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동쪽으로 간 이유는

최초의 인간 / 알제리 동부

by 에트랑제
19-317-s.jpg 카뮈의 생가. 세월의 무게와 허술한 관리를 못이기고 건물은 무너지고 있었다.


#1 - 최초의 인간

지난 1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거대한 무리들을 이룬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와서 땅을 갈았고 어떤 곳은 점점 더 깊게, 어떤 곳을 가벼운 흙먼지만 불어와도 덮여 버릴 만큼 점점 더 시답잖게 밭고랑을 팠다. 그리하여 이 지역은 잡초 우거진 원초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식들을 낳아 놓고 사라졌다. 이렇게 그들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또 그들의 아들과 손자들 역시 오늘 자크 자신이 그렇듯이 과거도 윤리도 교훈도 종교도 없는 채 이 땅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고 또 그렇게 된 것을, 그것도 밝은 햇빛 속에서 어둠과 죽음을 앞에 두고 고통에 사로잡힌 채 그렇게 된 것을, 행복해하고 있었다. (<최초의 인간> 중)




"튀니지로 갈래요? 운전해서..."


친구 K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선뜻 그렇게 하자고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알제에서 튀니지까지는 약 830km의 거리. 쉬지 않고 달려도 10시간이 족히 넘는다는 얘기다. 둘이 번갈아가며 운전을 하면 부담이 덜 하긴 하지만, 그래도 장거리 운전이 쉬울 리가 없다. 게다가 국경에서의 보내야할 의미없는 시간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침차의 에어컨은 고장나 있었다. 에어컨없이 한여름에 어딜 가겠는가. 그러나...


"같이 가시죠."


며칠 후 우리는 새벽 6시에 알제에서 출발했다. 수도 알제에서의 교통체증은 꽤나 심각한 편이라 출근시간이 오기 전에 알제를 빠져나갈 심산에서였다. 이른 시간에 알제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했는데, 우리는 나름의 운전규칙을 정했다. 누가 운전하더라도 한 번에 최대 3시간을 넘지 않기로. 적절한 체력 분배를 통해 우리는 안전운행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알제리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나는 왜 이 곳의 여름날 들판은 누런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푸른 빛과는 너무도 다른 빛깔.

알제리의 여름 들판은 주로 누런 빛이다

이제는 이 곳 작물의 주된 품종인 보리, 밀의 재배시기로 인한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을이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카뮈의 표현대로 '잡초가 우거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하고 있었다.


안나바를 거쳐 국도를 타는데, 우연히 나는 지도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드레앙 Dréan(예전에는 몽도비 Mondovi로 불렸던 곳). 카뮈가 태어난 고향이다. 알제에서 워낙 먼 거리라 쉽게 여행할 수 없었던 곳. 나는 슬쩍 K의 의사를 물었다.


"카뮈 생가에 한 번 들려볼까요?"


K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는데, 그는 이 대답으로 인해 저녁약속에 늦었다.


자전적 소설 <최초의 인간>의 7장은 주인공이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는데, 그가 드레앙을 찾았을 때는 그의 아버지가 일했던 포도농장을 찾을 수 없었다. 농장의 주인은 두 번씩이나 바껴있었고, 무엇보다 포도나무는 어느 날 주인에 의해 모조리 뽑혔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곳을 찾았을 때도 포도나무는 구경하기 힘들었다.


드레앙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창고 건물이 보이는데, TABACOOP 회사의 담배저장시설이다. 이 회사는 1920년대 만들어졌는데, 이를 통해 당시 이 주변은 포도뿐만 아니라 담배도 많이 재배했음을 알 수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보이는 담배저장시설

그의 글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프랑스 본토에서 처음 알제리로 보내진 사람들은 많은 고생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배 밑창 깊숙한 곳에서 정복자들은 죽을병이 든 채 서로서로의 몸 위에 토하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울부짖다가 마침내 본 Bône(지금의 Annaba지역) 항구에 입항'했고, 자신들이 머물 땅에 도착해서는 '인가 하나 없고 농사짓는 땅뙈기 하나 없어 그야말로 황량한 하늘과 위험한 땅 사이의 세상 끝'으로 느꼈다고 하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강이 범람했고 오두막집을 짓고 나자 사람들은 콜레라에 걸리기 시작한다. 한더위에 하루에 열 명씩 죽어가던 상황. 약이 다 떨어지자 고심끝에 의사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낸다. 피를 덥히기 위해서는 춤을 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밤마다 일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장례식 사이사이에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염병이 멎는다.


우리는 드레앙 시내 중심에 들어와서 동네 사람들에게 카뮈 생가를 묻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카뮈를 모르겠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알제에 있는 그의 집을 찾으러 다닐 때도 역시 사람들의 반응도 이랬다. 나는 굴하지 않고 수소문을 계속했다.


"프랑스 문학가인데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에요. 알베르 카뮈, 모르세요?"


모르겠다는 대답만 6번째. 대체 몇 번을 물어야 카뮈를 아는 사람이 나타날지 알 수가 없던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7번째 우리의 질문에 응답한 어느 여성 경찰관 분을 만난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카뮈 생가를 가리켜주었다.


"저기 빨간 천이 달린 매장 옆이에요"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카뮈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은 가게 옆에 위치한 카뮈 생가에는 작은 명패조차 달려있지 않았다.

카뮈 생가. 1층에는 슈퍼가 위치하고 있다.

카뮈는 1913년 이 곳에서 태어났고 그가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그의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 사망했다. 아버지의 사망 후 그의 어머니는 어린 두 아들 뤼시앵, 알베르를 데리고 알제의 서민 주거지역 벨쿠르에 있는 친정어머니 집으로 와서 정착했으니, 사실 카뮈는 이 집에서는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나는 매장 주인에게 질문했다.


"제가 알기로는 2012년에 프랑스 대사관에서 카뮈를 기념하는 명패를 달았던 걸로 아는데, 그 명패는 어디에 있나요?"


"누군가 떼어버렸어요. 여기 봐요, 흔적이 보이죠?"


정말 흔적만 있고 명패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생가는 더욱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카뮈를 기념한 명패가 떼어진 흔적

"이리로 와요."


매장에 있던 어느 분이 앞장서서 그의 가게 옆에 있는 문을 열었다.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주민

문을 여니 작은 공터가 나왔다. 그 곳에 서니 우리는 카뮈 생가의 다른 쪽 파사드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건물의 2층에 살았는데, 나무로 된 창문과 벽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았다.


그의 생가를 배경으로, 어느새 내 옆에 위치한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내 웃는 얼굴인 그들. 자신들의 땅을 지배한 프랑스에 대한 악감정이 있을테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일반적인 알제리인들의 반불 감정은 우리의 반일감정만큼 심하지 않다.

이 분들 덕에 생가를 보다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렇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덧없는 도시들을 건설해 놓고 나서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남들의 가슴속에서도 영원히 죽고 마는 주워 온 아이들인 것이다. 마치 인간들의 역사가, 가장 해묵은 대지 위를 끊임없이 전진해가고 나서 그렇게도 보잘것없는 흔적들만을 남겨 놓은 그 역사가, 기껏해야 발작적인 폭력과 살인, 갑작스러운 증오의 폭발, 그 고장의 강들처럼 갑자기 불어났다가 갑자기 말라 버리는 피의 물결이 전부였다가, 그 역사를 진정으로 만든 사람들의 추억과 더불어 끊임없이 내리쬐는 햇볕에 모두 증발해 버리듯이 말이다. (위의 책)


공터쪽에 있는 카뮈 생가의 벽에는 그를 기념하는 또다른 명패가 벽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이 명패의 글씨는 녹으로 인해 알아볼 수 없었다. 그의 표현대로 '증발해버린' 것이다.

카뮈를 기념하는 오래된 명패

나는 그의 집을 나와 드레앙의 주 도로에 진입했다. 이 도로는 알제리 독립 이전에는 '알베르 카뮈가'로 명명되었는데, 흥미롭게도 알제리 독립 후에도 이 거리는 십년이 넘도록 그 이름을 유지했다고 한다.




#2 - 알제리 동부

본에서 몽도비까지 '길이 없는 곳' (<최초의 인간> 중)




튀니지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안나바에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서둘러 안나바의 호텔을 나왔는데, 한참 후 나는 여러 개의 화분을 호텔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화분들은 튀니지에서 사온 귀한 식물들을 말하는데, 그 때는 호텔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멍하니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데, 호텔에 두고 온 녀석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본(안나바의 옛 이름) 근처에서 우리는 '길이 없는 곳'을 향했는데, 굳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그저 우리는 해안도로를 타고 바다를 보고 싶었을 뿐. 이 루트는 K의 의견이었는데, 그가 듣기로 이 해안가 경치가 좋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가는 루트 대부분이 산의 이곳저곳을 가로지르는 지방도라는 사실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20180728_061949-s.jpg 사람의 손길을 덜 타는 지역은 다양한 식생구조를 가진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덕에 산길에는 차가 거의 없었고 공기도 상쾌했다. 차가 많이 지나지 않으니 식물들은 점점 차도에 가까이 다가와 도로 일부를 점령하기까지 했다. 각종 침엽수들과 산딸기, 고사리류 등이 내 눈을 끄는 터라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무들 사이로 가끔 시선을 허락하는 안나바 바다의 수평선은 떠오르는 해와 더불어 장관을 이뤘다.

20180728_062012-s.jpg 몽글몽글한 산딸기
20180728_063325-s.jpg 아침해와 바다, 그리고 산

시간이 촉박하지 않았기에 가끔 풍경이나 식물이 궁금할 때면 차를 세웠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파란빛을 띤 어느 초본류. 온몸에 가시를 품고 있는 녀석은 잎과 꽃이 파랬다. 자연에는 파란색의 식물이 꽤나 드물기에 더욱 귀하게 느껴질 수 밖에. 때로는 우리의 의지가 아닌 이유로 차를 세울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기곤 했는데, 다름 아닌 산에 방사되어있는 소떼 때문이었다. 녀석들 근처에 갈 때면 큰 뿔로 우리를 위협하는 듯 했고, 그 때마다 우리는 그 뿔에 차가 받힐까 두려워 거의 기어가는 속도로 그들을 지나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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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잎

어느 순간 우리는 도로에 가로로 길게 놓인 나무기둥으로 발견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말라는 의미로 누군가 놓아둔 것. K와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한참 서로를 바라봤다.


"저 쪽에 조그만 길이 하나 있는데, 그리로 가볼까요?"


"아니요. 그쪽은 길이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면...?"


"길이 막혔다면 우리가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


알제리에서는 이런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핸들을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카페가 있어 잠시 커피도 마실 겸 길을 묻기로 했다. 우리를 반겨주는 카페 주인과 동네 사람들. 그들에 의하면 아까 막힌 도로는 통제된 것이 맞고, 대신 다른 우회로를 타게되면 스킥다 Skikda로 빠지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다행히 안나바 시내까지 되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20180728_071411-s.jpg 카페 앞에 세워져 있던 오래된 오토바이

그렇게 우회도로를 찾아냈고, 우리의 차는 점점 안나바 해안에 더 가까워졌다. 나는 캅 드 페르 Cap de fer를 지도에 입력했고, 어느덧 오래된 등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얗게 칠해진 등대라 먼 바다에 있는 배들은 이 등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180728_094153-s.jpg 사진의 오른쪽에 등대가 보인다
20180728_100004-s.jpg 안나바의 등대. 하늘과 바다의 파란색과 대비되는 하얀색을 가졌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신기한 식물을 찾아 쭈그려 앉고, K는 등대 뒤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가까운 것에, 그는 바다에 우선적으로 끌린 이유 때문이리라. 가까이서 보니 식물뿐 아니라 독특한 돌의 색과 형태가 내 눈길을 끌었다.

20180728_105209-s.jpg 열악한 환경에서 무성하게 잎을 내는 녀석들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참 뒤 고개를 들어보니 K는 등대와 절벽 사이의 아슬아슬한 공간에 서있었다. 물론 그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있었는데, 등대와 바다, 그리고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K가 만드는 실루엣이 한 편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명화가 될 수는 없는 그림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볼록한 배 때문이다.


"바닷물에 몸 좀 담글까요?"


내가 하고자 하던 질문을 그가 했다. 우리가 있던 등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해변이 있는 걸 확인하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 작은 해변은 하늘에서 보면 반달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물이 맑고 모래바닥이라 수영을 즐기기에 좋아보였다. 나는 수영복이 없다는 걸 알고나서 잠시 고민했지만, 최대한 어두운 색깔의 속옷을 가방에서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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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우리를 받아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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