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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ug 04. 2018

알제리-튀니지 여행 2

힘들게 국경 넘어가기

알제리 국경에서의 절차를 마치고 튀니지 국경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차량보험에 대해서 세관원과 K 간에 이견이 생겼다. K의 말은 알제리에서 가입한 AXA차량보험은 튀니지에서도 커버가 된다고 주장했고, 세관원은 그 차량보험은 알제리 전용이라 튀니지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세관 접수 데스크의 안내 창을 확인했는데 튀니지 차량보험 가격표가 떡 하니 붙어 있었다. 다른 종이 없이 딱 그것만. 이 곳은 겉으로는 세관검사를 하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차량보험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당하지 않은 곳에는 단 돈 한 푼이라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K의 성격을 아는 나는,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마도 K의 실랑이는 오래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관 검사원이 물러서겠는가. 그는 그 나름대로 보험판매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할테니.  


한참 후 다른 세관원와서 K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제 저 쪽은 2명, K는 혼자. 약간 치사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나는 나중에도 이와 비슷하게 치사한 행동을 한다.), 나는 K 쪽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기지 못할 싸움에 왜 힘을 빼야 하는가. 이윽고 K는 튀니지 전용 차량보험에 들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튀니지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알제리 국경을 넘어오기 전에 작은 마을을 거칠 때마다 우리를 향해 돈다발을 흔들어 보이던 그들에게서 약간의 돈이라도 환전했어야 했다. 수도 튀니스에 도착할 때까지 튀니지 돈을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사실 차량보험만 아니었다면 쓸 일이 없었다. 물과 먹을 것은 차 트렁크에 넉넉하게 있었으니까.


이때 바깥을 어슬렁거리는 늙은 세관원이 보였다. 그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자신이 해결해주겠단다. 그러면서 건물 뒤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그와 우리는 멀뚱하니 서있기만 했다. 과연 어떻게 해결해주겠다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날이 더워서 묻지 않았다. 그저 나는 기둥 옆에 바짝 붙어 조금이라도 그늘에 서있고자 노력하기만 했다.


한참이 지난 후 차량 한 대가 지나가려는 때 늙은 세관원이 그 차를 세웠다. 그리고 튀니지 돈이 있냐고 우리를 대신해서 물었다. 차량 운전수는 마치 심문이라도 당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잔뜩 언 표정으로 돈이 없다고 했다.(세관원의 복장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늙은 세관원은 하릴없이 그 차량을 보내줬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차를 기다렸다. 날은 더욱 더워졌고, 우리 3명은 계단에 앉아 다음 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른 차량이 우리를 지나가려는 찰나, 그가 차를 세웠다. 가까이 가보진 않았지만, 그는 환전의 일에 충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차량 운전사. 그렇게 2번째 차가 지나갔다.


시선을 돌려 K를 바라보니, K는 고개를 박은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차라리 우리가 직접 환전을 하려고 했으면 어땠을까. 내 생각이지만 100%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율에서는 매우 손해를 봤을 것이다. 외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건 대부분 손해를 각오해야만 한다.


다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다행히 늙은 세관원이 어느 순진한 운전자를 만나 튀니지 돈으로 환전해줬다. 기뻐하는 K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이런 말을 건넸다.


"아마 저 세관원 분이 따로 돈을 요구할 것입니다."


나보다 아프리카 여행도 훨씬 많이 한 K의 눈이 동그래진다. 사람이 이렇게 순진할 수 있을까.


"제가 오면서 말했죠. 튀니지 사람은 알제리 사람이 아닙니다. 두고 보세요."


아니나 다를까. 건물 정면으로 돌아오는데, 그 늙은 세관원은 K 옆에 달라붙었다.


"보험을 우선 구매한 다음, 커피 사 마실 돈 좀 줘."


보험을 구매한 다음에 K는 늙은 세관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2 디나(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1,000원도 안 되는 돈)를 건넸다. 정말 커피만 사 마실 수 있는 돈. 늙은 세관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됐습니다. 안 받아요. 이 돈 갖고 뭐합니까?"


나는 이 일로 인해 뭔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불안해졌지만, 그냥 잠자코 있었다. 긴 시간처럼 느껴졌던 몇 초가 지났고, 늙은 세관원은 우리 보고 가라는 손짓을 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튀니지 국경을 통과했다. 나는 K에게 물었다.


"우리 나중에 튀니지에서 알제리로 돌아올 때, 저 사람이 국경 통과 안 시켜주면 어떡하죠?"


"다른 국경검문소로 갑시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항일의병과 같은 모습이 K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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