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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Mar 30. 2020

다시 <디오게네스의 나무통>

군대 가기 전의 나는 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걸 해야만 했고, 하기 싫으면 안 했다. 이를테면 날씨가 좋거나 중요한 축구 경기가 있을 때면 대학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도 군대를 가야 했다. 길었던 머리를 자르고 군대에 갔다. 나는 스스로 나 같은 유형의 사람은 아마 군생활을 제대로 못 버틸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무언가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에는 대략 이런 내용이 있었다. 디오게네스는 그의 나무통에서 육체는 속박되었지만 정신은 매우 자유로웠다고. 나는 그 글을 읽자마자 손으로 무릎을 탁 쳤고, '디오게네스의 나무통'을 자주 떠올리며 군생활을 예상외로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시기가 되었으니, 내 사고는 군대 울타리를 넘어 세상 이리저리 유랑할 수 있었다.


해외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지금, 나는 '디오게네스의 나무통', 이 문구를 다시 떠올리고 있다. 내 고향이 어릴 적에 비해 너무 발전했기에 어쩌면 나무통이라는 비유가 적절치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이 나무통 안에서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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