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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Feb 04. 2016

와인을 마시며 가난을 생각하다

오늘은 와인이 땡기는 날이다. 이런 날은 흔치 않은데, 얼마 전 누가 선물해준 프랑스 와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와인 오프너는 찾았는데, 와인 잔이 없다. 냉장고에서 치즈를 찾는데, 뿌려먹는 치즈밖에 없다. 먹다 남은 과자를 집어 들었다.


보르도 산 와인이다. 보르도가 얼마나 좋은데요-라고 했던 H가 생각이 난다. 난 가보지 못했다. 나름 프랑스 곳곳을 누볐다고 생각했는데, 보르도를 가보지 않았다니 말을  말아야겠다. 


포도주병의 겉이 뭔가 화려하고 병 아래가 쏙 들어간 걸로 봐서는 싼 와인은 아닌 것 같다. 와인을 잘 모르기에 추측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가난한 유학생이었으니까.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나는 왜 지금도 가난할까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마음만 가난하지 않으면 된다고 되뇌어보지만, 어째 마음까지 가난해진 것만 같다. 


지독히도 가난한 삶을 살았던 카뮈. 그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웠다지만, 나는 부유함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카뮈가 나고 자란 이 곳, 알제리에서 나는 그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태어난 울레드 파예트(Ouled Fayet)는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다. 자식을 남겨두고 생명을 다할 때, 아버지로서 얼마나 마음이 미어졌을까. 가슴 절절한 사연이 한 둘이 아니네. 남 생각하지 말고 나부터 우선 생각하자. 나부터가 가슴 절절한 사연이니.


포도주 맛이 좋다. 괜찮은 와인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던데, 오늘은 혼자라도 와인이 혀에 착착 달라붙으면서 묵직한 느낌을 주니 좋다. 


프랑스에 있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추운 날이었다. 마르고 텅 빈 내  몸속으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들이 신호에 걸려 움직이지 않을 때 나는 넓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딱 중간쯤에 왔을 때였을까. 왼쪽으로 보이는 교회과 그 밖의 풍경들이 너무도 슬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울어버리고만 싶었다. 그때 내 옆에 일행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오늘 밤은 와인과 추억에 취하자. 내일은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 그러니 내일 아침부터는 비즈니스 마인드로 확 변해야겠다. 시간이 별로 없다. 정신줄 놓고 감정에 우선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Église Saint-Augustin de Paris. 참고로 성 어거스틴은 알제리 태생이다.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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