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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Oct 12. 2016

정원, 그리고 연결

집의 정원을 계획하면서 주제를 어떤 것으로 할까 우선적으로 고민했다. 건물 사방으로 여유공간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각각의 공간들이 조각조각 분리되면서 이용에 한계가 있던 상황. 그렇다면, 각 공간들을 좀 더 매력적으로 재탄생시키는 것과 동시에 이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게 중요하다 보았다. 그렇게 해서 주제는 '연결'로 확정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많은 식물들이 다행스럽게도 활착했고 정원이 나름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런 와중에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교목이 한순간에 생명을 다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나는 더 이상 손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공간을 굳이 삽으로 파내 다른 식물을 심기도 했다. 그러니 전반적으로 안정된 가운데서 작은 변화가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어제는 월계수(Laurier noble)를 심다가 미셸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프랑스 무동(Meudon)에 있는 그의 정원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는 내게 월계수를 설명해줬고, 민트 화분을 건네 아파트 베란다에 심게 해주었는데. 마침 나의 정원에는 월계수 바로 옆에 민트가 열심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으나, 온라인을 알지 못하는 이 분께 연락드릴 방법이 없다. 그 당시에도 적지 않은 나이였는데, 어쩌면... 콧 시울이 잠시 시큰해졌다가, 얼른 호스를 빼내어 나무에 물을 줬다. 호스에서 나오는 물이 꼭 눈물 같다.


정원 주제인 '연결'에 더없이 들어맞는 순간이라 느꼈다. 알제리에 있지만 프랑스에서의 추억과 '연결'되었으니 말이다.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두 나라이니, 식물 또한 공유되는 부분이 많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식물이 연결을 위한 좋은 매체가 되었다.  


엊그제 큰 비가 내리면서 정원 일부가 망가졌다. 근데 하필이면 무를 심은 곳에 집중타가 가해져, 고작 세상에 나온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무싹의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로부터 보다 안전한 곳으로 무를 옮겨 심고, 쑥갓, 깨, 상추의 모습을 살폈다. 무보다는 약간 느리지만 녀석들도 조금씩 싹을 보이는 게 그리 기쁠 수 없다. 그러면서 어릴 적 아버지 고향에 찾아가 큰어머니의 농사일을 거들던 때를 추억했다. 붉은 토양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꼿꼿이 버티던 녀석들. 생각에 생각이 이어져 고추, 수박, 명절, 친척... 그렇게 결국 또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됐다. 


그러니 내 정원은 그 주제에 너무도 잘 맞게 만들어져서, 나를 프랑스와 한국으로 이리저리 데리다 준다. 이 여행이 싫을 리는 없다. 다만 실제의 내 몸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다. 내년 어머니의 환갑에는 찾아가 뵐 수 있을까. 사람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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