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의 아몬드나무

지친 그가 돌아간 곳 / 아몬드나무를 찾아서

by 에트랑제
18-302-s.jpg 카뮈가 알제로 돌아올 때면 넓은 정원이 인상적인 생 조르쥬 호텔에서 묶곤 했다


#1 - 지친 그가 돌아간 곳


내 말은 다만, 불행으로 가득하기만 한 이 유럽 땅에서 때때로 삶의 짐이 너무 무겁게 여겨질 때면, 나는 그토록 많은 힘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저 빛나는 고장들로 되돌아가 본다는 뜻이다. 나는 그 고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지라 그 고장들이 명상과 용기가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선택받은 땅임을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그 고장이 모범으로 보여주는 명상은 이리하여 나에게, 우리가 정신을 구하고자 한다면 정신의 비명에 허덕이는 특질을 잊어버리고 그것의 힘과 위세를 더욱 북돋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결혼, 여름>, p.112)



카뮈는 유럽 생활을 힘들어했는데 가끔 알제에 돌아올 때면 생 조르쥬 호텔 Hôtel Saint-George(다른 이름으로는 Hôtel El Djezair)에 묶곤 했다. 알제의 대표적인 5성급 호텔 중 하나인 이 곳은 카뮈를 비롯해 당시 많은 유명인들이 거쳐간 곳이기도 하다.


호텔 정문 앞에 들어서면 경비원들이 우선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운전자는 차를 세워 트렁크를 열어주어야 하는데 이런 번거로운 절차는 알제에서는 일상적이다. 내가 알제리에 살고난 이후부터 알제의 도심 테러 소식은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런 과도한 검문은 다 피비린내 났던 과거의 역사로 인한 것이다.


정문으로 지나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면 건물 아래에 위치한 통로를 통과해야 한다. 그때부터 호텔 리셉션에 이르기까지 좁은 길이 이어지는데, 회전 구간에 위치한 정원이 시선을 잡아끌기에 이 길을 가는 것은 그리 지루하지가 않다.

건물 아래의 통로

알제의 다른 5성급 호텔들이 대부분 모던한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과 달리 이 곳은 알제리 전통적인 요소를 많이 드러낸다. 외부로 튀어나온 테라스,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나무판 등이 그것이다.

호텔 건물의 테라스

건축적인 요소도 좋지만 나는 이 곳 호텔의 매력은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인데 이 곳의 정원을 산책하면 마치 숲 속을 걷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정원이 오래되면 나무들은 그 높이를 알 수 없을만큼의 고목이 된다.

알제에 도착. 해안을 끼고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도시는 바다를 따라 던져진 빛나는 한 줌의 돌들 같다. 생 조르주 호텔의 정원. 오, 그립게 맞아주는 밤이여 나는 마침내 그의 품으로 돌아가니 밤은 전과 다름없이 푸근하게 안아준다. (<작가 수첩 Ⅲ>, p. 201)


호텔의 건물과 정원
P1580201-s.jpg
P1580200-s.jpg
카뮈가 걸었을 호텔 정원 내부

알제리 이웃 튀니지에서 민주혁명이 일어났을 때 언론에서는 '자스민 혁명'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그럴 정도로 북아프리카 전역에는 자스민이 많다. 손톱만 한 꽃이지만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자스민은 다른 식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향기가 지속되는 시기가 길고 키우기가 상대적으로 쉬워 이 곳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침, 알제의 아름다움. 생 조르주 정원에서 자스민 향기를 들이마시니 내 가슴속에는 기쁨과 젊음이 가득 찬다. 신선하고 쾌적한 도시로 내려간다. 멀리 반짝이는 바다. 행복. (위의 책, p. 201)


알제리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스민이지만 호텔 내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나는 내가 빠르게 지나친 탓인가 싶어 다시 한번 정원을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자스민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일반적인 자스민이 아닌 흔히 '겨울 자스민 Jasmin d'hiver'라 불리는 식물만 볼 수 있었다.

P1580214-s.jpg 봄에 노란 꽃을 내는 겨울자스민

정원 바로 옆에 위치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내부의 벽에 카뮈의 사진이 걸려있기 때문인데, 그는 처칠, 체 게바라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P1580194-s.jpg
P1580193-s.jpg
카페 내부에 걸린 여러 유명인사들의 사진

카뮈가 이 호텔에 묵고 있을 때 그의 친구 메종쇨은 그를 비판한다. 알제리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멀리서 관망이나 한다는 이유에서. 고작 1주일이나 6개월 정도만 알제리에 들러서는 호화로운 생 조르주 호텔에 있으면서 어머니만 만나고 간다는 게 친구의 주장이었던 것. 친구의 이 지적에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사실 메종쇨에게 카뮈가 호화스러운 생활을 즐긴 것으로 기억될 테지만 내게 카뮈는 그의 가난한 생활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당장 호텔 정문에 나와 마주치는 길만 하더라도 가난했던 카뮈를 연상시키는데, 히드라에서 신혼생활을 하던 시절 그는 알제 시내까지 약 5km에 이르는 거리를 전차 비라도 아끼고자 걸어 다녔다.


P1580192-s.jpg
P1580190-s.jpg
히드라에서 알제 시내로 걷다보면 마주하는 바다
이 책을 쓴 뒤로 나는 많이 걸었으나 그다지 전진하진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기실 뒤로 물러나고 있을 때가 흔히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나의 결점, 나의 무지, 나의 충실성으로 인하여, 나는 <안과 겉>에서 개척하기 시작했던 저 옛길 위로 언제나 되돌아오게 되곤 했다. 그 옛길의 자취는 그 뒤 내가 행한 모든 것에서 나타나 있으며, 나는 지금도, 가령 알제의 어느 아침이면, 예전과 다름없이 가벼운 도취감을 느끼면서 그 길을 걷곤 한다.(<안과 겉>, p.29)


그가 가벼운 도취감을 느낀 채 걸었을 거리는 아마도 히드라에서 알제 중심가에 이르는 거리를 지칭한 것이 아닐까.


하룻날이 밤 속으로 기울어지는 이 짧은 순간들이 어떤 비밀스러운 신호와 부름으로 가득 차 있기에 나의 마음속에서 알제는 그 순간들과 그토록 가까이 이어져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위의 책, p.39)
P1490053-s.jpg 알제 시내에 위치한 어느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2 - 아몬드나무를 찾아서


'영사의 계곡 Vallée des Consuls'을 찾아 나는 알제 서쪽으로 향했다. 밥 엘 우에드에서 시작된 이 여정을 해변을 따라 난 도로를 통해 진행할지 아니면 고도가 높은 지역을 통해 갈지 정해야 했는데, 나는 산으로 난 길을 택했다. 산길은 좁았고 무엇보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타이어가 아래쪽으로 조금씩 밀렸다. 사실 나는 타이어보다도 고장 난 핸드브레이크가 더 걱정이었는데, 경사로 쭉 밀릴 경우 대책이 없었다.


전기에 따르면 ‘수아르 레퓌블리캥’지에서 일하던 마지막 며칠 동안 카뮈는 아프리카 노트르담 근처의 큰 집에서 살고 있었다. ‘영사의 계곡’으로 알려진 이 곳은 바다가 내려다 보였고, 아몬드나무(국내 번역본에는 편도나무로 주로 번역되어 있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에세이 ‘편도나무들'을 쓰기 시작한 건 주변환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초여름에 접어든 이때 아몬드나무 꽃을 보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아몬드나무의 존재라도 확인하겠다는 마음으로 계곡 윗 지역으로 올라섰지만, 아몬드나무는 어디에 숨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통 아몬드나무 꽃은 겨울을 이겨내고 초봄이 되어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꽃이 없는 모습으로 나무를 식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신 너무도 맑은 하늘과 바다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다를 향해 뻥 뚫린 시선.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적당한 크기의 마을은 바다에 면하고 있었다.

P1570416-s.jpg 영사의 계곡 위에서 바라본 아랫마을과 바다

아몬드나무를 찾는 일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계곡과 평행하게 난 도로를 통해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도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 예전 내가 살던 집에 아몬드나무를 키워본 적이 있는터라 나무의 대략적인 형태와 줄기 색은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P1570415-s.jpg 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 아몬드나무가 아닌 나무들만 보인다.

아몬드나무가 속한 벚나무속(Prunus)은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 녀석들은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내는 대표적인 나무들이다. 한국의 경우 봄의 전령으로 특히 매실나무의 꽃을 주의깊게 바라봤는데, 우리 선인들은 사군자 중 하나에 매화를 포함시켰다. 그에 반해 지중해 지역에서의 봄의 전령은 아몬드나무가 그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거무스름한 나무줄기에 대비되는 하얀 꽃은 누구나 한동안 그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는데, 그 아름다움은 고흐의 작품을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알제에 살고 있었을 때 나는 항상 겨울을 잘 참고 지냈다. 어느 날 밤에, 2월의 싸늘하고 순결한 하룻밤에, 레 콩쉴 계곡의 편도나무들이 하얀 꽃들로 뒤덮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 연약한 눈빛의 꽃이 모든 비와 바닷바람에 저항하는 것을 보고 황홀함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도 해마다 그 꽃은 열매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었다. (『결혼 · 여름』, <편도나무들> , p.111)


P1570417-s.jpg 꽃이 피지 않는 이상 사실 멀리서 아몬드나무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신에 관해서 확고한 태도를 갖자고 말하는 '편도나무들' 에세이에서 그는 아몬드나무라는 상징적인 존재를 내세운다. 흰 빛과 수액의 미덕에 의하여 모든 바닷바람에 저항하는 성격의 힘. 이 곳에 와보니 그가 왜 '바닷바람에 저항하는'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됐다.

그러나 정신의 자신만만한 덕목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앞에서 말한 바로 그 니체가 무거움의 정신의 치명적인 적으로서 그 덕목들을 열거한 바 잇다. 그가 생각할 때 그것은 성격의 힘, 고결한 취향, 이 '세계', 고전적인 행복, 확고한 긍지, 현인의 냉정한 검박이다. 이런 덕목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하며, 각자의 자신에게 적합한 덕목을 선택할 수가 있다. 걸려 있는 내기판의 이 엄청난 규모를 앞에 두고 우리는 하여간 성격의 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선거운동의 연단에서 미간을 찡그리거나 협박을 섞어가며 보여주는 그런 성격의 힘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흰 빛과 수액의 미덕에 의하여 모든 바닷바람에 저항하는 성격의 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세계의 겨울 속에서 열매를 준비해주는 것은 바로 그 힘인 것이다. <위의 책, p.112>


영사의 계곡을 따라내려오다보면 우측으로 아프리카 노트르담 성당을 발견할 수 있다. 언덕 위에 당당한 자태를 뽐내는 이 곳은 알제에서뿐만 아니라 이렇듯 외곽에서도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P1570419-s.jpg 오른쪽으로는 멀리 아프리카 노트르담 성당이 보였다

계곡을 따라 내려온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도로를 건너 해변까지 내려갔다. 파도가 치는 해변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창고인지 집인지 모를 건축물이 여럿 존재했다. 지중해의 해적들이 활개를 치던 당시에 왠지 그들의 성채가 아니었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P1570432-s.jpg 아몬드나무를 찾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바다에서도 아몬드나무를 찾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정신없이 근처의 나무들을 훑었는데, 사실 부질없는 짓이었다. 해변에는 아몬드나무가 살지 못하니 때문이니까. '그 연약한 눈빛의 꽃이 모든 비와 바닷바람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건만, 다음 봄을 기약해야겠다.

P1570435-s.jpg 영사의 계곡에서 내려오면 마주하는 바다


keyword
이전 17화그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