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무대 / 처갓집이 있는 동네
#1 - 소설의 무대
나는 소설책을 덮고나니 그 때까지 가보지 않았던 소설의 배경 오랑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느껴졌는데, 나중에 오랑에 직접 가봤을 때 소설 속 음울한 분위기와 거리가 멀어 놀란 경험이 있다. 전반적으로 도시는 밝았고 다만 오랑 외곽 거리에서 일부 스산한 느낌을 가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거리에서 쥐가 튀어나올까봐 약간 겁이 났다. 실제로 오랑은 소설에서처럼 대규모 페스트가 있던 적이 없없으니 괜한 생각을 한 것이다.
의사는 창을 열었다. 그랬더니 일시에 거리의 소음이 크게 들려왔다. 이웃에 있는 공장에서 짤막하게 반복되는 기계톱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리외는 몸을 움직여 기운을 냈다. 매일매일의 노동, 거기야말로 확실성이 있었다. 나머지는 하찮은 연계와 충동에 얽매여 있어, 그런 것에 말을 멈추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직무를 완수해 나가는 일이다. (<페스트>, p.50)
장 타루는 수주일 전에 오랑에 거처를 정했는데 그때부터 번화가에 있는 커다란 호텔에 살고 있었다. 분명히 그는 여러 가지 수입으로 제법 여유 있게 살고 있는 듯했다… (위의 책, p. 31)
프롱 드 메르의 산책길마저도, 이따금 쥐들로 더럽혀졌다. (위의 책, p.23)
프롱 드 메르는 해안가를 바라볼 수 있는 오랑의 대표적인 산책길. 관광객들은 이 곳 테라스에서 바다를 보면서 천천히 거니는데, 이 공간에 쥐가 발견됐다고 표현함으로써 카뮈는 전염병이 오랑 전역에 확산되고 있음을 독자에게 넌지시 알리고자 했을 것이다.
산책길 뿐일까. 전차에도 쥐가 발견된다.
오늘 시내에서 전차 한 대가 돌연 멈추었다. 어떻게 거기에 기어 들어왔는지 모를 쥐 한 마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위의 책, p.35)
이처럼 우리는, 각자가 그날그날을 하늘만 바라보며 고독하게 살아가기를 감수해야만 했다... (중략)... 그들은 그저 황금빛 햇빛이 비치는 것만으로도 희희낙락했으며, 반대로 비 오는 날이면 그들의 얼굴과 생각은 두꺼운 장막에 싸이는 것이었다. (위의 책, p.84)
리외는 질병에 굴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가 공화국의 여신상 근처로 이동하는 대목이 소설 속에 있다.
두 사람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서 연병장에 도착했다. 무화과의 가지들과 종려나무 가지들이, 먼지에 싸여 더러워진 공화국의 여신상을 가운데 놓고, 먼지를 푹 뒤집어쓴 채 가만히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은 그 기념상 아래에 멈추어 섰다. 리외는 잿빛 먼지로 뒤덮인 신발을 하나씩 차례로 땅에 탁탁 털어 냈다. (위의 책, p.95)
약 2주일 전부터 판느루 신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이 성자에게 서열상 아주 각별한 지위를 차지하게 해 준 아프리카 교회에 대한 연구를 포기했었다.(위의 책, p.103)
랑베르는 방 한구석으로 가서 조그만 축음기의 뚜껑을 열었다. “그 곡이 뭐예요?”하고 타루가 물었다. “귀에 익은 곡인데요.” 랑베르는 이 판이 ‘세인트 제임스 인퍼머리’라고 대답했다. … “그렇게 그 곡이 좋으세요?”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밖에 가진 게 없어서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성채들의 대포들은 움직이지 않는 하늘에 끊임없이 강렬한 햇볕의 물결을 온 시가에 퍼붓고 있었다. 밤도 정지한 것 같았다. 성채의 대포들은 하늘에 대고 끊임없이 포성을 울리고 있었다. (위의 책, p.318)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 333)
#2 - 처갓집이 있는 동네
비둘기도 없고 나무도 공원도 없는 도시, 거기에서는 날개를 퍼덕이는 새도, 한들거리는 나뭇잎도 볼 수 없는 거리, 한마디로 말해서 중성지대인 그 도시를 어떻게 설명하면 상상이 될까? (<페스트>, p.9)
택시를 타고 오랑 중심가로 가는 때였다. 내가 탄 택시의 기사는 차가 막히는 길을 피해 좁은 골목길로 차를 몰았는데, 어느 순간 창 밖을 보니 어느 사거리에서 카뮈가 말한 식민관 Maison du Colon (현재 이름은 오랑 문화예술의 집 Palais de la culture et des arts Ville d'Oran)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이한 형태와 색상, 그리고 모자이크 때문에 눈길이 가는 건물이었다.
형이상학에 못지않게 경제와도 관련이 있는 숱한 이유 때문에, 오랑의 스타일은 ㅡ 만일 그런 것이 있기나 하다면 ㅡ 식민관이라 불리는 기이한 건물에 힘차고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결혼, 여름>, p.94)
이 건물에 대해 그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건물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그 미덕은 세 가지다. 취미의 대담성, 폭력에의 사랑, 그리고 역사적인 종합의 감각이다. 이집트와 비잔티움과 뮌헨이 협력해서 뒤집어놓은 거대한 잔 모양의 기묘한 케이크를 건조해놓았다. 색색가지의 돌들이 더할 수 없이 힘찬 효과를 내면서 지붕에 테두리를 했다. 이 모자이크의 강렬한 정도가 어찌나 노골적인지 형상 없는 눈부심밖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을 정도다. (위의 책, p.95)
카뮈의 비판은 건물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데, 오랑 중심광장에 있는 조각상에도 비판을 가한다.
오랑은 또 한편 아름 광장에 있는 사자 두 마리에 무척 애착을 갖고 있다. 이 사자들은 1888년 이래 시청 계단 양쪽에 군림하고 있다. 그걸 만든 사람이 카인이라는 이름이었다. 사자는 위엄이 있고 몸통이 작달막하다. 밤이 되면 그놈들은 차례로 받침대에서 내려와 가지고 어두운 광장 둘레는 소리 없이 돌며, 때로는 먼지 투성인 큰 무화과나무 밑에서 오줌을 눈다는 이야기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소문에 불과하지만 오랑 사람들은 믿는 척하고 귀를 기울인다. 한데 있을 법한 이야기는 되지 못한다... (중략)... 카인은 바다 건너 식민지 어느 상업적인 지방 광장에 우스꽝스러운 낯짝 두 개를 만들어 세웠다. (위의 책, p.96)
오랑의 상징물에 대한 카뮈의 비판은 내가 보기에 조금 과한 면이 있다. 아랍어로 와흐란 Wahran(두 마리의 사자)이라 불리는 도시이기에 시청 앞에 두 마리의 사자상이 존재하는 것은 우선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조각상 자체만 살펴보더라도 사실 균형감이 없다던가 형태가 우스꽝스럽지 않다.
당시 처갓집에 얹혀살던 카뮈의 눈에 오랑이라는 도시가 달갑지 않게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결혼하기 전부터 사실 처갓집 사람들은 카뮈를 좋게 보지 않았으니 처갓집에서의 삶이 편하지는 않았을 터. 참고로 그의 두 번째 아내가 될 프랑스 포르 Francine Faure가 처음 그녀의 가족에게 카뮈와의 결혼에 대해 말했을 때, 그녀의 가족들은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당시 카뮈는 결핵환자이며 생계를 위한 제대로 된 직장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 때까지 그는 첫번째 부인과 이혼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가 머물렀을 처갓집을 찾기 위해 라르비 벤 음히디 거리 Rue Larbi Ben M'hidi에 들어섰다. 사람과 차로 시끌벅적한 거리. 거리 주변의 건물들은 나름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카뮈의 장인은 공공부문 건설업자였는데, 본인의 집을 직접 건설했다.
거리를 걷다 67번지만 찾으면 됐다. 시계가 걸린 어느 가로등을 지나서 회랑에 들어섰는데, 공간의 구조가 파리의 리볼리 거리와 유사한 느낌이었다. 아케이드는 차도와 평행하게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이어졌다.
보석가게 간판에 67번지라 쓰여있는데, 이상하게도 하나 건너 위치한 다른 가게에도 똑같은 숫자가 적혀있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그곳을 서성였다.
그 2개의 상점 사이에 위치한 커다란 문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무거운 대문은 열려 있어 손으로 밀치기만 하면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계단이 보였고, 그 계단은 시계방향으로 위를 향했다.
나는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갔다. 이제 양측에 위치한 두 집 중에 하나가 그의 집. 왼쪽 집은 치아교정 전문 치과의사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고, 오른쪽 집은 아무런 간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가정집으로 보였다. 왼쪽의 치과 문을 노크하니, 간호사 한 분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카뮈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나는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맞은편이에요. 근데 지금 주인은 부재중이고요. 주인이 바뀌고 나서는 실내가 다 바뀌어버려서, 아마 옛날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울 거예요."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감사하다고 말한 후 맞은편 대문 앞으로 갔다. 전기, 가스계량기에서부터 철로 된 장식 없는 대문까지 그 모든 것은 모두 현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라 전혀 카뮈의 시절을 대변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정말 이 곳에 묶기는 했었던 걸까.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나를 보고 간호사가 말했다.
"집주인은 저녁 7시가 넘으면 아마도 돌아올 겁니다. 그때 다시 와보세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집주인은 아마 나를 귀찮아할 것 같아요."
나는 계단을 타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건물 주변을 더 관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옥상 문을 여니, 전면이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현대식 건물이 주변의 다른 건물을 압도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이질적인 풍경.
서쪽을 바라보니 멀리 산타 크루즈가 보였다. 산타 크루즈 오른편으로 바다가 보여야 했지만, 내 시선을 가리는 건물로 인해 바다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옥상에서 내려오며 막상 카뮈의 집을 다시 보니 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었다. 저녁까지 기다려볼까 했지만 마음을 접었다.
나는 거리로 나왔다. 여전히 거리는 사람과 차들로 요란했다. 어쩌면 그가 이런 중심가의 환경을 좋아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살았던 어린 시절 알제의 집도 도로에 면하고 있지만 도로의 소음이 심하지는 않았는데, 상대적으로 이 곳은 거리의 소음이 건물들 사이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오랑 사람들은, 임종 때 마지막 시선을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이 대지에 던지며, "창문을 닫아요, 너무 아름다우니."라고 외쳤다는 저 플로베르의 친구를 닮은 것 같아 보인다. 오랑 사람들은 창문을 닫았고 그 속에 갇혔으며, 풍경을 내쫓아버렸다. (위의 책, p.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