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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ug 04. 2018

알제리-튀니지 여행 3

안전운전이라는 게 뭔가요

같은 아틀라스 산맥인데도, 국경의 동쪽과 서쪽이 다르다. 알제리 엘 칼라의 다양한 식생이 튀니지로 넘어서자 단조롭지만 강한 식생을 형성하고 있었다. 숲을 한참 지나 보내고, 어느덧 Y자 형태의 갈림길을 마주했다. 우리는 어느 쪽으로 가야 수도로 갈 수 있을지 몰라 차를 세웠다. 근처에 있던 사람에게 길을 물었는데, 좌측으로 가라는 답변을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멀고 먼 산길을 타게 되었다. 사실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었다. 좌측이건 우측이건 어찌 됐건 수도에 도착했을 거다. 다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튀니지 유심을 미리 준비해서 구글맵 내비게이션 기능을 이용해야 했다.


여전히 해발고도는 높았는데 산길을 꺾을 때마다 차는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커브길에서 차가 미끌려 차선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반대편으로 핸들을 돌렸고 이제 차는 반대편으로 차가 쏠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는데, 이때 차량속도가 확연히 줄어들면서 차는 원래 차선으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복귀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잠시 마음 좀 진정시킬 겸 K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그런데, 약속시간에 늦은 K에게 안전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운전을 사실 잘하는 편이 아닌 그가 좁은 산길의 내리막에서 시속 80km를 넘기고 있던 것.


"이런 곳에서는 천천히 운전해야 할 것 같아요. 게다가 아까 우리 차가 길에 미끌리는 것도 봤잖아요."


그러나 K에게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안전벨트를 고쳐 매면서, 만약 저 앞에 보이는 왼쪽으로 꺾는 커브에서 차가 왼쪽으로 돌다가 오른쪽으로 갑자기 방향을 바꿨을 경우 나는 대체 어느 쪽으로 몸을 움츠려야 덜 다칠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땀인지 식은땀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등줄기를 타면서 옷을 계속해서 적셔댔다. 날은 매우 더웠고, 우리의 차는 에어컨 바람을 전혀 내고 있지 못했다. 사실 에어컨이 고장 난 차를 끌고 우리는 여름날 튀니지 국경을 넘고 있는 것이었다.


무사히 우리는 산길을 통과했고, 차창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약간 서늘해졌다. 이제는 산길보다 안전한 고속도로를 타고 튀니스로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구글맵을 켜면 우리의 위치를 지도상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 즉, 친절한 내비게이션 기능은 이용할 수 없지만 적어도 독도법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길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는 상황을 의미했다.


"이제는 튀니스까지 길을 헤매지 않고 갈 수 있겠어요!"


상기된 나의 표정에 K의 반응은 생각보다 신통찮았다. 진작 알아냈더라면 하는 질책의 의미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됐건 과거는 과거. 튀니스까지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만 했다. 그가 운전하고 나는 길을 알려주기로 했다. 나는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는 파란 점과 향후 교차로의 점을 상상의 선으로 이은 다음, 그 선분의 길이를 실제 거리로 대략 변환해 K에게 알려줬다.


"전방 500m 정도 후에 라운드 어바웃이 있는데, 그때 우회전해야 해요... 어, 대략 100m 남았어요... 50m인가. 어쨌든 우회전! 정확히 말하면 2시 방향!" 이런 식으로 나는 연신 K에게 거리와 방향을 알려줬다.


다행히 길을 헤매지 않고, 우리는 튀니스 시내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K가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인간 내비게이션 좋은데요."


칭찬에 기분은 좋았지만,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흔들리는 차에서 계속 조그만 액정을 바라보자니 눈이 꽤나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어디로 갈까요? 원래 계획인 숙소에 들렸다가 가면 약속에 더 늦게 될 것 같은데."

"약속 장소로 바로 가시죠."


우리는 튀니스 아프리카 호텔로 바로 향했고, 거리의 노숙자 차림으로 5성급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K와 약속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착했고, 인사를 하면서 말끔한 그들을 보니 나는 우리가 부끄러워졌다. 슬쩍 바라본 K의 차림은 정말이지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늘어진 티셔츠는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고, 반바지는 허리 아래에 겨우 걸쳐있는 상태였다. 까맣게 탄 얼굴이며 한쪽은 하늘로 올라간 머리카락까지.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내 모습은 확인하고 싶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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