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밀라의 바람
제밀라로 가는 길은 멀다 / 휘몰아치는 바람
바람이 함께 맞이했던 제밀라 로마유적
#1 - 제밀라로 가는 길은 멀다
제밀라 Djémila로 출발하던 날은 흐렸다. 비만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마음은 사라지고, 점점 해가 뜨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배경이 되는 하늘이 회색빛을 보이는 것으로 인해 여느 때보다 사진이 전반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었다. 여행은 날씨가 반을 차지한다는 말도 있지만, 흐린 날의 사진은 피사체에 시선을 더 집중하게 만드는 장점도 가진다.
길가의 초본이 어지럽게 나있었다. 여행을 빨리 하라고 재촉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빠르게 목적지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 날이었다. 차를 길가에 세웠고, 자연이 만들어낸 식재기법을 배우기 위해 들판에 발을 디뎠다. 마치 캔버스에 붓터치를 한 것만 같은 고운 결의 잎들이 나를 맞이했다.
도로가의 초본들다시 차에 올라타서 동쪽으로 향했다. 알제의 경계를 막 빠져나오는 지점, 맞은편 차선에는 알제로 진입하고자 하는 많은 차들이 도로에 멈춰서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시위에 참가하기 위한 이들이 아마도 그 인원의 다수를 차지했을 것이다. 정부는 수도로 접근하는 차량 검문검색을 강화했는데, 이런 긴장 상황 속에서 나는 여행을 떠난다니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카뮈의 경우는 지금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웠던 때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희곡. 테러. 어떤 허무주의자. 도처에 폭력. 도처에 거짓. (<작가수첩 Ⅱ>, p.252)
제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추모하는 꽃으로 유명한 개양귀비 꽃.
들꽃을 꺾어서 운전대 위 편에 올려두면 운전을 하면서도 꽃을 자주 바라볼 수 있게 된다알제리의 동쪽과 서쪽을 길게 잇는 동서고속도로는 1990년부터 건설되었기에, 카뮈가 있던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던 길이다. 지금은 최대속력 120km의 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도 제밀라까지 무려 4시간이 걸리니, 20세기 초에 카뮈는 제밀라에 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을까.
제밀라에 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결혼, 여름>, p.24)
도로 오른편 오렌지 농장이 갑작스레 펼쳐졌다. 푸른 잎과 오렌지 열매의 대비.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활엽수는 혹독한 겨울 날씨를 이겨내지 못하고 잎을 떨구는데, 알제리에서의 Citrus (귤 속. 오렌지 나무, 레몬나무 등)와 같은 활엽수들은 겨울 내내 녹색을 유지하는 게 이방인의 눈길에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수확의 계절에는 고속도로 옆에서는 어린아이들까지 나와 오렌지를 파는데, 대개 자루채 파는 경우가 많다. 예전같으면 오렌지 농장이 끝나는 지점쯤 근처 주유소에 들려 주유를 하는 게 거의 필수적이었다. 지금은 주유소의 숫자가 많아져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졌지만 말이다.
주유소가 많지 않았다는 말은 생리활동도 오랫동안 참아야만 했다는 얘기도 된다. 함께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과 지방여행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일행 중 한명이 급한 생리활동으로 인해 문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알제리, 특히 지방을 여행하는 일은 사실 많은 여행객들에게 불편한 부분이 많다.
가는 도중에 좌측을 바라보면 공룡의 등뼈와 같이 생긴 산맥을 볼 수 있다세티프 Sétif까지 이르는 길을 찾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동부 주요 도시인 콘스탄틴이 적힌 표지판을 따라 그저 직진만 하면 되기 때문. 하지만 엘 율마 El Eulma에 가까워질 때쯤이면 얼른 차를 우측으로 붙여서 고속도로를 빠져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제밀라를 여행할 때마다 표지판을 안 놓치려고 눈이 빠져라 우측을 살펴보았지만,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
제밀라라는 글씨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하는 걸 알기 때문에 어느 작은 식당에 차를 세웠다. 식당 주인이 내게 손짓을 하더니 주방 안으로 들어와 보라고 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대체 무엇이 있길래 나를 부르는지 확인은 해봐야할 것 같았다. 여러 개의 냄비에는 다양한 음식이 들어있었고, 대체적으로는 야채를 쪄낸 음식들이었다.
굳이 부엌에 데리고 간 주인이 보여준 음식속을 든든히 채우고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차창 밖 식물의 새로 나는 잎, 그 연한 녹색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세티프 지역은 알제리에서도 손꼽히는 농업지역. 창 밖의 녹색 식물은 아마 밀과 보리 중 하나일테지만, 도시에서 자란 내가 구분을 할 눈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누구한테 물어보면 잘 알 수 있을까 생각하다 알제리 어느 농업기관의 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푸릇한 들 사이로 구불거리는 길이 나있다"지금 들에서 볼 수 있는 푸릇한 작물이 이름이 무엇일까요?"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너무 어릴 때는 보리와 밀의 차이가 거의 없어서 구분이 어려워. 근처의 농부에게 물어봐."
그의 말이 맞다. 차에서 내린 다음 농부에게 물어보면 되는 문제였다.
잠시 들린 약수터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손녀딸높지 않은 구릉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길은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핸들을 꺾을 때 바로 반대편 차량에 대한 시야가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작물을 심기 전 농부들은 밭을 갈아엎는다. 이때 드러나게 된 흙이 붉은색을 보이고 있다.그 사멸한 도시는 길고 꼬불꼬불한 어떤 길의 끝에 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제밀라가 곧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에 그 길은 더욱 멀게 여겨진다. (위의 책, p.24)
이 길이 더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다. 가끔씩 길을 점유하고 있는 양과 염소들 때문이다. 녀석들이 길을 건널 때는 무작정 차를 멈추고 이들이 다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방금 내 앞을 가로질러간 녀석들
내가 가는 길에 동행이 되어준 어느 오래된 차. 뒤편에 알제리 국기를 달아놓았다.마침내 드높은 산들 사이에 푹 파묻힌 빛바랜 어느 언덕배기에 마치 백골들의 숲과도 같은 누르스름한 그 잔해가 솟아나 보이게 되면 제밀라는 오로지 단 하나 우리를 세계의 고동치는 심장부로 인도해줄 수 있는 저 사랑과 인내의 교훈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을 띤다. (위의 책, p.24)
언덕과 언덕 사이로 제밀라 로마유적지가 그 모습을 아주 살짝 드러내었다. 나는 잠시 물을 마신 다음 다시 제밀라로 출발했다. 정말이지 제밀라로 가는 길은 멀다.
사진 중앙에 '누르스름한 잔해'가 조그맣게 보인다
#2 - 휘몰아치는 바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유적지 입구에 들어섰다. 금요일이지만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은 날이었다. 21세기 초반에 끝난 알제리 내전 이후, 사실 알제리인들의 국내여행객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제밀라 로마 유적지 입구. 맨 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임을 뜻하는 표시가 있다.
그는 한 세기 전쯤 이 곳을 여행했는데, 그가 봤던 풍경과 지금 내가 보는 그것과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구릉에 둘러싸인 거대한 무대에 오랜 시절 동안 있어왔던 많은 기둥들이 여전히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바람이 불었고, 해가 뜨지 않는 날이라 생각했는데 조금씩 밝아졌다.
수많은 로마 유적과 꽃거기 몇 그루 나무들과 마른 풀잎 가운데서 제밀라는 천박한 찬미와 눈요깃거리만 찾는 호기심, 혹은 희망의 유희와 맞서서 저의 모든 산들과 저의 모든 돌들로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 (<결혼, 여름>, p.24)
알제리인은 유별날 정도로 새를 사랑한다
색색의 꽃들로 유적지의 돌이 가리기도 한다제밀라는 흔히 다른 로마 유적 도시인 팀가드 Timgad와 자주 비교되는데, 팀가드에 비해 이 곳은 규모가 작지만 보다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팀가드를 우리나라 경복궁에 비교한다면, 제밀라는 창덕궁에 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제밀라의 경우는 구릉이 많아 쉽게 그 규모를 확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구릉에 마치 묘지 비석처럼 세워진 기둥들. 기둥 사이가 촘촘한 곳은 서민의 주거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단단하고 큰 돌들로 이루어진 대로를 따라 걸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지만, 지중해를 넘어야 로마에 갈 수 있다.
이 길을 계속 걸으면 바다가 나올 것이다그곳은 그저 지나가다가 발길을 멈추거나 거쳐 가는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다른 어느 곳으로도 인도해주지 아니하며 어느 고장을 향하여 트여 있지도 않다. 그곳은 다만 갔다가 되돌아오게 마련인 곳이다. (위의 책, p.24)
중앙 부근을 지나쳐 좀 더 아래로 내려갔다. 작은 광장과 같은 공간에서 어느 음악가들은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구경하는 이들은 모두 어린이들이라 내가 아니었으면 그들은 한 푼도 벌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알제리 전통음악을 들려주었다과거 시장, 화장실이었던 공간을 거쳐 제사를 지내는 장소에까지 나는 내려왔다.
디테일한 묘사. 닭과 양을 잡아 바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무엇보다 이 곳은 유적지의 돌과 색색의 꽃이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웠다. 돌에 새겨진 활자에서 나는 균형과 절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돌과 꽃의 조화아치가 연속되는 공간 안에 있는 주피터의 토르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어느 분이 해주신 말인데 그 토르소의 머리 부분은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고 했다. 덧붙여 프랑스인들은 알제리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프랑스 땅으로 가져갔다는 말을 덧붙였다. 안 그래도 사멸한 도시가 문화재 반출로 인해 더욱 황폐해진 것이다.
아치가 연속되는 이 공간에서는 시선이 열렸다가 닫히는 효과를 연속적으로 느낄 수 있다
버려진 것처럼 놓여있는 토르소커다란 신전이 있는 광장으로 돌아와 나는 그림을 그렸다. 한참 그림을 그리는데 내게 다가오는 꼬마 아가씨.
꼬마 아가씨와 기념촬영
나를 찾아온 또 다른 손님제밀라에서 내게 황폐함이 크게 느껴지는 공간은 야외극장이다. 관객을 위한 공간인데 관객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약간 구석진 곳이라 관광객의 발길이 닿기 힘든 이유가 클 것이다.
관객 없는 야외극장이제 돌아가야 할 때. 비탈길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체력이 다 떨어졌다. 게다가 바람까지 심하게 부니 절로 그의 말이 생각이 난다.
이 치열한 햇빛과 바람의 목욕은 나의 모든 생명력을 다 소진시켜갔다. 내 속에는 겨우 저 스쳐 지나가는 날개소리, 저 신음소리를 내는 생명, 정신의 저 가냘픈 반항뿐. 곧 세상의 사방에 흩어지고 기억도 흐려지고 나 자신도 망각해버린 채 나는 곧 저 바람이 된다. 바람 속에서 나는 저 돌기둥이며 저 아치며 만지면 따뜻한 저 포석이며 황량한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빛바랜 산들이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거리를 유지함과 동시에 내가 세계 속에 현존하고 있음을 이토록 절실히 느껴본 적이 없다. (위의 책, p.26)
글에서 보면 바람으로 인해 카뮈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건강한 편인 나도 제밀라의 바람에 기력을 잃을 정도니 허약한 그의 신체가 이 곳의 바람에 제대로 버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여전히 살아남은 사람에게 자신은 질투할 것이라고 말한 카뮈. 그의 말에 나는 동감한다. 현재에 집중했고 현재의 소중함을 그는 잘 알았다.
내가 죽으면 이 모든 것은 다 무슨 의미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