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페스트>의 도시

소설의 무대 / 처갓집이 있는 동네

by 에트랑제
15-311-s.jpg 카뮈가 좋아하지 않았던 오랑 시청 앞 사자상


#1 - 소설의 무대


죽어있는 쥐를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소설 <페스트>. 나는 '죽음', '쥐' 등의 소재를 좋아하지 않아 사실 페이지를 넘기는 게 힘들었다. 이 책은 질병 페스트에 대항하여 주인공들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카뮈는 이 소설을 통해 첫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됐다.


소설 <이방인>이 단순히 살인자의 이야기가 아니었듯 <페스트> 역시 여러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전염병 대신 전쟁이라는 다른 절망적인 상황을 대입시켜도 충분히 읽히는 소설로 인류의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혹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가질 수 있다.


나는 소설책을 덮고나니 그 때까지 가보지 않았던 소설의 배경 오랑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느껴졌는데, 나중에 오랑에 직접 가봤을 때 소설 속 음울한 분위기와 거리가 멀어 놀란 경험이 있다. 전반적으로 도시는 밝았고 다만 오랑 외곽 거리에서 일부 스산한 느낌을 가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거리에서 쥐가 튀어나올까봐 약간 겁이 났다. 실제로 오랑은 소설에서처럼 대규모 페스트가 있던 적이 없없으니 괜한 생각을 한 것이다.

오랑 외곽의 어느 거리

<페스트>의 주인공은 의사 리외. 4월 어느 날 리외는 자신의 진찰실에서 나오다 층계 한복판에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밟을 뻔하는데, 그 진찰실에 대한 묘사가 없어 실제 배경이 되는 장소를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사실은 진찰실 근처에 공장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

의사는 창을 열었다. 그랬더니 일시에 거리의 소음이 크게 들려왔다. 이웃에 있는 공장에서 짤막하게 반복되는 기계톱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리외는 몸을 움직여 기운을 냈다. 매일매일의 노동, 거기야말로 확실성이 있었다. 나머지는 하찮은 연계와 충동에 얽매여 있어, 그런 것에 말을 멈추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직무를 완수해 나가는 일이다. (<페스트>, p.50)


성실한 리외 옆에서 페스트에 대항해 함께 싸우는 장 타루의 장소는 어디일까. 다음의 글에서 추정해볼 수 있다.

장 타루는 수주일 전에 오랑에 거처를 정했는데 그때부터 번화가에 있는 커다란 호텔에 살고 있었다. 분명히 그는 여러 가지 수입으로 제법 여유 있게 살고 있는 듯했다… (위의 책, p. 31)


내 생각에는 장 타루의 호텔은 로얄호텔 Royal hotel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번화가에 있는 커다란 호텔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로얄 호텔의 정면 모습. 오랑에서 가장 좋은 호텔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이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는 화가 에티엔 디네 Etienne Dinet(알제리에서 활동한 프랑스 화가. 당시 알제리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의 원본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알제리의 많은 곳에서 그의 모사본을 벽에 걸어놓는 곳을 많지만, 원본이 주는 아우라를 따라올 수가 없다. 나는 전에 에티엔 디네가 주로 활동했던 사하라 초입 부 사아다 Bou Saâda에서 그의 미술관을 찾아간 적이 있지만, 문이 닫혀있어 그 곳에서는 그의 그림을 구경할 수 없었다.

호텔 안의 에티엔 디네 그림

호텔에서 나와 소설 속에 표현된 다른 장소를 찾아나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 내 죽은 쥐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한다는 대목에 프롱 드 메르 Front de mer 가 언급된다.

프롱 드 메르의 산책길마저도, 이따금 쥐들로 더럽혀졌다. (위의 책, p.23)


프롱 드 메르는 해안가를 바라볼 수 있는 오랑의 대표적인 산책길. 관광객들은 이 곳 테라스에서 바다를 보면서 천천히 거니는데, 이 공간에 쥐가 발견됐다고 표현함으로써 카뮈는 전염병이 오랑 전역에 확산되고 있음을 독자에게 넌지시 알리고자 했을 것이다.

프롱 드 메르의 산책길

산책길 뿐일까. 전차에도 쥐가 발견된다.

오늘 시내에서 전차 한 대가 돌연 멈추었다. 어떻게 거기에 기어 들어왔는지 모를 쥐 한 마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위의 책, p.35)


전차가 다니는 길

건물 사이로 오랑의 전차는 지나는데, 카뮈의 시절에도 이 곳에 전차는 지났을 것이다. 나는 언덕의 전차길을 볼 때면 몇 년 전에 있던 오랑의 전차 사고가 떠오른다. 차장이 전차를 세워놓고 커피를 시키러 간 사이 저절로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전차가 내리막길로 치닫게 된 사고.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으나 전차는 회전 구간에서 어느 상점을 쾅 들이박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다시 소설로 돌아오면, 페스트는 확산되어 오랑 사람들은 도시 내에 갇히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가 그날그날을 하늘만 바라보며 고독하게 살아가기를 감수해야만 했다... (중략)... 그들은 그저 황금빛 햇빛이 비치는 것만으로도 희희낙락했으며, 반대로 비 오는 날이면 그들의 얼굴과 생각은 두꺼운 장막에 싸이는 것이었다. (위의 책, p.84)


황금빛 햇빛과 비. 사람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리외는 질병에 굴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가 공화국의 여신상 근처로 이동하는 대목이 소설 속에 있다.

두 사람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서 연병장에 도착했다. 무화과의 가지들과 종려나무 가지들이, 먼지에 싸여 더러워진 공화국의 여신상을 가운데 놓고, 먼지를 푹 뒤집어쓴 채 가만히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은 그 기념상 아래에 멈추어 섰다. 리외는 잿빛 먼지로 뒤덮인 신발을 하나씩 차례로 땅에 탁탁 털어 냈다. (위의 책, p.95)


지금 오랑 광장에는 '먼지를 푹 뒤집어쓴 공화국의 여신상' 대신 그 자리를 시디-브라힘 모뉴먼트 Monument de Sidi-Brahim가 대신하고 있다. 종려나무는 여전히 있으나 무화과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공화국 여신상이 있던 자리

리외와는 달리 페스트 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판느루 신부가 소설 속에 등장한다. 종교가 인간의 고난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카뮈의 기본적인 생각을 소설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설 속 판느루 신부가 연구했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실제 카뮈와 상당한 관련이 있는데, 그의 학위논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알제리 동쪽 지방 출신이다.

약 2주일 전부터 판느루 신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이 성자에게 서열상 아주 각별한 지위를 차지하게 해 준 아프리카 교회에 대한 연구를 포기했었다.(위의 책, p.103)


전반적으로 페스트가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읽다가 웃었던 대목이 있다.


랑베르는 방 한구석으로 가서 조그만 축음기의 뚜껑을 열었다. “그 곡이 뭐예요?”하고 타루가 물었다. “귀에 익은 곡인데요.” 랑베르는 이 판이 ‘세인트 제임스 인퍼머리’라고 대답했다. … “그렇게 그 곡이 좋으세요?”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밖에 가진 게 없어서요.”


주변 사람들의 죽음들이 당연시 되던 시간이 지나고 이제 페스트는 물러간다. 이제 사람들은 환호한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성채들의 대포들은 움직이지 않는 하늘에 끊임없이 강렬한 햇볕의 물결을 온 시가에 퍼붓고 있었다. 밤도 정지한 것 같았다. 성채의 대포들은 하늘에 대고 끊임없이 포성을 울리고 있었다. (위의 책, p.318)


오랑에는 언덕에 성채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때 리외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글로 쓸 결심을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기쁨이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서이다.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 333)





#2 - 처갓집이 있는 동네

비둘기도 없고 나무도 공원도 없는 도시, 거기에서는 날개를 퍼덕이는 새도, 한들거리는 나뭇잎도 볼 수 없는 거리, 한마디로 말해서 중성지대인 그 도시를 어떻게 설명하면 상상이 될까? (<페스트>, p.9)




위 구절로 인해 오랑은 녹지가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 오랑은 그렇지 않다. 나무도 있고 공원도 있으니.

P1460613-s.jpg 나무도 있고 공원도 있는 오랑

사실이 아닌 묘사에 대해 오랑 시민들은 카뮈에게 항의를 했고, 결국 그는 오랑 시민들에게 사과를 한다.


택시를 타고 오랑 중심가로 가는 때였다. 내가 탄 택시의 기사는 차가 막히는 길을 피해 좁은 골목길로 차를 몰았는데, 어느 순간 창 밖을 보니 어느 사거리에서 카뮈가 말한 식민관 Maison du Colon (현재 이름은 오랑 문화예술의 집 Palais de la culture et des arts Ville d'Oran)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이한 형태와 색상, 그리고 모자이크 때문에 눈길이 가는 건물이었다.

형이상학에 못지않게 경제와도 관련이 있는 숱한 이유 때문에, 오랑의 스타일은 ㅡ 만일 그런 것이 있기나 하다면 ㅡ 식민관이라 불리는 기이한 건물에 힘차고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결혼, 여름>, p.94)


P1570193-s.jpg 삿갓 모양의 지붕을 갖고 있는 건물이 식민관이다

이 건물에 대해 그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건물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그 미덕은 세 가지다. 취미의 대담성, 폭력에의 사랑, 그리고 역사적인 종합의 감각이다. 이집트와 비잔티움과 뮌헨이 협력해서 뒤집어놓은 거대한 잔 모양의 기묘한 케이크를 건조해놓았다. 색색가지의 돌들이 더할 수 없이 힘찬 효과를 내면서 지붕에 테두리를 했다. 이 모자이크의 강렬한 정도가 어찌나 노골적인지 형상 없는 눈부심밖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을 정도다. (위의 책, p.95)


카뮈의 비판은 건물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데, 오랑 중심광장에 있는 조각상에도 비판을 가한다.


오랑은 또 한편 아름 광장에 있는 사자 두 마리에 무척 애착을 갖고 있다. 이 사자들은 1888년 이래 시청 계단 양쪽에 군림하고 있다. 그걸 만든 사람이 카인이라는 이름이었다. 사자는 위엄이 있고 몸통이 작달막하다. 밤이 되면 그놈들은 차례로 받침대에서 내려와 가지고 어두운 광장 둘레는 소리 없이 돌며, 때로는 먼지 투성인 큰 무화과나무 밑에서 오줌을 눈다는 이야기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소문에 불과하지만 오랑 사람들은 믿는 척하고 귀를 기울인다. 한데 있을 법한 이야기는 되지 못한다... (중략)... 카인은 바다 건너 식민지 어느 상업적인 지방 광장에 우스꽝스러운 낯짝 두 개를 만들어 세웠다. (위의 책, p.96)


오랑의 상징물에 대한 카뮈의 비판은 내가 보기에 조금 과한 면이 있다. 아랍어로 와흐란 Wahran(두 마리의 사자)이라 불리는 도시이기에 시청 앞에 두 마리의 사자상이 존재하는 것은 우선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조각상 자체만 살펴보더라도 사실 균형감이 없다던가 형태가 우스꽝스럽지 않다.


당시 처갓집에 얹혀살던 카뮈의 눈에 오랑이라는 도시가 달갑지 않게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결혼하기 전부터 사실 처갓집 사람들은 카뮈를 좋게 보지 않았으니 처갓집에서의 삶이 편하지는 않았을 터. 참고로 그의 두 번째 아내가 될 프랑스 포르 Francine Faure가 처음 그녀의 가족에게 카뮈와의 결혼에 대해 말했을 때, 그녀의 가족들은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당시 카뮈는 결핵환자이며 생계를 위한 제대로 된 직장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 때까지 그는 첫번째 부인과 이혼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가 머물렀을 처갓집을 찾기 위해 라르비 벤 음히디 거리 Rue Larbi Ben M'hidi에 들어섰다. 사람과 차로 시끌벅적한 거리. 거리 주변의 건물들은 나름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카뮈의 장인은 공공부문 건설업자였는데, 본인의 집을 직접 건설했다.

P1530466-s.jpg 거리명이 적힌 표지판

거리를 걷다 67번지만 찾으면 됐다. 시계가 걸린 어느 가로등을 지나서 회랑에 들어섰는데, 공간의 구조가 파리의 리볼리 거리와 유사한 느낌이었다. 아케이드는 차도와 평행하게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이어졌다.

P1530467-s.jpg 아케이드 길

보석가게 간판에 67번지라 쓰여있는데, 이상하게도 하나 건너 위치한 다른 가게에도 똑같은 숫자가 적혀있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그곳을 서성였다.

P1530468-s.jpg 67번지에 있는 보석가게

그 2개의 상점 사이에 위치한 커다란 문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무거운 대문은 열려 있어 손으로 밀치기만 하면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계단이 보였고, 그 계단은 시계방향으로 위를 향했다.

P1530474-s.jpg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나는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갔다. 이제 양측에 위치한 두 집 중에 하나가 그의 집. 왼쪽 집은 치아교정 전문 치과의사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고, 오른쪽 집은 아무런 간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가정집으로 보였다. 왼쪽의 치과 문을 노크하니, 간호사 한 분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카뮈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나는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맞은편이에요. 근데 지금 주인은 부재중이고요. 주인이 바뀌고 나서는 실내가 다 바뀌어버려서, 아마 옛날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울 거예요."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감사하다고 말한 후 맞은편 대문 앞으로 갔다. 전기, 가스계량기에서부터 철로 된 장식 없는 대문까지 그 모든 것은 모두 현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라 전혀 카뮈의 시절을 대변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정말 이 곳에 묶기는 했었던 걸까.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나를 보고 간호사가 말했다.


"집주인은 저녁 7시가 넘으면 아마도 돌아올 겁니다. 그때 다시 와보세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집주인은 아마 나를 귀찮아할 것 같아요."


나는 계단을 타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건물 주변을 더 관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옥상 문을 여니, 전면이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현대식 건물이 주변의 다른 건물을 압도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이질적인 풍경.


P1530489-s.jpg 유리창에 비친 카뮈 처갓집 건물. 창문 주변과 처마 밑 장식에서 건물의 품격이 느껴진다

서쪽을 바라보니 멀리 산타 크루즈가 보였다. 산타 크루즈 오른편으로 바다가 보여야 했지만, 내 시선을 가리는 건물로 인해 바다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P1530491-s.jpg 서쪽을 바라보고 찍은 풍경

옥상에서 내려오며 막상 카뮈의 집을 다시 보니 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었다. 저녁까지 기다려볼까 했지만 마음을 접었다.


P1530495-s.jpg 층계참에서 보이는 풍경
P1530497-s.jpg 우측의 집이 카뮈가 머물렀던 곳이다
P1530503-s.jpg 길에서 바라본 그의 처갓집 풍경

나는 거리로 나왔다. 여전히 거리는 사람과 차들로 요란했다. 어쩌면 그가 이런 중심가의 환경을 좋아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살았던 어린 시절 알제의 집도 도로에 면하고 있지만 도로의 소음이 심하지는 않았는데, 상대적으로 이 곳은 거리의 소음이 건물들 사이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오랑 사람들은, 임종 때 마지막 시선을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이 대지에 던지며, "창문을 닫아요, 너무 아름다우니."라고 외쳤다는 저 플로베르의 친구를 닮은 것 같아 보인다. 오랑 사람들은 창문을 닫았고 그 속에 갇혔으며, 풍경을 내쫓아버렸다. (위의 책,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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