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방인>의 배경

마랑고의 양로원 / 뫼르소의 공간

by 에트랑제
12-307-s.jpg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살인을 한 장소는 암석이 많은 알제 서쪽의 어느 해변이었다


#1 - 마랑고의 양로원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였을지도 모른다. (소설 <이방인> 중)


소설 <이방인>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드물지 몰라도, 충격적인 이 첫 문장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인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는 <이방인>의 출간을 두고 “건전지의 발명에 맞먹는 사건”이라고 했는데, 이 책은 800만 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뫼르소 Meursault(바다 Mer와 태양 Soleil가 결합된 이름인 것으로 보통 알려져 있다)는 양로원으로부터 위 전보를 받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길을 떠난다. 그의 어머니가 마지막에 지내던 양로원이 있던 지역은 마랑고 Marengo(현재 이름은 하주트 Hadjout)인데, 이 이름은 19세기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쳤던 마랑고 전투에서 유래되었다.


뫼르소는 오후 2시에 버스를 탔다고 나와있지만, 내가 양로원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때는 오후 4시가 넘었다. 시간도 늦었고 핸드폰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다음으로 미룰까도 생각했지만, 마음먹었을 때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차를 집의 반대방향으로 몰았다. 혹시나 초행길라 길이라도 헤매게 됐을 때 핸드폰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만, 사실 여행에 이런저런 핑계를 하나씩 대기 시작하면 떠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저 멀리 슈누아 Chenoua 산이 보인다

나는 주로 티파자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이 보일 때 고속도로를 빠져나오곤 했는데, 그 표지판을 지나쳐 계속 직진하는 것이 낯설었다. 10분쯤 더 서쪽으로 갔을까. 하주트라고 씌여진 간판이 보였다. 국도에 접어들자 도로 양 옆으로 침엽수가 줄이어 서있었다.


뫼르소는 버스를 타고 양로원으로 이동했다.


일련의 가로수길과 너른 들판을 지나고나니 나는 작은 마을의 중심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는 원형 교차로에 커다란 가로등 혹은 시계탑 등이 마을의 상징물이 된다

거대한 야자수와 프랑스식 건물을 통해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마을임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소설 <이방인>의 배경의 마랑고 마을은 허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담을 따라가니 정문이 나왔다. 카뮈의 시절에는 양로원이었지만, 지금은 병원 Hôpital de Hadjout이 된 곳이다.


알제리 국기가 있는 곳이 병원의 정문이다

병원의 정문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경비원들이 손을 내저으며 제지를 했다. 나는 그들에게 항변했다.


"병원 사진 하나 찍는데 이러실 필요가 있나요? 소설 속의 배경을 찾아온 것뿐입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그들에게 내 설득이 먹혀들지가 않았다. 결국은 내가 포기하고, 사진찍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병원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 날은 갑작스레 출발한 여행이라 스케치북도 가져오지 않았던 날이니, 순전히 눈으로만 병원의 모습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 부지는 다소 넓은 공간이라 한 바퀴 다 도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영화에서 본 두 기둥 사이의 통행로를 찾으려 했지만, 그와 비슷하게 생긴 곳을 나는 찾지 못했다. 참고로 이탈리아 감독 루치노 비스콘티 Luchino Visconti의 영화 <이방인>은 최대한 원작에 충실한 작품으로 1960년대 알제리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나는 여러 병동 건물 중에서 왠지 소아과 간호사분이 가장 친절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아과 병동에서 만난 어느 간호사에게 소설과 이 곳의 역사 등에 대해서 말을 꺼내보았지만, 그녀는 카뮈를 알지 못하니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소아과 병동을 나오는 찰나 새로운 경비원이 내 곁에 다가왔다. 그는 다시 한번 사진을 찍지 말라고 내게 신신당부를 하는데, 나는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진을 찍지 않아도 이미 유튜브에 이 병원에 대한 영상은 있어요. 굳이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


정말 그런 영상이 있냐고 되묻는 그를 벤치에 앉힌 다음, 나는 그에게 유튜브의 영상을 보여줬다. 한참을 흥미롭게 영상을 보던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상에서 나온 'La morgue'단어에 그가 반응한 것인데, 그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자 했다. 그를 따라 어느 건물 앞에 갔는데, 정말로 영상에서 본 그 글자가 건물 위 쪽에 써있는 걸 확인했다. 호기심에 나는 건물 안에 들어가려했는데,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칠 수 밖에 없었다. 건물 앞에 관 2개가 놓여 있던 것이다. 나는 사색이 된채 그 건물에서 빠르게 빠져나왔는데, La morgue가 영안실이라는 뜻을 진작 알았다면 그를 따라 영안실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문지기는 좀 더듬거리며 말했다. "입관은 했습니다만, 보실 수 있도록 나사못을 뽑아드려야죠." 그러면서 관으로 가까이 가려기에 나는 그를 제지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안 보시렵니까?" 내가 대답했다. "네." (위의 책, p.10)


경비원은 내게 진정시켰고, 우리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영상에 집중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찾고자 하는 이미지를 보여줬는데, 그 이미지에 보자마자 그는 어딘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나를 다시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발길이 한 번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영안실에 한 번 데이고 났더니 어느새 두려움이 들었던 것. 하지만 그가 내게 새롭게 소개한 그곳은 병원의 정문이었다.


정문을 나가서 천천히 바라보니 내가 찾던 이미지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가 촬영된 60년대의 모습과 다른 점이 꽤 있었지만 말이다. 한편 내가 사진을 찍는지 안 찍는지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고 있는 경비원들 때문에 사진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소설 속에서의 경비원은 조문온 사람들에게 커피까지 따라주던데, 지금 사람들은 왜 날 그리 감시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때라 나는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마을의 경계가 끝나는 지점
영구차를 따라 사람들이 걸었던 길의 배경은 이 주변이었을 것이다




#2 - 뫼르소의 공간


면도를 하면서 뭘 할까 생각하다가 수영을 하러 가기로 결심했다. 항구에 있는 해수욕장에 가기 위해 전차를 탔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젊은이들이 많았다. 물속에서 마리 카르도나를 만났다. (<이방인>, p.29)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뫼르소가 마리를 만나게 된 장소는 항구 근처의 해수욕장이었다. 나는 소설 속 해수욕장이 과연 어디에 있었을지 알제 항구에서부터 그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항구에서 남쪽으로 바다를 따라가면 한동안 해수욕장이 없므로 아마도 주인공 뫼르소는 북쪽으로 가야만 했을 것이다. 항구에 인접한 해군기지에서 처음 수영이 가능한 해변이 시작되는데, 이 해변은 알제의 서쪽 페르하니 축구경기장 Stade Ferhani까지 길게 이어진다.


해군기지를 막 지나쳐 알제리 전통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박물관 팔레 데 라이스 Palais des Raïs에 올라가서 보면 해수욕장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해군기지 앞에서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의 엄숙한 모습에 따로 해변으로 가는 입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어디엔가 해변으로 가는 통로가 있던 게 분명했다.

P1130133-s.jpg 팔레 데 라이스 Palais des Raïs에서 찍은 해변 모습

어쩌면 뫼르소는 밥 엘 우에드 Bab El Oued를 향해 좀 더 걸어갔을 수도 있다. 지금 밥 엘 우에드 해수욕장은 개발로 인해 해수욕을 즐기기에 마땅하지 않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곳이다.

P1150138-s.jpg 몇 년 전의 밥 엘 우에드 해수욕장 모습

옛날 오래된 영상을 확인해보면 예전에는 바다를 향해 나무 데크가 놓여 있었고, 물 위로는 부표가 떠있었다. 소설 속 뫼르소와 그의 연인 마리는 부표 위에서 서로의 관계를 진전시킨다.


나는 부표 위에 있는 그녀 곁으로 갔다. 날씨가 좋았다. 나는 장난을 하듯 머리를 뒤로 젖혀 그녀의 배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아무 말이 없어서 계속 그러고 있었다. 온 하늘이 내 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푸른 데다 황금처럼 빛났다. (위의 책, p.30)


해수욕을 마치고 옷을 입으면서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을 얘기하지만 마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녁에 다시 만나 시시한 영화를 한 편 보는데, 이 영화관이 어디였는지는 소설에서는 설명이 없다. 나는 알제 시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하다 현재의 알제 시청 근처에 있는 어느 오래된 영화관을 기억해냈다. 이 곳은 카뮈가 선박 중개소로 일하던 곳에서 가까운 곳이니 그가 소설 속 배경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꽤 높다.


영화관에서는 영화 Omar m'a tuer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걸려있었는데, 이 영화는 시시함과 거리가 멀다. 1991년에 있던 프랑스에서 발생한 모로코인 용의자 오마르가 불충분한 경찰의 증거에도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 실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니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있다.

P1190345-s.jpg 알제 중심가의 어느 영화관 입구에서

소설 속 뫼르소와 마리 커플은 뫼르소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 집은 카뮈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벨쿠르 동네의 어느 아파트로 설정되었다.


내 방은 교외 큰 도로가에 있었다. 오후에는 날씨가 좋았지만 보도는 끈적거렸다. 오가는 사람들은 드물었고, 그나마 다니는 사람마저 빠르게 걸었다. (위의 책, p.32)


벨쿠르 동네의 큰 도로라 함은 벨루이즈다드 거리 Rue Belouizdad를 말하는 것이며, 서민 아파트가 많은 곳은 벨쿠르의 동쪽 부근이니 아마도 뫼르소의 아파트는 이쯤이었을 것이다.

P1150435-s.jpg 벨쿠르의 동쪽 거리 모습

아파트에서 마리와 시간을 보낸 뫼르소는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 일을 많이 해야 했다.

책상 위엔 선하증권 한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죄다 검토해야 했다... (중략)... 발송팀에서 일하는 에마뉘엘과 열두 시 반쯤 나갔다. 조금 늦게 나가는 셈이었다. 사무실에서 바다가 보인다. 에마뉘엘과 태양 아래 이글거리는 항구에 있는 화물선들을 바라보느라 잠시 넋이 나갔다.


뫼르소의 직업을 디테일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카뮈가 이 직업을 실제로 경험해봤기 때문이었다. 당시 어음 교환을 공인받은 네 명의 선박 중개인들은 모두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카르노 거리 Boulevard Sadi Carnot (현재 이름은 지구드 유세프 거리 Boulevard Zighoud Youcef)의 같은 건물에 모여 있었으니, 나는 굳이 이 곳을 찾으러 헤맬 필요는 없었다. 나는 카르노 거리에서 항구를 바라보았는데, 항구의 모습은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P1140577-s.jpg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거리에서

소설 속 뫼르소는 이웃인 레몽, 마리와 함께 알제 교외 해변으로 향한다. 이 해변은 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보아 나는 알제 서쪽 볼로긴 Bologhine 지역을 떠올렸는데, 이 곳은 알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가까운 해변인데다 소설 속 표현에서처럼 바위가 많은 곳이기 이유 때문이다.


바위 덩어리가 멀리서 조그맣게 보였다. 햇빛과 바닷물의 물보라 때문에 후광에 싸인 듯 거무스름했다. 나는 바위 뒤에 있던 서늘한 샘을 떠올렸다. 졸졸 흐르는 샘물의 속삭임을 찾아가고 싶었다. (위의 책, p.76)


나는 볼로긴 지역에 찾아가 해변을 조금 걸었다. 이 해변의 위쪽으로 이어진 언덕 즉, 부자레아 지역에는 실제 카뮈가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작품 배경은 대부분 그가 살아본 경험이 있는 장소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나는 어쩌면 이 곳이 소설 속 배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에서는 해변에서 주인공이 대치하던 아랍인에게 총을 쏜다.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같았다. (위의 책, p.79)


P1570457-s.jpg 볼로긴 지역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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