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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ug 05. 2018

알제리-튀니지 여행 4

식물 업어가기 프로젝트

K는 아프리카 호텔에서의 짧은 만남을 끝냈고, 우리는 튀니지에 사는 지인 M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꽤나 염치없는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차라리 저렴한 호텔을 잡을 걸 하는 생각도 해봤으나, M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은 소중했다. 사람은 한 권의 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된 상태였지만 우리의 대화는 밤늦게까지 끊길 줄 몰랐다. 체력이 약한 K가 '너무 졸리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튀니지의 첫 밤은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바쁜 K는 일하러 가고, 일하지는 않지만 바쁜 나는 차를 끌고 거리를 나섰다. 튀니지 도로에서 알제리 번호판을 달고 운전하고 있는 동양인이 신기한지 가끔 내게 차창 밖으로 말을 거는 튀니지인들도 있었다. 이럴 때는 그들에게 능청스럽게 아랍어를 건넨다. 안 그래도 신기한 동양인인데 아랍어를 하는 상황에 깜짝 놀라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그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악셀을 밟는다.


나의 이번 여행 목적은 '식물'. 한없이 식물을 보고 접하는 게 유일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여행에 큰 부담은 없었다. 왜냐하면 식물은 어디에도 있기 때문. 잘 가꿔진 공원에만 식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환전을 하려고 들린 레 베르쥬 위 락(Les berges du Lac)에서 차를 주차해놓고 그 주변을 걸었다. 이 곳은 고급 상업지구였는데, 따라서 흔히 심기지 않는 그런 식물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식물은 주로 대목의 형태였고, 화려한 포트에 심겨 공간의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유럽보다는 덜 발달되었지만, 알제리에서 온 아프리카 촌놈인 나의 눈에는 상당히 놀라운 부분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카페 앞에 놓인 다실리리온 휠레리(Dasylirion wheeleri)를 발견했다. 실버블루 색에 바늘 형태의 잎이 인상적인 녀석인데, 이걸 사서 알제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간단한 쇼핑과 이발을 한 후, 드디어 묘목장 수배에 나섰다. 되도록 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골랐다.


구글에서 검색된 한 묘목장에 찾아갔고,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나름 놀랐다. 차를 주차하고 묘목장에서 꾸민 작은 정원을 먼저 둘러볼까 생각했지만, 나는 중요한 할 일이 있는 사람이므로 건너뛰기로 했다. 묘목장의 오른쪽에서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알제리와 비슷한 기후대이기 때문에 크게 식물 종이 다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알제리보다 선진국인(GDP를 말하는 것이 아님) 나라이다 보니 종류가 다양했다.


햇볕이 따갑게 내려쬐는 한낮이었음에도 나는 식물 구경에 빠져 내 머리 정수리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미리 알아채지 못했다. 예전 카타르에서 뜨거운 여름날 돌아다니다 더위 먹어 인도에 주저앉어버린 기억이 나서, 그늘에 가서 잠시 쉬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식물 구경. 독특한 색감의 초본류에서부터 멋진 형태의 선인장까지 알제리로 사가고 싶은 식물이 참 많았다. 처음 보는 식물도 꽤 많아 이름 좀 외워보고자 했지만, 내 머리는 녹이 슨 것처럼 Input을 거부했다.


갑자기 든 생각이었는데, 식물을 사 가더라도 알제리-튀니지 국경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원에게 질문했다.


"알제리로 식물을 가져가려는데, 혹시 국경에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요?"


그가 대답했다.


"한 두 종류는 괜찮을 거예요."


하나, 혹은 두 개라.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은 상황. 다실리리온 휠레리를 팔고 있었지만 개체가 너무 커서 차에 실을 수 없었기에, 꿩 대신 닭으로 카우보이 선인장(Euphorbia ingens)을 사고자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녀석 또한 커서 차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닭 대신 메추리를 취하는 심정으로 독특한 색감의 초본류 2개를 구입했다. 그중 하나는 루셀리아. 흔히 폭죽초로 불리는 꽃인데, 정말 폭죽처럼 생겼다. 폭죽과 정원을 좋아하는 헤밍웨이가 키우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혼자서 해봤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날 묘목장에서 식물과 뜨거운 하루를 보내고 염치없이 M의 집에 돌아왔다. M은 튀니지의 터줏대감인 J 어른과 내가 친하다는 걸 알고 그분까지 저녁식사에 초대하였다. J 어른 가족과 우리는 식사를 함께 했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 날은 어린아이로 인해 이야기가 늦은 시각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J어른 가족이 떠나고 난 뒤 2차겸 우리는 밖에 나갔다.


북아프리카. 일반적인 한국사람이라면 정말 관심조차 없을 북아프리카 알제리와 튀니지에 우리는 각자 살고 있다. 서로가 다른 목적으로 이 땅에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나도 나 자신이 평범하다고 느낀 적이 없고, 또한 평범하게 사는 것을 거부해왔으니. 밤은 깊어가고 어둠 사이로 녹음을 품어대는 나무들 사이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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