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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Mar 11. 2016

알제리적인 삶

이 곳에서의 나의 삶은, 졸릴 듯이 잔잔한 무반주곡이 흐르다 갑자기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오케스트라 곡과도 같다. 지금 나는 잠시 폭풍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가끔 여긴 어딜까를 생각하면 고속도로 위 자동차 시트 안의 나를 발견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나의 삶은 끊임없는 스타카토였다. 아니, 꽤나 묵직했으니 큰 북을 정신없이 울려대는 것과 같았으리라. 그건 음악이 될 수 없었다. 연주를 하는 이나 그 음을 듣는 이나 누구도 즐길 수 없는 행위를 우리는 하고 있던 거니까.  


언젠가 서점에 갔을 때,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 있었다. <프랑스적인 삶>. 과연 프랑스적인 삶은 무엇일까 궁금해서 책을 샀는데, 제목에서 상상되는 이미지와 책의 내용은 서로 꽤 달랐다. 이른바 점심을 여유롭게 즐기고 바캉스를 위해 일하는, 이상적인 프랑스적인 삶을 다룬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공세로 인해 주인공의 회사가 점점 기울어가는 부분이 꽤나 인상 깊었는데, 경제적 안정 없이는 풍요로운 삶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나의 인식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돈이 없는데 어찌 멋진 프랑스 식당 테라스에서 여유로운 저녁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어떻게 프랑스적인 삶이 파괴되어 가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책에서 프랑스적인 부분을 꼽자면, 성적으로 방종한 주인공의 행동들뿐이라고 대답하고 싶을 정도였다.


친구를 통해 미국에 건너간 선후배의 소식을 오랜만에 들었다. 세계 최강자인 나라에서의 그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잘 헤쳐나가는지에 대해 듣고 싶었던 나의 기대와 다르게, 친구는 그들의 빡빡하고 고된 삶을 전해 주었다. 그러니 미국적인 삶도 우리에게 쉽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을 떠나 알제리에 정착한 나의 '알제리적인 삶'에 대해 한동안 생각했다. 과거, 그리고 미래. 도무지 불투명한 미래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있지만(하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는 내 삶의 많은 부분에 있어 꽤 만족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러니 나는 알제리적인 삶을 이어가겠지. 가끔 나를 우울하게 하는 비가 내리지만, 그래도 괜찮다. 조금만 젖으면 되니까. 이 곳은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는다.


아침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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