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하라

비스크라로 가는 길 / 사하라의 심장, 타실리 나제르

by 에트랑제
17-310-s.jpg 사하라 트레킹을 안내하고 있는 투아렉족 가이드


#1 - 비스크라로 가는 길


전기에 따르면, 1952년 카뮈는 다시 한번 겨울에 알제리로 떠난다. 전에 가보지 못했던 곳들, 이를테면 사하라 일대의 유명한 오아시스 마을들도 가볼 예정이었으나 그는 여행을 할 수 없었다. 당시 그 지방에 소동이 일어날 조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뮈가 사하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은 광대한 사하라의 풍경을 그의 언어로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독자로서 상당히 아쉽다. 그는 오랑에서 '광물의 위대함'에 대해 말했지만, 만약 그가 사하라를 제대로 경험했다면 그 말을 쉬이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하라는 지금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인데,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멀기 때문이다. 또한 지형적인 이유도 한몫을 하는데, 지중해와 사하라 사이에 높은 아틀라스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서다. 그러니 예전부터 이 산맥으로 인해 남북 교류는 동서에 비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아틀라스 산맥은 사하라 사막으로의 여정을 허락하는 길을 내어준다. 그 여러 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은 바로 엘 칸타라 El Kantara. 카뮈의 일기에도 나온 지역이다. 그도 이 곳에 와보고 싶었을 것이다.

엘 칸타라에서 겨울은 멈추고 영원한 여름이 시작된다. 검고 핑크빛 나는 산. 프로망탱의 말. (<작가수첩 Ⅲ>, p.121)


P1560839-s.jpg 이제 당신은 사하라에 왔습니다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인지시켜준다

사막의 정확한 경계를 짓기는 어려운 일인데, 아틀라스 산맥은 얼추 사하라의 경계를 대신한다. 높은 암산이 동서로 이어지다 어느 순간 V자 형태로 쪼개진 듯한 형상인데, 그 V자 아래로 물이 흐르고 그 옆으로 사람들이 이동한다.

P1560846-s.jpg 최근 내린 비로 인해 물이 많이 불었다. 이 곳에서는 물 주변에는 항상 녹색이 존재한다.

산맥의 북사면에 있는 물은 모두 이 곳으로 모이기 때문에 모인 물은 이내 강을 이룬다. 옛날 사람들은 건조한 사하라로 떠나기 전에 이 곳에서 물을 뜨고 긴 여정을 대비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엘 칸타라에 대해 카뮈의 문학적 영웅인 앙드레 지드 André Gide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엘 칸타라에서 나는 이틀을 머물렀고 봄은 야자수 아래서 잉태되고 있었다. 벌이 윙윙대는 가운데 살구나무는 꽃을 피우고 물은 보리밭을 적셨다. 큰 야자수가 모든 곡물에 그늘을 제공하기에 야자수가 없었다면 하얀 개화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에덴에서 천국과 같은 이틀을 보냈고, 이때의 기억은 웃음, 순수에 대한 것뿐이다.

사하라의 계속되는 황량한 자갈과 먼지만 가득한 풍경에서 빠져나와 이 곳을 만나게 되면 누구라도 물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 '천국과 같았다'라고 표현한 지드가 지나친 표현을 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편 곡물과 야자수를 함께 재배하는 영농방식은 사하라의 오랜 문화인데, 높게 자란 야자수 아래 연약하고 여린 식물들을 심는 방식을 말한다.


나는 바트나 Batna를 거쳐 비스크라 Biskra 지역으로 향했다. 더 정확히는 후피 협곡 Balcons du Ghoufi를 보러 가는 길. 예전에 처음 이 곳을 여행했을 때 내 현지인 친구 L가 나보고 반드시 가보라고 했던 곳이다.


"뉴욕에 가면 어디로 갈까, 자유의 여신상을 가겠지? 파리는? 에펠탑이겠지. 그렇다면 비스크라에 가면 어딜 가야 할까? 바로 후피 협곡이야."


그가 내가 했던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언덕이 시작되면서 오레스 산맥 Massif de l'Aurès의 영향권에 들어왔음을 느꼈다. 해발고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주변의 어느 봉우리(Djebel Chélia)가 2,328m일 정도로 꽤 높은 지역이다. 이런 착시가 느껴지는 이유는 대자연에서 우리의 시야를 방해하는 대상이 적은 때문이 아닐까.

P1560709-s.jpg 어떤 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 곳을 찾는다

드디어 후피 협곡에 도착했다. 오레스 산맥과 아비오드 강(Oued Abiod)이 만나 강한 대조를 선보이는 곳. 시선의 위쪽으로는 산맥이, 시선의 아래쪽에는 강이 서로의 존재를 뽐내는데, 누런 빛을 띠는 절벽이 맨살을 드러내는 듯 다양한 지층을 선보이니 어디로 두더라도 볼 것이 많다. 신기한 건 그 급한 경사의 절벽에 집의 흔적들이다.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그 경사가 심한 절벽을 얼마나 자주 오르락내리락 해야만 했을까.

P1560715-s.jpg 절벽 중간에 오래된 집의 흔적들이 보인다

친절하게도 우리가 서있는 절벽 쪽에도 전통적인 방식의 집들이 꽤 지어져 있었고, 안내판을 따라가 여러 집들을 둘러보았다. 관광객들을 위해 새로 정비된 것처럼 보였다.

P1560721-s.jpg 정비된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돌과 진흙이 위주로 된 집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추야자나무의 기둥과 줄기가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즉, 나무의 기둥이 천장의 보의 역할을 하고, 나무의 줄기는 보와 보 사이를 메우는 방식이다.

P1560723-s.jpg 사하라에서 대추야자는 매우 요긴하게 쓰인다

일부 집에는 사람이 사는 듯 보였다. 어느 집 정원에서는 아이들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선인장 열매를 따고 있었고, 길에는 가축의 똥이 보이기도 했다.

P1560739-s.jpg 선인장 열매를 따는 아이들

우리는 그 지역을 벗어나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갔다. 그곳의 전망이 더욱 극적이었는데, 안 그래도 거대한 자연이 더 웅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 이 곳을 방문했을 때 함께 왔던 사람들을 기억해냈는데, 과거 그들과 함께 사진 찍던 그 난간에 섰다.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P1560756-s.jpg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어느 커플

날이 저물기 전에 나는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P1560774-s.jpg 비스크라로 가는 길. 도로변의 풀들이 특히 아름답다.




#2 - 사하라의 심장, 타실리 나제르


'낮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하라 사막은 빛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밤은 마치 기절처럼 찾아온다.' 도마의 <위대한 사막>을 읽을 것. (<작가수첩 Ⅲ>, p.121)




해가 지는 때의 모래언덕. 정말 빛으로 가득했다.


카뮈는 독서를 통해서만 사하라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여행한 알제리 남부 지방은 모두 사하라 초입에 위치하는 지역이라 이 곳 사람들 기준으로 진정한 사하라에 가봤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사하라는 세계의 여러 사막 중에서도 가장 면적이 크고 또 대표적인 사막이지만, 사실 사하라에서 과연 어느 곳을 그 중심으로 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그중 알제리 남부지역(특히 타실리 나제르 Tassili N’ajjer와 타실리 호가르 Tassili Hoggar)으로 보는 의견이다. 지리적인 다양성, 문화적인 중요도, 사하라의 대표성 측면에서 이 곳을 능가하는 다른 곳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시 메사우드(Hassi Messaoud). 내가 처음 사하라를 접한 곳인데, 석유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 타실리 나제르는 모래사막 혹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불어로는 암석으로 이루어진 숲 Fortês de rochers으로 표현되기도 한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풍경을 품고 있다. 게다가 초기 인류의 암각화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사하라 교역의 주요 교통로로서 최근까지도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니 '사하라의 심장'(Coeur du Sahara)이라 불려도 어색함이 없다.


알제에서 자넷(Djanet, 타실리 나제르 지역의 대표 도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 친구 K와 함께 숙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음날 4륜 구동 차량에 짐을 욱여넣고 비로소 여행을 시작했는데 그제서야 자넷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넷은 오아시스 도시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호수와 같은 물이 보이지는 않는다. 사하라에서는 지표수가 있는 경우 빠른 속도로 증발하기 때문에 사실 호수는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여기에도 확인할 수 있는데, 물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이 곳을 오아시스라고 말할 수 있다.

자넷은 오아시스 마을이다

이 곳이 오아시스라는 사실은 많은 수의 나무들로 증명되는데, 물이 없는 곳에 나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도시 중심을 빠져나오면서 발견되는 거대한 대추야자 농장은 도시에 활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이 대추야자 농장은 열매를 수확하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데, 부가적으로 외곽으로부터 불어오는 세찬 모래바람이 도시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대추야자 농장

우리의 차량에는 가이드와 요리사가 동행했다. 개인적으로 가이드가 있는 여행을 선호하지 않지만, 이 곳에서는 외국인에게 필수적으로 여행사를 통한 여행만을 허락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하라에서 모래의 이동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심한 경우 모래가 도로와 마을을 온통 뒤덮는다.
나는 항상 모래밭에서 바다를 사랑했다. (<작가수첩 Ⅲ>, p.73)


바다도 사막도 모두 모래를 가지고 있지만, 카뮈는 사막의 모래밭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탔던 차량. 저 뒤로 피라미드와 같은 형상의 돌산이 보인다.

이센딜렌 Issendilen이라는 지명이 보이는 표지판에서, 우리의 차량은 포장길을 벗어나 본격적인 오프로드 운행을 시작했다. 모래 위로 차가 이동하는 것은 마치 배를 타는 것처럼 몸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가이드인 압델라가 흥겨운 음악을 틀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 하천이 있다. 지표수가 없는 하천으로 하나의 띠를 이루고 있는 식물들이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사하라 여행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가지게 만든다. 차가 고장 나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할지 혹은 어느 알 수 없는 토착민이 갑작스러운 공격을 하지는 않을지 등 온갖 상상을 하게 되는 듯 하다. 하지만 풍경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쫓다 보면 어느새 그런 상상은 잊게 된다.

우리가 지나온 길

점심을 먹고 나서 본격적인 트랙킹을 시작했다. 압델라가 앞장서가면서 이 지역의 이름에 대해서 설명해줬는데, 투아렉 Touareg사람들의 언어로 '7개의 숨겨진 보물'이라고 했다. 과연 숨겨진 보물이 무엇일지 나는 여러 이름을 대기 시작했다.


사하라에서 소중한 건 물일 테니까 우선 물은 맞을 테고. 나무를 피해서 도로를 낼 정도의 사람들이니까 왠지 나무도 해당될 것 같았다. 더우니까 그늘. 이토록 조용한 곳은 보기 힘드니까 고요도 맞을 것 같았다. 그다음은...

농담 삼아 여자도 포함되냐고 압델라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여자가 있으면 남자들끼리 분쟁이 생겨. 그러니까 아니야."

서있는 사람 형상의 바위

바닥이 고운 모래인 탓에 걸을 때마다 발미끌렸다. 얼마쯤 계곡 안으로 들어갔을까. 마침내 길의 끝에 있는 겔타 Guelta(물이 고여있는 곳)에 도착했다.

겔타 옆에 앉아있는 압델라

겔타 안에 들어가도 된다고 해서 막 옷을 벗으려는 찰나, 압델라가 물 안에 악어가 살고 있다는 농담을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입수를 잠시 망설였다. 물은 너무 깊어 보였고, 어느새 식어버린 땀으로 인해 약간의 한기를 느끼는 중이었다. 물속에 들어가면 혹시 어떤 괴상하게 생긴 동물이ㅡ어쩌면 몸에 미끈미끈한 점액으로 덮여있을지 모른다ㅡ 내 발을 훑고 가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기회는 절대 자주 오기 않기에 나는 팬티만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은 생각만큼 차가웠다. 우리로 인해 가지런히 정렬하고 있던 물풀은 그 형태를 잃고 주변으로 흩어졌다. 나는 맞은 편까지 왕복 헤엄을 하고 나서 겔타에서 나왔다.


계곡을 빠져나와 압델라가 아는 현지인의 친구 집에 잠시 들렀다. 우리는 그의 집 바닥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잠시 나눌 수 있었다 .

절벽 아래의 압델라 친구의 집

시간은 늦은 오후가 되었다. 밤에 피울 모닥불을 위해 부지런히 땔감을 구해야 하는 때가 됐다. 타마릭스 Tamarix(사하라의 대표적인 식물 중 하나로 건조에 매우 강하다)의 오래된 뿌리가 주된 땔감의 재료가 되었다.

땔감을 모으는 압델라와 요리사

압델라와 요리사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와 친구 K는 석양을 더 잘 보기 위해 근처 모래언덕을 올라가기로 했다. 해는 빠른 속도로 지고 있었는데, 야속하게도 모래언덕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가팔랐다. 시간이 촉박해서 마음만 급해지고 발은 경사로 인해 자꾸만 미끄러졌다.

뒤처진 나의 친구
그렇지만 우리는 석양을 함께 보았다

모래언덕을 오르는 일도 어려웠지만 내려가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저녁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비박을 할 장소로 이동했다.

우리가 비박한 장소.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반경 몇 킬로미터 내에 우리 빼고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너무도 광대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나의 존재가 너무도 작게 느껴졌다.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세계의 비참과 위대함 : 세계는 진실을 제시하지 못하지만 사랑을 준다. 부조리가 지배하고 사랑이 부조리에서 구원해준다. (<작가수첩 Ⅰ>, p.135)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은 그럼에도 사랑을 통해 부조리에서 구원된다는 것이 카뮈의 생각이다. 그의 생각에 반해 생텍쥐페리는 다른 관점을 가졌다. '나는 내 시대를 증오한다'라고 생텍쥐페리가 말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가 정말 그 말을 했을 거라는 게 사실 믿기지 않는다.

사하라에 내던져진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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