여야 합니다.
현장에 들르거나, 디자이너와 협의하고요.
참, 무엇보다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일도 중요하죠.
이 시간들은 외부의 요청에 반응하는 시간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정확하게 대응하는가 역시
기획자의 중요한 역량이니까요.
하지만 기획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낮에 모은 정보들, 현장에서 받은 피드백,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합쳐야 하죠.
그리고 제 기획을 뒷받침하는 전략과 철학,
좋은 메시지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절대적인 나만의 시간이요.
밤 11시쯤이 되면 세상은 조용해집니다.
메시지는 더 이상 오지 않고, 전화도 울리지 않습니다.
이 조용함 속에서 비로소 제 감각이 깨어납니다.
읽어야하거나 좋아하는 책들을 펼치고,
때론 음악을 듣고,
가끔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눕니다.
기획자는 정보와 감각 사이에서 일합니다.
세상 등쌀에만 시달려선 좋은 기획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롯이 사유하고 감각을 느끼는 시간이 밤입니다.
책에서 발견한 문장 하나가 캠페인 메시지가 되기도 하고, 음악 한 곡이 브랜드의 톤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이
제 일을 채운다는 걸 인정하고 마음껏 즐기는 중입니다.
그래서 저의 진짜 아침은 오후 3시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이 리듬이 게으름이나 나약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상의 평균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맞는 리듬을 찾는 것.
부지런한 사람보단
고집스러운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제겐 늦게까지 깨어있을 권리가 있는지도 모르죠.
당신도 혹시 자정을 넘기는 사람이라면
자책 대신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보시길.
책, 음악, 사람, 사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채워진 밤이 더 빛나는 날들을 만들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