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크루즈에 서면 오랑 시내와 바다를 모두 바라볼 수 있다
#1 - 산타 크루즈의 풍경
오랑 위쪽은 산타크루즈 산이고, 고원과 그리고 가는 숱한 계곡들이다. 전에는 마차가 다니던 길들이 바다를 굽어보는 산허리에 달라붙어 있다. 1월이며 그중 어떤 길들은 꽃들로 뒤덮인다. 수레국화와 미나리아재비가 그런 길들을 노랑과 하양으로 수놓은 호화로운 산책길로 만든다. (<결혼, 여름>, p.100)
오랑의 또 다른 상징인 산타 크루즈에 가는 길. 차는 한산한 거리에 접어들었고, 내 시야에 녹색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가 호화로운 산책길이라 말한 것은 이 곳의 식물이 유달리 다채롭다거나 풍부해서라기보다 나무가 많이 없는 오랑 도심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산 아래에는 알레포 소나무가 많이 위치하고 있다산타 크루즈로 올라가는 길은 어렵다. 그의 말대로 원래 마차가 다니던 길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여름 시즌이면 차가 거의 서있을 되는데, 차량이 많은 이유도 한 몫하지만 길의 일부 구간은 왕복 2차선보다도 좁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로의 폭이 좁다. 자전거로 심한 경사를 오르는 이가 있었다.조금 더 올라가면 고원을 둘러싼 울퉁불퉁한 절벽들이 벌써 붉은 짐승들처럼 바닷속에 웅크린다. 좀 더 올라가면 해와 바람의 큰 회오리바람이 바위 투성이 풍경의 네 구석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무질서한 도시를 뒤덮고 휘몰아쳐 뒤섞여버린다. 여기서 서로 맞서는 것은 인간의 엄청난 무질서와 늘 변함없는 바다의 항구성이다. 생명의 기막힌 향기가 산허리에 난 길 쪽으로 솟아오르기 위해서는 이것으로 족하다. (위의 책, p.87)
바닷속에 웅크린 울퉁불퉁한 절벽들. 인간의 엄청난 무질서와 늘 변함없는 바다의 항구성. 카뮈가 말한 그대로다.산의 정상에 조금 못 미치는 곳에는 작은 주차장이 있다. 이 곳에 주차하라는 말없는 신호. 차에서 내리면 산타크루즈 예배당 Chapelle de Santa Cruz 이 나오는데, 이 안에는 도시를 바라보고 성모 마리아상이 팔을 벌리고 있다. 하루에 수백 명의 희생자를 냈던 1849년 콜레라 사태 다음 해 이 조각상이 세워졌다.
오랑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
예배당 기둥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다예배당에서 조금 더 올라야 정상 부근에 다가갈 수 있다. 가파른 경사가 내 앞에 서있었다.
저 위에 산타 크루즈 요새가 버티고 앉아 있다경사를 다 오르면 입장료를 내고 요새 정문에 입장할 수 있다. 16세기에 스페인인에 의해 건설된 요새는 나중에 프랑스군에 의해 어느 정도 변형되었다.
지금의 주인은 알제리다
두툼한 벽과 아치가 만들어내는 기능적인 아름다움요새를 거쳐 산타 크루즈의 맨 위에 오르면 사방으로 볼 수 있는 테라스에 이른다. 숨이 차지만 숨을 잠시 멈추고 풍경을 즐기는 시간.
서쪽을 바라보면 해군 기지가 보인다
남쪽을 바라보면 내가 보인다. 아니다, 도시가 보인다.산타 크루즈에 관해서 할 만한 말은 이미 다 들었다. 한데 만일 내가 그 이야기를 또 해야 한다면, 명절날 가파른 언덕을 기어 올라가는 거룩한 행렬들에 대한 것 말고, 딴 순례들을 상기시키겠다. 그들은 빨간 돌 사이를 호젓이 걸어가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만 위에까지 올라가 빛나고 완벽한 한 시간을 고스란히 헐벗음에 바친다.(위의 책, p.100)
완벽한 한 시간이라. 시간에 쫓기며 여행하는 우리는 어느 장소에 한 시간이라도 진득하게 머무는 적이 잘 없지 않는가.
한편 산타 크루즈에 대한 장 그르니에의 표현은 어땠을까.
관객인 우리를 배우로 변모시킨다. 이는 마치 우리 앞에 점점 더 넓게 열리는 공간, 더 많은 빛, 여전히 더 많은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공간 같은 것이다. 우리는 도취하여 걷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를 확신하는 취기, 목표를 향해 곧장 나아가 마침내 대자연과 정신의 포옹 같은 것에 이르는 그런 도취다... 걸음을 멈추자. 한 발만 더 나아가면 모든 것이 다 부서져버릴 것 같다. 우리는 산타 크루즈에 이르기 직전에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세계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들어차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이 돌연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정신은 무엇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측정해보는 것뿐이다. 너무도 광대한 풍경은 우리를 가득 채우기는커녕 오히려 비워낸다. 그러나 산타 크루즈에서는 그 한계를 넘지 않는다. 이런 풍경 앞에서 우리는 다만 두 눈을 감고 그 풍경을 자기 안에 내장하여 거기서 자양을 얻고 싶은 유혹을 느낄 뿐이다. 이리하여 풍경은 나중에 우리가 그 풍경 없이도 지낼 수 있게 허락해주리라. 풍경이 곧 우리 자신이 될 테니까. (장 그르니에, <지중해의 영감>, p.29)
산타 크루즈에서의 풍경
#2 - 자유의 일주일을 보낸 바다
사막은 가차 없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다. 오랑의 광물질 하늘, 그 먼지로 뒤덮인 길거리며 나무들 모두가, 가슴과 머리가 제 자체로부터도 또 제 하나의 목적인 인간으로부터도 결코 한눈을 파는 일이 없는 이 두껍고 무심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한적하게 물러나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고 있다. (<결혼, 여름>, p.87)
전기에 따르면, 카뮈는 치아르몬테 Nicola Chiaromonte(이탈리아 행동가이자 작가)와 함께 메르스 엘-케비르 Mers el-Kébir 너머 인적이 없는 해안까지 자전거를 타곤 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 모두 바다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랑 서쪽 인근에 있는 메르스 엘-케비르를 지나면 여전히 해군기지가 자리 잡고 있다.
해군기지가 있는 메르스 엘-케비르를 지나쳐 가야 한다오랑의 성문만 나서면 벌써 자연이 목청을 돋운다. (위의 책, p.100)
도로 오른편으로는 조용하고 푸르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때로 차는 아찔한 형태를 하고 있는 절벽 아래를 지나야 했다.
도로의 오른편으로는 바다가 펼쳐진다
오랑 인근의 위태로이 서있는 절벽그는 바다에 대해서는 감탄의 말을 아끼지 않는데, 산타 크루즈와 같은 산을 대할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가 너무도 바다를 사랑했다.
오랑은 저의 모래사막도 가졌다. 해변 말이다. 성문만 나서면 나타나는 해변은 겨울과 봄 이외에는 호젓하지 않다. 언덕들이 수선화로 뒤덮이고, 꽃 속의 앙상한 작은 별장들로 가득 차는 것은 이때다. 바다가 저 아래서 약간 으르렁거린다. 그런데도 벌써 해외 산들바람, 하얀 수선, 야생의 푸른 하늘 그 모두가 여름을, 그때 해변을 뒤덮는 금빛 젊음을, 모래 위에서의 긴 시간과 저녁의 갑작스러운 다사로움을 상상케 한다. (위의 책, p.101)
얼마나 갔을까. 해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모래사장을 잠시 걸었다. 해변에는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침이 지나면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다.
늘 순결하기만 한 풍경을 발견하려면 더 멀리 가야 한다.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라고는 헐어빠진 바라크 한 채밖에 남지 않은 인적 없는 긴 모래언덕들이 그것이다. 때때로 아랍인 양치기가 흑백 얼룩이 염소 떼를 모래언덕 꼭대기로 몰고 간다. 오랑 지방의 이런 해변에서는 여름 아침이 날마다 세계의 첫 아침 같아 보인다. (위의 책, p.101)
오랑에서 가까운 해변일수록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순결한 풍경을 위해서는 도시에서 더 멀어져야만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나의 친구 K와 차를 몰고 카뮈의 말대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현지인 친구 집에서 바라보던 바다우선 우리는 K의 현지인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집에서 나와 가까운 해변으로 향했는데, 아침인데도 벌써 사람들로 가득찼었다.
해가 뜨거운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사람이 많았다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한참 갔더니, 시선을 사로잡는 어느 해변이 있었다. 너무도 푸르른 바다색이었다.
푸르른 바다와 여러 채의 텐트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해발고도가 조금씩 높아지자 좋았던 날씨가 점차 흐려졌다. 급기야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할 정도의 안개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초행길에 저런 안개를 헤쳐가야 하는 상황에 마주한다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새 맑아진 날씨. 지금의 시대에도 양치기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오랑에서 너무도 멀어진 어느 해변가에 우리는 텐트 자리를 발견했다. 운치가 있는 해변도 아니었고 푹신한 모래바닥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더 서쪽으로 이동할 체력이 우리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차 옆에 우리의 텐트가 보인다카뮈는 인적이 없는 바다에서 일주일을 보냈지만, 우리는 인적이 있는 바다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그는 지붕도 없이 잠을 잤다는 걸 보면, 텐트도 없이 비박을 했던 모양이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일주일 동안 나는 이 세상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본 적이 있다. 우리들은 바닷가에서 지붕도 없이 잠을 잤고, 나는 과일로 양식을 삼으면서 매일같이 반나절은 인적이 없는 바다에서 지냈다. 그때 나는 하나의 진리를 배웠는데, 그 진리는 안락이나 안정의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그것을 고소와 불쾌감, 때로는 분노로써 맞이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안과 겉>, p.20)
늦은 시각이었지만 그와 나는 간단한 해수욕을 하고 텐트에 들어와 잠을 청했다. 쉽게 잠들기 어려운 밤이었다. 파도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 이유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