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잉태되는 곳

여인들과 함께 세상 앞의 집 / 예술가의 천국, 빌라 압델라티프

by 에트랑제
카뮈가 사랑했던 '세상 앞의 집'


#1 - 여인들과 함께 세상 앞의 집

내겐 동지들이 있었네.
세상 앞의 집이라는.
(...)
그곳에선 세상이 정지하고
우정이 싹트지.
자유를 규정짓는
개방에의 완고한 욕망이.
우리의 집은 전진한다네.
(반복)




카뮈의 실질적인 처녀작 『행복한 죽음』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소설이다. 이 소설의 2부에서 주인공은 '세상 앞의 집 Maison devant le monde'에서 세 여자 친구들과 공동생활을 하는데, 나는 사실 그 부분까지도 그의 실제 경험일 거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는 첫 번째 부인 시몬 이에 Simone Hié 와 파경이 굳어지던 1936년 소설 속 이름대로 '세상 앞의 집'이라 불리던 피쉬 별장을 여자 친구들과 공동으로 임대를 한 후 그는 행복한 삶을 경험한다. 카뮈는 이 집에 대한 애착이 상당했는데,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의 그의 소원을 이룬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생애 통틀어 이 집만큼 그의 마음에 드는 집은 없었다. 그가 노벨문학상으로 구입한 생애 마지막 집은 그의 마음에 완벽히 들지 않았다.


"햇빛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고 파트리스는 카트린에게 팔을 내밀며 말한다. 그녀는 그 팔을 핥는다. "그래요, 당신도 맡아보세요." 하고 그녀가 말한다. 그는 냄새를 맡고는 자기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드러눕는다. 카트린도 그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수영복을 허리까지 내린다. (<행복한 죽음>, p.129)


나는 '세상 앞의 집'의 주소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중 이 집이 내 친구 K의 집과 아주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K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의 거실 창문을 통해 보는 풍경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그 풍경을 카뮈도 역시 즐겼을 것이라니 놀라웠다. 만과 항구, 멀리 있는 산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그런 풍경을.


세상 앞의 집을 찾아가는 날 K의 집 앞에 주차를 했다. 이 집 주변 골목길은 좁아서 걸어서 가는 게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산책하던 카뮈와 두 여인(잔 시카르 Jeanne Sicard, 마르그리트 도브렌 Marguerite Dobrenne)은 우연히 어느 집에 세를 놓는다는 표시가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된 이 집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나는 우선 시디 브라임 거리 Chemin Sidi Brahim를 찾아야 했다.


나는 이 날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당시 카뮈는 보다 낮은 지역인 알제 중심 쪽에서 오르막길을 걸어올라왔다.

그곳은 올리브 숲에서 시작해서 올리브 숲으로 끝나는 아주 험한 길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위의 책, p.130)


나는 밝은 표정의 철 가공점 주인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올리브 숲이 보일 때까지 내려갔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가게 주인

이윽고 올리브 나무와 시디 브라임 거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올리브 나무는 담장 크기보다 훨씬 큰 높이라 한눈에 봐도 수령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아마 카뮈가 살던 시기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담장 너머에 있는 큰 나무가 올리브 나무이다. 간판에는 시디 브라힘 로라고 쓰여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다 왔다 싶으면 흠뻑 젖은 땀과 가빠진 숨결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부겐빌레아 덩굴에 할퀴지 않도록 피하면서 푸른색의 작은 살문을 밀고 들어선 다음 사닥다리같이 가파른 계단을 또다시 기어올라야 했다. (위의 책, p.130)


소설 속에 언급된 푸른색의 작은 살문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문은 닫혀있는터라 가파른 계단의 존재는 확인할 수 없었고, 문 근처의 부겐빌레아 덩굴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걸 확인했다. 대신 아이비 덩굴이 있었다.

푸른색의 작은 문은 정말로 존재했다.
세상 앞의 집 근처의 부겐빌레아(사진 좌측)

소설에서는 세상 앞의 집 내부에 소나무, 실편백, 들장미, 미모사 등 다양한 식물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그래서 나는 그 안이 더욱 궁금해했다. 골목길에서 서성이고 있던 내게 어느 동네분이 다가오셨다. 나는 그에게 카뮈가 살던 집이 모퉁이에 있는 집이 맞는지 질문드렸는데, 그는 카뮈를 모르셨고 다만 집주인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다. 그에 따르면 집주인은 의사인데, 참 좋은 사람이며 와이프는 스페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길 집의 정문은 높은 길 쪽에 있다고 해서 다시 길을 올라갔다. 다시 말해 세상 앞의 집은 상당한 면적을 가지고 있었고, 3개의 길을 면하고 있었다.


친절했던 동네 아저씨
시디 브라힘 길에서 바라본 세상 앞의 집. 큰 정원을 가진 집이다.

위쪽 길에서 제대로 바라본 세상 앞의 집은 전형적인 당시 프랑스풍으로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담장은 무성해진 덩굴이 절반 정도 덮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정문의 초인종조차 가릴 정도였다.


초인종을 누르지 못해 그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다른 동네 분이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내가 이 집의 초인종을 눌러도 되냐고 묻자, 그는 나보고 상관없다는 눈빛을 주셨다. 그리고 그 역시 아까 만났던 다른 분처럼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그 집안의 정보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 동네는 사람들끼리 비밀이라는 게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집주인은 휴가 중이라 집에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다. 역시나 초인종 너머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흰 빨래와 빨간 지붕들, 지평선이 끝에서 저 끝까지 주름 하나 없이 당겨서 펼친 듯한 하늘 아래 미소 짓는 바다, 이러한 색깔과 빛의 축제를 향해 세상 앞의 집은 그 널찍한 창문들을 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저 멀리서는 보랏빛 높은 산들의 능선이 물굽이와 만나면서 멀리 보이는 그 윤곽선 안에 그 같은 도취를 담아놓았다. 그래서 아무도 가파른 길과 거기까지 오르는 피곤을 불평하지 않았다. 매일 정복해야 할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위의 책, p.131)


나는 세상 앞의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날, K의 집에 놀러갈 일이 생겨 카메라를 챙겼다. 그의 집 거실에서 보는 전망을 즐기면서 그와 한참 이야기를 나눈후, 나는 옥상에 올라가보았다.

인근에 위치한 내 친구 K의 집
사진 가운데 붉은 지붕을 가진 건물이 '세상 앞의 집'이다

그의 집 옥상에 올라서니 들어선지 얼마안된 어느 건물 뒤로 '세상 앞의 집'이 보였다. 빨간 지붕을 가진 나름의 격을 가진 집. 지금은 아쉽게도 주변의 큰 건물로 인해 시야가 가리지만, 현대에 세워진 건물들이 없었을 그 시절에는 알제 도시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젠 밤이 깊었다. 벌써 자정이다. 세계의 휴식이며 명상과도 같은 이 밤의 앞에서는 나직한 팽창과 별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머지않아 다가올 깨어남의 시간을 예고한다. 별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하늘로부터 떨리는 빛이 내려온다. (위의 책, p.148)




#2 - 예술가의 천국, 빌라 압델라티프


진정한 것과의 접촉, 우선 자연, 다음으로 깨달은 사람들의 예술, 그리고 내게 능력이 있다면 나의 예술. 그렇지 못하다면, 빛과 물과 도취는 아직 내 앞에 있다. 그리고 욕망의 젖은 입술. (<작가 수첩Ⅰ>, p.45)




알제는 가장 감각적인 파리파의 휴양지로서, 당시 파리 다음 가는 회화의 도시였다. 화가들은 카뮈의 테마이기도 했던 태양과 바다, 원주민의 건축과 의상, 아프리카 식물을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로 여겼다. 인상파 화가들에게 이탈리아 다음으로 가고 싶어 하던 여행지가 알제리였다는 얘기도 있다.


빌라 압델라티프 Villa Abd-el-Tif에 가는 날. 이 곳은 카뮈의 어린 시절의 동네 벨쿠르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독립기념탑에 오르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의 빌라 메디치 Villa Medici처럼 예술가를 후원하는 장소로 이용된 이 빌라는 1907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 본토에서 온 예술가들에게 숙박 및 작업공간으로 이용되었다. 대개의 경우 화가는 후원을 받는 경우 후원자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에서는 화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정을 조직했다고 한다. 화가 입장에서는 2년간 주거 연구비를 받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예술을 할 수 있던 천국이었던 셈. 훗날 카뮈는 이 프랑스 화가들에 대한 편애를 드러냈는데, 자신의 작품집에 쓸 삽화가로 이들을 선호했다.


빌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관리인이 다가오더니 곧 문을 닫는다고 했다. 나의 표정이 어두워지려는 찰나 그가 말을 덧붙였다.

빌라 압델라티프 입구
빌라 주변에 아칸투스 Acanthus의 꽃이 만연한 때였다. 이 식물은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사랑받아왔다.

"당신은 외국인이니 특별히 관람할 수 있도록 할게요!"


그는 빌라 압델라티프에 대해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라마단 기간이기에 그에게 어떤 부담도 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자발적으로 하겠다는데 말릴 방법이 없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공간이 아뜰리에입니다. 보통 때는 예술가들을 위해 임대를 해주는 공간이지만, 지금은 전시 준비를 위해 문을 닫아 두었어요."

흰색의 배경 위에 변화되는 옥빛이 아름답다

"저는 로마의 빌라 메디치에서 큰 감명을 받았는데, 그런 예술 후원의 정신이 이 곳에서도 있었다니 정말 놀라워요."


"맞습니다. 같은 개념이었지요."

로마의 빌라 메디치. 우산 소나무의 형태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빌라 압델라티프는 알제의 다른 전통적인 건물인 바스티용 23 Bastion23라던지 바르도 국립박물관 Musée national du Bardo 등에서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자 형태의 가옥이다. 1717년에 지어졌다고 하나 그렇게까지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지는 않은 깔끔하고 단아한 건물이었다.


푸른 계열의 색과 타일, 아치 형태의 구조 등이 특색 있다
줄지어진 기둥, 위요된 공간에 놓인 분수대, 커다란 야자수 등 정원에 흥미로운 요소가 여럿 있었다

일을 마치고 나가는 어느 직원이 우리를 보면서 말을 건넸다.


"옥상에 올라가면 바다가 보여요. 한번 가보세요."


우리 가족은 그가 알려준 대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 입구. 하늘로 향해 뚫린 중정을 통해 더운 날 열기는 빠져나간다.

테라스에 오르니 중정과 하늘과 그리고 바다가 보였다. 건물 근처에는 측백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 침엽수가 키 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알제에는 지중해로 열려있는 공간이 참 많다

카뮈는 대학신문 '알제 에튀디앙 Alger-Etudiant'을 위해 전시회 비평을 쓴 적이 있는데, 당시 20살이었던 그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여긴 화가들에게 모두 몇 줄씩의 비평을 남겼고, 한 번은 빌라 압델라티프에 거주하는 화가들을 주제로 쓰기도 했다.


그는 생애 내내 미술에 대해서 관심을 계속해서 유지했는데, 이를테면 1955년에는 마리아 카자레스 Maria Casarès와 함께 8월 한 달 동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모든 곳을 돌아다닌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는 미술 뿐 아니라 음악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야말로 그는 다방면으로 예술인이었다.


1954년 8월 15일. 말러의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G장조 제4교향곡. 때때로 말러는 바그너를 좋아하게 만들어준다. 그는 대조를 통하여 바그너가 자신의 안개를 얼마나 잘 제어하는가를 보여주게 된다. 다른 때는 말러가 매우 위대하다. (<작가수첩 Ⅲ>,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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