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마음에 들어했는 것들 / 프로망탱 카페 찾아가기
#1 - 그가 마음에 들어했던 것들
항구 저 위에는 카스바 거리의 하얀 입방체 모양을 한 집들이 아물아물하면서 내려다보고 있다. 수면과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면 아랍 도시의 저 야생적인 백색을 배경으로 하여 수많은 육체들이 구릿빛 띠 장식 같은 벽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혼 · 여름』, <알제의 여름>, p.37)
알제 도시를 멀리서 바라보게 되는 경우 도시의 주된 색이 하얀색임을 알 수 있다. 알제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산토리니, 튀니지의 시디 부 사이드처럼 지중해의 주요 도시들이 하얀 이유는 흰 석회라는 재료 때문인데, 이것을 벽에 바를 경우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주기도 하고 벌레를 쫓아내는 실용적인 역할을 하기에 옛 사람들이 건축 마감재료로서 애용했다. 한편 알제는 라 블랑슈 La blanche (하얀 것이라는 뜻)라는 별칭으로 불리는데, 이는 물론 도시의 색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주민의 피부색이 하얗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알제의 카스바 Casbah는 지금은 하나의 작은 동네에 불과하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다. 고대 시대부터 도시로서 기능하던 이 곳은 한 때 원주민 베르베르인 Berbères의 왕조를 품은 적이 있고, 이슬람 건축과 아랍-베르베르 도시문화를 이어왔다. 이런 이유로 카스바는 알제리 유네스코 UNESCO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그럼에도 이 곳을 찾는 외국인은 생각 외로 많지 않다.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인데, 내가 알제리에 처음 왔던 때부터 지금까지도 '카스바에 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야' 혹은 '그곳 아이들은 사람에게 돌을 던지기까지 해'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듣고 있다. 카스바 거리가 복잡하니 길을 잃기 쉬운 것은 맞는 말이라 할 수 있으나, 거친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 내가 겪어보지 않아 뭐라 할 말은 없다. 내가 이제껏 이 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웠는데, 오히려 이 아이들이 나를 위험한 존재로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나의 첫 카스바 여행은 현지인 친구 L와 함께 했다. 주변 사람들이 제발 조심하라고 하는 성화에 못 이겼기 때문. L은 카스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나에게 보다 카스바를 잘 설명해주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소개해주었다. 그분 덕택에 나는 카스바에 대한 잘 알 수 있었고, 또한 그가 나고 자란 집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맞은 편에 살던 여인과 결혼한 그는 자신의 동네 카스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무엇보다도 이 곳에서 있던 알제리 독립전쟁의 역사에 대해 내게 많은 시간에 걸쳐 설명을 해주셨다. 만약 내가 영화 '알제 전투 La bataille d'alger'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의 말에서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꽤 있었을 테지만, 당시에는 머릿속에 영화 속 장면들이 여럿 남아있던지라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카뮈의 20대에는 아직 알제리 독립의 불씨가 타오르기 이전이라 카스바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는데, 그는 종종 이 곳에서 산책을 즐겼다.
1937년 12월 29일 2시 30분에 별일이 없다면 카스바 주변을 산책하는 게 어떻겠소. 그러면 당신에게 내가 알제에서 마음에 들어하는 것들을, 시간을 얻을 수 있는 도시를 보여줄 수 있소. 그것을 시간낭비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럴 마음만 있다면......
위 메모는 카뮈가 동료 극단 Théâtre de l'Équipe에서 함께 활동하던 블랑슈 발랭 Blanche Balain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카뮈는 그녀와 자주 만나고 있던 때였다. 발랭은 극단의 배우이자 동시에 작가였는데, 후에 카뮈는 발랭의 시를 출판하는데 힘을 쓰기도 했다. 그가 발랭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는데, 그게 풍경이었는지 장소였는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
우리가 어떤 도시와 주고받는 사랑은 흔히 은밀한 사랑이다. 파리, 프라하, 심지어 피렌체 같은 도시들은 웅크리고 돌아앉아 있어서 그것 특유의 세계에 테를 두르듯 한계를 짓는다. 그러나 알제는, 그리고 그와 더불어 바다에 면한 도시들처럼 몇몇 특혜 받은 장소들은, 입처럼 혹은 상처처럼 하늘로 열려 있다. (『결혼 · 여름』, <알제의 여름>, p.33)
알제는 바다를 둘러싼 만의 형태이기 때문에 바다를 향한 전망이 좋은 곳이 많다. 그 전망들 중에 카스바만의 매력이라면 아무래도 무너진 집 혹은 벽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아닐까. 그의 표현대로 '입처럼 혹은 상처처럼 하늘로 열려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집이 있을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카스바의 오래된 집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그가 발랭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사람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이슬람 사람들 아니면 그들의 복장? 당시는 여인의 몸은 물론 얼굴까지 천으로 가리는 게 카스바 동네의 지배적인 문화였으니, 그런 부분에 카뮈가 흥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 복장을 발견하는 게 어려워졌고 나이가 많으신 일부 할머니 분들만의 복장이 되었다.
어쩌면 이 곳만의 다양하고 독특한 건축적 특징들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슬람 건축양식에서 문과 통로 등에 나타나는 주요 특징은 아치의 형태인데, 곡선에서 다양한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카스바 전통가옥의 눈에 띠는 특징은 외부로 툭 튀어나온 테라스와 그를 받치는 나무기둥이라 할 수 있는데, 어쩌면 이것을 그가 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가 마음에 들어했던 것들이 찾아보려 했지만, 그가 기록에 정확히 남겨놓지 않았기에 알아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 곳을 시간을 얻을 수 있는 도시라고 말했는데, 카스바의 어느 곳을 가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이 또한 나로서는 알아낼 길이 없다.
#2 - 프로망탱 카페 찾아가기
모하메드 셰리프와 클레베르 거리가 교차하는 프로망탱 카페에 앉아서 나는 자주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터로, 또는 쾌락을 찾아, 샘가로, 또는 기도하러 서둘러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보다는 주위의 사물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모두가 다 고대극의 합창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장 그르니에, <지중해의 영감>, p.37)
나는 그의 말대로 식수대를 지나쳐 길과 길이 만나는 교차로에 섰다. 모스크 옆에 위치한 작은 건물이 카페로 추정되는 곳. 그 건물의 1층은 지금 상점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문이 닫혀있어 정확하게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카뮈는 프로망탱 카페에서 박하차를 마시며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모스크의 첨탑 꼭대기에서 기도 시간을 알릴 때면 카뮈는 이 ‘기도의 부름’에 감동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