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문학 중의 선택

당연히 축구 아니겠소 / 진정한 보물, 샤를로 서점

by 에트랑제
문학의 길로 들어선 카뮈에게 샤를로 서점은 '진정한 보물'이 되었다


#1 - 당연히 축구 아니겠소


카뮈는 어릴 적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축구를 금지시켰는데, 그의 신발 뒤축이 너무 빨리 닿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당신 스스로 손자들에게 단단하고 목이 달린 두툼한 구두를 사 신기면서 영원히 닳지 않기를 바랐다. (<최초의 인간> 중)


그는 저녁마다 집으로 돌아가면 무시무시한 할머니에게 구두창을 공중으로 쳐들어 신발 바닥을 보여 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고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계속했다. 그는 학교 내 굵은 기둥들이 늘어선 회랑으로 사면이 둘러싸인 시멘트 바닥으로 급히 달려 나갔다.


휴식 시간의 끝과 수업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면 문자 그대로 어안이 벙벙해진 채 숨을 헐떡거리고 땀을 흘리며 시멘트 바닥 위에 딱 멈춰 서서 시간이 너무 짧은 것에 화를 내다가 차츰 상황을 다시 깨닫게 되면 그제야 얼굴에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쓱쓱 문질러 닦으면서 친구들과 함께 제자리로 다시 돌아갔고 갑자기 구두 밑창에 박은 징들이 닳았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수업 시간이 시작되었는데도 불안하게 그걸 살펴보면서 전날과 얼마나 달라졌으며 징의 뾰족하던 끝이 얼마나 닳아서 반짝이는지를 알아보려고 애를 쓰다가 바로 그 닳은 정도를 측정하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안심을 했다. (위의 책)


축구를 끝내고 허겁지겁 교실에 들어와 그때까지도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야만 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던 문장이다.


후에 카뮈는 알제리 대학생 총연합의 스포츠 분과인 알제 레이싱 대학(RUA)의 주니어 팀에 가입하게 되는데, 이때 카뮈는 전문적인 골키퍼로 활약하게 된다. 이와 관련한 신문기사가 여럿 있을 정도니 그의 축구 실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 또한 축구를 할 때 골키퍼를 하는데, 그도 나와 같은 포지션이었다는데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알제의 독립기념탑이 있는 언덕에 오르면 그의 동네 벨쿠르와 공원, 축구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는 동네 축구장에서도 시합을 하곤 했곤 했으니, 어쩌면 내가 보고 있는 축구장에서 그가 뛰었을지도 모른다.


벨쿠르 동네의 공원과 축구장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알제리의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축구 클럽들이 여럿 존재했다. 카뮈가 속한 RUA를 비롯해 후센-데이 Hussein-Dey 클럽은 수도 알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알제 인근 부파릭 Boufarik 클럽 등도 있었다. 카뮈가 그의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클럽들지만 이들은 현재 모두 사라지고 없다.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축구클럽으로는 MCA (Mouloudia Club d'Alger)가 있는데, 현재 알제리 프로축구리그에서 가장 팬이 많은 인기럽이다.


한편 카뮈의 고향인 벨쿠르 지역 사람들이 응원하는 클럽 이름은 CRB인데, 이 클럽의 주 칼라가 빨간색이라 시합을 앞두거나 혹은 시합에서 승리를 하는 일이 생기면 동네 자체가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어버린다.

빨갛게 덮인 벽과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축구에 그토록 열광하는 사람들. 그 중에 카뮈도 있었다. 그는 더 나아가 축구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축구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이내 공이 예측한 방향에서 오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사실은 훗날의 내 인생에서, 특히 누구 하나 행동하는 사람이 없는 본토 프랑스에 있을 때 도움이 되었다. (<RUA 저널> 중)


또한 그는 자신이 속해있던 클럽이었던 RUA에 대한 애정을 클럽을 떠난 이후에도 줄곧 드러냈다.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내가 인간의 도덕성과 의무에 관해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들은 스포츠 덕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RUA에서 배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래요, RUA에 있었어요... (중략)... 20년 후 파리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에서 만난 친구로부터 RUA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게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어요. 예를 들면 나는 내가 응원하는 팀인 파리 레이싱 클럽 Racing Club de Paris 경기를 보는데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팀은 RUA처럼 파란색과 하얀색의 줄무늬가 있는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책)


그런데 그가 그렇게 축구를 사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나의 축구팀을 그렇게도 사랑했던 이유는 결국 열심히 뛰고 난 후에 뒤따르는 나른한 피곤함과 더불어 느껴지는 저 기막힌 승리의 기쁨 때문이었고, 또한 패배한 날 저녁이면 맛보게 되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그 어리석은 충동 때문이었다.


승리의 기막힌 기쁨, 혹은 패배의 어리석은 울음에 대한 충동. 그가 축구에 열광했던 이유이다. '건강이 허락했다면 축구와 문학 중에 어떤 것을 택했겠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는 '당연히 축구지!'라는 유명한 일화까지 있을 정도.


하지만 저 대답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문학가의 대답이라는 게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마치 '도박을 하기 위해 가끔 소설을 쓴다'는 소설 <철도원>의 아사다 지로처럼 문학은 카뮈에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2 - 진정한 보물, 샤를로 서점


폐결핵으로 인해 축구는 하고 싶어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카뮈는 본격적인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37년 그의 첫 책인 산문집 <안과 겉>이 샤를로를 통해 간행되었고, 당시 그는 많은 시간을 샤를로 Edmond Charlot의 서점에서 보내고 있었다. 참고로 샤를로는 카뮈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21세의 나이였던 1936년에 대학가 주변에 서점을 개업한 인물. 서점 이름은 '진정한 보물 Les Vraies Richesses'이었는데, 오래지 않아 알제의 지식인들, 작가, 언론인, 화가들에게 이름처럼 보물과 같은 공간이 되었다. 고작 폭 4.5미터에 깊이 9미터가량의 복도 형태의 작은 규모이었지만, 책을 대여하는 도서관, 출판사, 미술 갤러리 등 여러 기능을 했다.


카뮈는 처음에는 샤를로의 대여 도서관의 회원 자격이었으나 나중에는 샤를로 서점에서 원고 검토를 하면서 원하는 모든 책을 무상으로 읽을 수 있었으니, 그에게 매우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샤를로 서점은 대학가 주변 샤라스 가 Rue Charras(현재는 아레즈키 하마니 가 Rue Arezki Hamani)에 위치한다는 걸 알고나서, 나는 알제 중심가이니 내가 한 번쯤 지나갔던 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길은 내가 한 번도 지나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중심가 큰 도로의 다양한 가게와 중앙우체국과 같은 거대한 건물들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니 이 작은 거리의 입구는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샤를로 서점이 몇 번지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서점의 정면이 찍힌 오래된 사진을 핸드폰에 띄워놓은 다음, 실제 건물과 사진을 비교를 해가면서 찾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실제 거리에 들어서자 사진과 유사한 생김새의 가게들이 줄지어 있어서 한숨이 나왔지만, 길이가 200m도 채 되지 않은 길에서 그 작은 서점 하나 못 찾아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굳은 다짐으로 가게를 하나씩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싱겁게도 금방 '진정한 보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서점의 번지수가 2번지였던 이유 때문. 하지만 이날은 주말이라 샤를로 서점의 문은 닫혀있었다.


노란빛을 띤 간판이 샤를로 서점이 있던 자리이다
거리의 윗부분을 바라본 모습. 저 멀리 알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중앙우체국이 보인다.

며칠 후 주말이 아닌 주중에 시간을 내서 샤를로 서점으로 향했다. 택시 조수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새 알제 대학가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샛길을 통해 바로 샤를로 서점이 있는 거리로 진입했다.

길에서 파는 헌 책들. 책을 파는 아저씨는 근처에 있는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느라 자리를 잠시 비우셨다.

지난번과는 달리 샤를로 서점의 문은 열려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유리창에는 '책을 읽는 자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가치를 지닌다'는 뜻의 문구가 써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닐지. 그 옆에는 더 큰 글씨로 '외부 대출이 가능한 도서관'이라고 써져 있었는데, 과거와 달리 이제는 도서관으로서만 기능을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서점의 외부 모습. 떡갈 고무나무의 큰 잎들이 인상적이다.

알제리 독립 이후에 수많은 피에 누아르(Pied noir; 프랑스의 알제리 침공 당시부터 1962년 알제리 전쟁의 종결에 따른 알제리의 독립까지 프랑스령 알제리에 있던 유럽계 사람을 지칭하는 말)는 여러 위협 속에서 알제리를 떠나야 했는데, 당시 프랑스로 떠나게 된 샤를로는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이 곳이 도서관, 서점, 출판사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문학과 지중해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한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그의 바람처럼 이 곳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카뮈를 비롯한 유럽 작가에게만 기회를 주지 않고 당시 피식민 계층의 모함메드 딥 Mohammed Dib과 같은 작가와도 함께 일한 그의 따뜻한 마음이 알제리인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서점 안에 들어서자마자 흥분된 마음으로 바로 카메라를 들었는데, 안 쪽에서 누군가 말했다.

"사진 찍으시면 안 돼요."

도서관 안쪽 데스크에 있던 직원 분께서 나는 제지시킨 것. 그녀가 말을 이었다.

"여기는 국가기관 소속 건물이라 사진은 찍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되죠?"


"알제시 관련기관에서 허가를 받고 오셔야 됩니다."

이 곳의 행정이 얼마나 느리고 복잡한지 잘 아는 내가 그 모든 절차를 다 밟은 후에 여기를 다시 오고 싶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사진 안 찍을게요. 죄송해요."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주위를 관찰했다. 서점은 작고 길쭉했는데, 중앙 위쪽에는 샤를로 씨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에는 이 곳을 찍은 오래전 사진이 걸려있었고, 그 아래 "Les vraies richesses(진정한 보물)"라는 글귀가 보였다. 아까와는 달리 상냥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저는 카뮈를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그래서 여기를 찾게 되었어요."


"근처에 있는 카뮈 집은 가보셨어요?"


"네."

카뮈의 집에 대해 말할 정도로 그녀는 카뮈를 꽤 잘 알고 있었다. 나더러 잠시만 기다리라던 그녀가 책장에서 카뮈의 책 몇 권을 빼왔다.

좌측부터 <이방인>, <전락>, <안과 겉>
<안과 겉> 책의 어느 페이지.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은 없다"는 유명한 구절에 누군가 밑줄을 그어놨다.
예전 주소인 2 bis, Rue Charras라고 쓰여있는 걸 보면 꽤 오래된 책인걸 알 수 있다


"위 층으로 한 번 올라갈까요? 보여줄 게 있어요."

어느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녀가 나를 중이 층으로 데려갔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좁은데다 매우 가팔랐다. 샤를로와 카뮈, 이들 모두 이 가파른 계단을 통해 위층과 아래층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계단에 오르자 그들이 주로 머물렀던 공간이 나왔다. 샤를로의 주요 업무공간이었던 이 곳에서 나는 기념사진을 한 장 부탁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나를 찍어주었다.

이 곳이 그들이 있던 공간이다
오래된 카뮈의 책들. 이 책들은 대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온 <계엄령>. 좌측에 보면 샤를로 출판사에서는 <결혼>, <안과 겉>, <미노타우로스 또는 오랑에서 잠시>가 출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이 층 난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자 카뮈의 사진이 보였다. 나는 눈빛에 최대한의 간절함을 담아서 직원분에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요청했다. 그러자 그녀가 맨 처음 방문했을 때의 강경함과는 달리 이번에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사진을 찍으세요. 다만, 저희 기관의 로고가 나오면 안 돼요"


"그럼 카뮈의 이마 윗부분은 안 찍도록 할게요."


카뮈 사진의 위에 기관의 로고가 새겨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뮈의 이마 윗부분이 사진으로 담기지 않았는데도 그의 넓은 이마가 돋보인다.

사실 생전의 카뮈는 상당한 미남으로 인기가 많았지만, 두번째 아내인 프랑스 포르에게 청혼할 당시에는 그녀 집안에서 원숭이를 닮았다는 등의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카뮈는 들어야 했다.

나는 중이 층에서 내려와 <안과 겉> 책 한 권을 빌려서 건물을 나오려던 찰나, 다시 발걸음을 돌려 직원에게 다가갔다. 이 날 나로 인해 상당히 힘들었을 그녀에게 나는 또 다른 부탁을 했다.

"저기에서 그림 한 장 그리고 가도 될까요?"

공간 전반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못 남기니 그림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방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 이색적인 중이 층의 구조, 사선으로 오르는 계단 등 여러 모로 마음에 드는 요소가 많았지만, 무엇보다 이런 공간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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