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도 일으키자, 먹을 것이라도 얻게 / 카빌리에서의 추억들
#1 - 전쟁이라도 일으키자, 먹을 것이라도 얻게
카빌리의 양치기는 헐벗고 햇빛에 파 먹힌 산 위에서 황새 떼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새들이 기나긴 여행을 하기 위하여 떠나온 저 북쪽 나라를 머릿속에 그려 보면서 하루 종일 꿈을 꿀 수는 있지만 저녁이 되면 유향나무들이 돋아난 고원으로, 긴 옷을 입은 가족들에게로, 그가 뿌리내린 가난한 오두막집으로 돌아온다. (소설 <최초의 인간> 중)
겨울이면 때로 산봉우리에 흰 눈을 품고 있는 광경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에 흰 눈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때로 겨울이 아닌 계절에 산의 정상이 하얗게 보이는 곳이 있는데, 일부 지역의 돌이 하얀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험한 산지이기 때문에 길이 좋게 나있을 리가 없다. 구불거리는 좁은 길에 검문소는 많고 게다가 느릿하게 가는 차가 많아 이 지역의 여행은 항상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카빌리 지역를 여행하고 알제로 돌아오는 길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가 많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지 못한 여행자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전쟁이라도 일으키자, 먹을 것을 얻게...... (<Misère de la kabylie>, p.4)
풀과 뿌리는 먹는 사람들 (위의 책, p.11)
독을 가진 뿌리를 먹고 다섯 명의 아이가 죽었다. (위의 책, p.19)
#2 - 카빌리에서의 추억들
카뮈의 시절에는 카빌리 지역의 생활이 비참했을지라도 지금도 역시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당시에는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힘든 피식민 상황에서 일반 사람들이 어떤 돌파구조차 찾기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알제리 정부의 각종 생활지원정책으로 인해 적어도 끼니를 굶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카빌리의 비참함이 아닌 이 곳의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의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 지역을 처음 왔을 때는 나는 산장에 들렀는데, 암산을 배경삼아 최대한의 여유를 즐겼다. 동행했던 사람들과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다. 그림도 하나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굴민 호수 Lac Agoulmine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곳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인지라 나는 더욱 이 곳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주말 아굴민 호수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후 열심히 차를 몰았지만, 도무지 목적지에 닿을 수 없었다. 나는 소득없이 알제로 돌아와야만 했는데,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차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최소 2시간 이상의 산행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참 아굴민 호수의 존재를 잊고 있다 우연하게 지인의 친구가 여행사 프로그램을 통해 아굴민 호수를 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당 여행사를 수소문해서 알아낸 다음, 출발 전날에서야 겨우 여행사에 사정사정해서 내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마침내 여행 당일 버스를 타고 여정을 시작했는데,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수다를 멈추지 않고 게다가 큰 음악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터라 버스에서 부족한 잠을 채우려던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대신 알제리 최신 음악 트렌드를 나는 잘 알 수 있게 되긴 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성별과 연령대는 다양했는데, 모두가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없는 일. 급기야 산행 중간에 마주한 어느 갈림길에서 일행은 둘로 나뉘게 됐고, 나는 별다른 고민없이 급한 경사를 가는 그룹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선택이 얼마나 잘못된건지 절실히 느끼게 되는데,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과 머리 위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였다.
완만한 길을 선택한 그룹을 부러워하며 나는 여정을 계속했는데, 일행에서 유일한 동양인이 신기한지 사람들은 자주 내게 질문을 했다. 하지만 헐떡거리는 숨으로 인해 나는 간단한 대답마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도착한 아굴민 호수. 갈수기인 탓에 호수의 물은 많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호수는 사람이 아닌 소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소를 바라보면서 꿀맛같은 휴식을 취한 후, 나는 배가 점점 고파온다는 사실과 점심식사를 제대로 챙겨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출발지점으로 복귀하는 시각은 3시간 후이니 시간이 많이 남은 상황에 뭐라도 먹어 허기를 달래야 했다. 그러나 자연의 한 가운데 식당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나는 내 주변을 훑었고, 바베큐를 준비해 식사를 하고 있는 가족이 마침 내 시야에 들어왔다. 어느새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그곳을 향했는데, 나는 먼저 여기 풍경이 어떻냐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숨은 의도대로 그들은 내게 식사를 제안해주었다.
아주머니는 반으로 가른 바게트 빵에 그릴에서 막 구워낸 고기, 토마토와 양파를 얹혀주었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우리는 대화를 계속 이어갔는데, 근처 티지우주 Tizi Ouzou에서 온 이 가족은 종종 호수를 찾는다고 했다. 또한 아주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겨울의 눈이 있는 풍경이 지금보다 더 멋지다고 했다. 나는 그냥 일어서기가 미안해서 그들을 위해 간단한 그림을 선물했는데, 아저씨가 그림에 싸인을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산을 내려가는 일은 보다 산을 오르는 일보다 수월했다. 지형과 길이 눈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카빌리 지역에서 음식을 얻어먹은 기억은 사실 이 뿐만 아니다. 뜨거운 여름날 여행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마침 고장 난 에어컨 때문(덕분)에 나는 중간에 차를 세웠다. 인근에서 선인장 열매를 따고 있던 아저씨와 우연하게 대화를 시작했고, 그 아저씨는 그의 집 안으로 나를 들였다.
카빌리의 전형적인 가옥과 삶의 방식에 대해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저씨는 이야기하는 도중 알맞게 익은 무화과를 따서 우리 가족에게 건네주셨다. 무화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좀 더 달라고 청하고 싶을 정도로 매우 달콤했던 열매였다.
한 번은 카빌리 출신의 내 현지인 친구가 올리브유를 짜러 자신의 고향에 와있는데, 내가 원하면 와도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별다른 약속이 없던 나의 대답은 예스. 친구는 알제에서 5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실은 나는 출발 전부터 더 오래 걸릴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나는 차를 멈춰 세울 것이고, 고불고불한 산악길에서 약간 헤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약간이 아니라 길을 많이 헤맸다. 카빌리 지역 최고봉인 랄라 카지자Lalla Khadjidja(최고 높이는 2,308m)를 넘어갔다가 다시 유턴을 해서 돌아왔으니, 뭐 할 말 다 했다.
우연히 멈춰 선 어느 마을에서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고, 나는 동네 주민분들에 이끌려 주민회관에 들어갔다. 공식적으로는 그들이 나를 초대한 것이지만, 사실은 배고픔에 못 이겨 내가 음식 냄새에 다가갔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작은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주민분 중 한 명이 나를 앉히고 전통음식인 쿠스쿠스 한 접시를 가져다 주셨다. 지역마다 재료가 약간씩 달라지는 쿠스쿠스. 특이하게도 그 마을에서는 쿠스쿠스에 계란을 넣는데, 맛이 좋았다. 나는 배고픔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다음 그들에게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마을회관에 나와 나는 주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싶어, 어느 할아버지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할아버지께서 셔터를 깊숙히 누르는 바람에 카메라가 흔들려 나의 머리 윗부분은 찍히지 않았지만, 유쾌한 기억은 충분히 기록됐다.
배를 든든히 채우니 속은 편안해졌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편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친구 집을 찾지 못했으니까.
어렵사리 친구의 집에 도착해서 나는 곧바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친구의 동네를 잠깐 둘러보고, 친구와 나는 올리브유를 짜내는 방앗간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방앗간 마당은 나뭇가지 등으로 경계가 이루어진 여러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는 각 집마다 가져온 올리브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 친구는 다른 집보다 자신의 올리브가 더 좋은 것이라 말했지만, 내 눈에는 사실 다 똑같이 보일 뿐이었다. 우리는 연기가 폴폴 새어 나오는 방앗간 건물 안으로 이동했다.
올리브는 거대한 맷돌에 의해 우선 분쇄된 뒤, 망태기에 담겨 압착기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압착기는 위아래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큰 압력에 의해 새어나온 올리브기름은 아래로 흘러가고 이후 중력에 의해 기름은 더 아랫쪽으로 자동적으로 넘겨지게 되는 식이었다. 아랫 창고에서는 다른 층을 이루고 있는 이 기름과 이물질을 서로 분리해내고 있었다.
전통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고는 하나, 많은 부분은 기계의 힘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맷돌. 옛날 사진을 보면 소가 거대한 맷돌을 끌었을 것이다. 올리브는 과거에서부터 카빌리 지역의 경제에 주요한 역할을 해왔는데, 열매로 또는 올리브유의 형태로 지금까지도 알제리 곳곳에서 대량으로 소비되고 있다.
한편 카빌리 지역에 산만 있지 않다. 특히 베자이야는 바다의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바다에 와서 해수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조금은 두려웠지만 다이빙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물에 빠져드는 순간에 들려오는 주변의 함성소리!
이런 여러 추억들로 인해 나는 카빌리를 비참함으로 기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