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그의 공간, 카스바

그가 마음에 들어했는 것들 / 프로망탱 카페 찾아가기

by 에트랑제
11-304-s.jpg 좁고 가파른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카스바


#1 - 그가 마음에 들어했던 것들


항구 저 위에는 카스바 거리의 하얀 입방체 모양을 한 집들이 아물아물하면서 내려다보고 있다. 수면과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면 아랍 도시의 저 야생적인 백색을 배경으로 하여 수많은 육체들이 구릿빛 띠 장식 같은 벽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혼 · 여름』, <알제의 여름>, p.37)




알제 도시를 멀리서 바라보게 되는 경우 도시의 주된 색이 하얀색임을 알 수 있다. 알제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산토리니, 튀니지의 시디 부 사이드처럼 지중해의 주요 도시들이 하얀 이유는 흰 석회라는 재료 때문인데, 이것을 벽에 바를 경우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주기도 하고 벌레를 쫓아내는 실용적인 역할을 하기에 옛 사람들이 건축 마감재료로서 애용했다. 한편 알제는 라 블랑슈 La blanche (하얀 것이라는 뜻)라는 별칭으로 불리는데, 이는 물론 도시의 색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주민의 피부색이 하얗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P1110358-s.jpg 도시가 전반적으로 하얗다

알제의 카스바 Casbah는 지금은 하나의 작은 동네에 불과하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다. 고대 시대부터 도시로서 기능하던 이 곳은 한 때 원주민 베르베르인 Berbères의 왕조를 품은 적이 있고, 이슬람 건축과 아랍-베르베르 도시문화를 이어왔다. 이런 이유로 카스바는 알제리 유네스코 UNESCO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그럼에도 이 곳을 찾는 외국인은 생각 외로 많지 않다.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인데, 내가 알제리에 처음 왔던 때부터 지금까지도 '카스바에 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야' 혹은 '그곳 아이들은 사람에게 돌을 던지기까지 해'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듣고 있다. 카스바 거리가 복잡하니 길을 잃기 쉬운 것은 맞는 말이라 할 수 있으나, 거친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 내가 겪어보지 않아 뭐라 할 말은 없다. 내가 이제껏 이 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웠는데, 오히려 이 아이들이 나를 위험한 존재로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P1570346-s.jpg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아이들


P1570933-s.jpg 카메라를 보고 몸이 굳어버린 아이들

나의 첫 카스바 여행은 현지인 친구 L와 함께 했다. 주변 사람들이 제발 조심하라고 하는 성화에 못 이겼기 때문. L은 카스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나에게 보다 카스바를 잘 설명해주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소개해주었다. 그분 덕택에 나는 카스바에 대한 잘 알 수 있었고, 또한 그가 나고 자란 집 내부를 볼 수 있었다.


P1100845-s.jpg 친구의 아버지. 골목길 안쪽에 있는 집이 그의 집이다.

맞은 편에 살던 여인과 결혼한 그는 자신의 동네 카스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무엇보다도 이 곳에서 있던 알제리 독립전쟁의 역사에 대해 내게 많은 시간에 걸쳐 설명을 해주셨다. 만약 내가 영화 '알제 전투 La bataille d'alger'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의 말에서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꽤 있었을 테지만, 당시에는 머릿속에 영화 속 장면들이 여럿 남아있던지라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카뮈의 20대에는 아직 알제리 독립의 불씨가 타오르기 이전이라 카스바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는데, 그는 종종 이 곳에서 산책을 즐겼다.


1937년 12월 29일 2시 30분에 별일이 없다면 카스바 주변을 산책하는 게 어떻겠소. 그러면 당신에게 내가 알제에서 마음에 들어하는 것들을, 시간을 얻을 수 있는 도시를 보여줄 수 있소. 그것을 시간낭비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럴 마음만 있다면......


위 메모는 카뮈가 동료 극단 Théâtre de l'Équipe에서 함께 활동하던 블랑슈 발랭 Blanche Balain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카뮈는 그녀와 자주 만나고 있던 때였다. 발랭은 극단의 배우이자 동시에 작가였는데, 후에 카뮈는 발랭의 시를 출판하는데 힘을 쓰기도 했다. 그가 발랭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는데, 그게 풍경이었는지 장소였는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

P1570363-s.jpg 카스바에서 항구를 향해 내려다보는 풍경
우리가 어떤 도시와 주고받는 사랑은 흔히 은밀한 사랑이다. 파리, 프라하, 심지어 피렌체 같은 도시들은 웅크리고 돌아앉아 있어서 그것 특유의 세계에 테를 두르듯 한계를 짓는다. 그러나 알제는, 그리고 그와 더불어 바다에 면한 도시들처럼 몇몇 특혜 받은 장소들은, 입처럼 혹은 상처처럼 하늘로 열려 있다. (『결혼 · 여름』, <알제의 여름>, p.33)


알제는 바다를 둘러싼 만의 형태이기 때문에 바다를 향한 전망이 좋은 곳이 많다. 그 전망들 중에 카스바만의 매력이라면 아무래도 무너진 집 혹은 벽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아닐까. 그의 표현대로 '입처럼 혹은 상처처럼 하늘로 열려있다.'

P1570370-s.jpg 무너진 벽 뒤로 보이는 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집이 있을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카스바의 오래된 집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P1100870-s.jpg 카스바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더 허물어져가고 있다

그가 발랭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사람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이슬람 사람들 아니면 그들의 복장? 당시는 여인의 몸은 물론 얼굴까지 천으로 가리는 게 카스바 동네의 지배적인 문화였으니, 그런 부분에 카뮈가 흥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 복장을 발견하는 게 어려워졌고 나이가 많으신 일부 할머니 분들만의 복장이 되었다.


어쩌면 이 곳만의 다양하고 독특한 건축적 특징들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슬람 건축양식에서 문과 통로 등에 나타나는 주요 특징은 아치의 형태인데, 곡선에서 다양한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P1100860-s.jpg 다양한 아치 형태

카스바 전통가옥의 눈에 띠는 특징은 외부로 툭 튀어나온 테라스와 그를 받치는 나무기둥이라 할 수 있는데, 어쩌면 이것을 그가 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P1570355-s.jpg 테라스를 받치는 나무 기둥들이 인상적이다

그가 마음에 들어했던 것들이 찾아보려 했지만, 그가 기록에 정확히 남겨놓지 않았기에 알아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 곳을 시간을 얻을 수 있는 도시라고 말했는데, 카스바의 어느 곳을 가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이 또한 나로서는 알아낼 길이 없다.




#2 - 프로망탱 카페 찾아가기


카뮈의 주도 아래 지인들과 활발한 토론이 벌이던 곳은 카스바 안에 있는 프로망탱 카페 Café Fromentin에서였다. 이 카페에 프로망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세기의 화가 외젠 프로망탱 Eugène Fromentin이 자주 들린 이유 때문인데, 훗날에는 그들의 문화적 영웅 앙드레 지드 또한 알제를 방문하는 길에 이 카페를 찾았다.


집 밖에 나서기 전에 내가 알아본 정보로는 이 카페는 카스바 한복판에 있는 모스크 옆에 있다고 했으나 정확한 주소는 나와있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찾은 여러 그림에서 프로망탱 카페의 대략적인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 그 이미지를 통해 카페를 찾아볼 생각을 했다. 그림으로 느껴지는 카페는 하얀색, 녹색, 붉은색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공간이었다.


우선 카스바의 모스크를 찾기 위해 지도에 모스크를 검색했다. 나는 가장 가까워 보이는 길에 어들었는데, 그 곳은 길이 아니라 개인 사유지였다. 이렇듯 카스바는 여러 번 온 사람들조차 길을 잃게 만드는 미로를 이곳저곳에 품고 있다.

미로와 같은 길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길은 오르막길인 듯싶더니, 어느 순간 내리막길이 되어 있었다. 때는 라마단 Ramadan 기간이었는데,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알제리인들이 금식을 하고 있어 거리는 한산했다.

카스바의 어느 모스크

어느 모스크에 도착해서 그 옆에 있던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카페 있나요?"


"없어요. 지금은 라마단이라..."


"아니, 제가 지금 무언가 먹으려는 게 아니고요. 예전에 이 곳에 있던 카페를 찾고 있습니다."


"아, 이 근처에는 카페 없어요."


애매한 정보만을 가지고 미로와 같은 카스바에서 길을 찾는 건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어 이 날 나는 철수를 결정했다. 그런데 차를 주차했던 카스바 윗동네로 돌아가려고 보니 막상 그곳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다시 길을 헤매기 시작했고, 반복되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인해 지쳐갔다.


길을 헤매는 와중에 아이들을 만났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나는 조금씩 주차된 곳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길을 알려준 어느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나는 그 길을 그저 쭉 올라가기만 하면 됐다고 했다.

낮은 천장을 가진 길도 있다

그런데 끝까지 올라간 그 길의 끝에는 당황스럽게도 문이 있었다. 설마 문을 열고 가라는 얘기는 아닐 거란 생각에, 길을 지나던 또 다른 아저씨에게 다시 길을 물었다. 그 아저씨를 자신을 따라오라더니 문 바로 옆의 사람 키보다 더 낮은 통로를 가르쳐주시는 게 아닌가. 그 분 덕택에 주차된 장소로 돌아와 나는 무사히 집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 나는 집에서 장 그르니에의 글을 읽다가 프로망탱 카페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다. 카페가 있던 거리명이 밝혀진 것. 거리명 뿐만 아니라 모스크 이름도 나와있었다. 모스크의 이름은 시디 모하메드 쉐리프 모스크 Mosquée Sidi Mohamed Cherif.

모하메드 셰리프와 클레베르 거리가 교차하는 프로망탱 카페에 앉아서 나는 자주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터로, 또는 쾌락을 찾아, 샘가로, 또는 기도하러 서둘러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보다는 주위의 사물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모두가 다 고대극의 합창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장 그르니에, <지중해의 영감>, p.37)


한달음에 나는 카스바로 달려갔다. 차를 멀찌감치 세우고 이 모스크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데, 이 날도 나는 길을 잃었다. 다행히 어느 친절한 할아버지를 만나 내가 가고자 하는 모스크에 이를 수 있었다.

길을 알려주신 할아버지
시디 모하메드 쉐리프 모스크의 윗부분 모습

드디어 나는 모스크에 도착했다. 주변의 거리명을 모두 확인한 후 카페를 찾았지만 카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카페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모스크에서 가까운 곳에서 목공 일을 하시는 분들께 여쭈었다.


"프로망탱 카페를 찾고 있는데요."


"카페? 위쪽으로 한 100m 올라가면 하나 있어. 거기서 보는 경치가 좋지."


"음. 요즘 카페 말고요. 예전 문헌에 따르면 모스크 바로 옆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는데요?"


"아, 옛날 카페? 언제쯤?"


"약 50년 전에도 있었을 거예요."


갑자기 그중 한 할아버지께서 무릎을 탁 치셨다.


"응, 그래. 이 곳에 있었어. 바로 이 사거리에. 그래서 이 사거리 이름이 프로망탱 사거리라고 불렸지. 저 식수대 바로 뒤편에 있었어. 그 카페에는 카펫이 깔려있었고 또 요즘 보는 그런 의자가 아니라 등받이가 없는 의자들이 널려있었지. 그림들도 있었고."


여인의 뒤편이 카페가 있던 자리다

나는 그의 말대로 식수대를 지나쳐 길과 길이 만나는 교차로에 섰다. 모스크 옆에 위치한 작은 건물이 카페로 추정되는 곳. 그 건물의 1층은 지금 상점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문이 닫혀있어 정확하게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카뮈는 프로망탱 카페에서 박하차를 마시며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모스크의 첨탑 꼭대기에서 기도 시간을 알릴 때면 카뮈는 이 ‘기도의 부름’에 감동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프로망탱 카페가 있던 곳. 뒤로는 모스크가 보인다.

나는 이 곳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왔다. 다행히 돌아올 때는 길을 헤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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