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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Jun 06. 2019

텃밭이 달라지고 있다 2

주인을 잘 만나야 일생이 편하다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일은 힘든 일이다. 가꾸기 시작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힘들다'는 단어를 내뱉지 않은 적이 없던 것 같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 모두에 해당한다. 


육체적 어려움이야 누구나 상상한 가능하겠지만, 정신적 어려움 또한 상존한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혹여 녀석들이 죽지는 않을까 물은 부족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염려해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하는 일 때문에 녀석들에게 관심이 부족하게 되는 때면, 녀석들을 돌보지 않았다는 혹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짐이 생기는 때도 많다. 


나야 다행히 텃밭을 관리해주는 관리인(우리 집 집주인)이 있어서 나은 상황이기는 하다. 내가 장기간 집을 비울 때에도 물주기를 빼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텃밭은 버려진 듯(나에 의해) 안 버려진 듯(내 집주인에 의해) 명맥을 이어져오고 있었는데, 이번 알제리 휴일을 겸해서 한 번 점검에 나섰다. 


1. 허브 공간


민트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민트는 보통 무릎 높이 정도까지 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 집 텃밭에서는 다르다. 어른 허리 정도 높이까지 크는데, 자신들끼리 뭉쳐있어 웬만한 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이다. 사실 민트를 키워본 사람들은 민트가 상당히 골칫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녀석들은 너무 잘 자라서 옆에 있는 땅까지 잠식해나가기 때문이다.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 민트 여러 뿌리를 뽑아다가 텃밭 경계에 며칠 전 놓아두었는데(거의 버렸다는 표현이 옳을 듯), 그중에 어느 녀석은 살아남았다. (독한 녀석) 


나무 바질은 수명을 다해서 뽑혔지만, 그 외에 로즈메리, 라벤더, 타임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녀석들은 크게 세력을 키우지는 않았다. 


2. 고구마밭


고구마밭이었던 이 곳은 고구마가 다 뽑히자 그저 놀리는 땅이 되었으나, 조그만 애플민트가 어느새 세력을 키워 절반의 땅을 따먹었다. 나머지 절반의 땅은 지배세력이 없이 방치되었는데, 나대지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집주인이 어느새 꽃을 심었다. 


매리골드로 보이는 노란 꽃들이 피워댔지만, 나는 '먹지 못하는 것은 텃밭에 심지 않는다'는 원칙이 깨어진 게 마음이 걸렸다. 그렇다고 집주인에게 이런 나의 의견을 전달한 것은 아니다. 집주인만 만나면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띄고 인사를 건네기만 한다. 나의 식물들의 목숨은 이 분에게 달려있는데, 내가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3. 미나리밭


우리 집주인은 내가 아꼈던 미나리밭을 갈아엎고(겨울이라 지면 위로 미나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초봄에 그 대신 고수를 심었다. 집주인에게 말은 못 했지만, 나의 마음은 찢어졌다. 아시다시피 외국에서 한국 채소는 그 얼마나 귀한가. 고수와 미나리는 같은 미나리과이지만, 고수를 뜯어 입 안에 넣었을 때의 만족도는 미나리의 것과는 전혀 같지 않았다. 


다행히 미나리를 한 곳에만 놓아두지 않았기 때문에(주식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테라스에서 목숨을 부지하던(나의 테라스는 녀석들에게 위험하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기약없는 오랜 가뭄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나리는 오늘 텃밭으로 이사했다. 물을 흠뻑 주고 이제는 자주 물을 줘야지 다짐을 하건만 내 다짐대로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4. 과일 및 채소류 공간


놀라운 건 방울토마토가 겨울을 이겨내고(귀찮아서 겨울에 토마토를 뽑아내지 않았다. 갈색으로 변해서 죽은 걸로만 알았는데) 봄에 다시 잎을 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열매를 내고 있는데(말 그대로 방울방울), 토마토가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앞에는 부추가 있는데, 마침 적절한 높이길래 오늘 잘라줬다. 수확물이 한 줌 정도 되었는데, 이 정도로는 부추전을 해 먹기에는 부족한 양이었다. 나중에 소면 요리를 할 때 면 위에 올릴 정도의 양 정도는 될 것 같다. 


시범 삼아 심은 양파를 이 곳에 옮겨 심고, 남의 집에서 얻어온 각종 씨앗을 막 뿌렸다. 고추, 들깨, 노란 토마토 등인데, '먼저 잎을 내는 놈이 이 땅을 차지한다'는 나의 원칙을 이들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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