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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pr 10. 2020

오랑, 그리고 죽음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카뮈

4년전 오랑 거리. 어느 행인이 길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는데, 그 쓸쓸한 모습이 딱 내 마음과 같았다.

페이스북에서 띄워준 4년 전 오늘의 사진오랑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설 <페스트>로 인해 가뜩이나 요즘 오랑이 자주 소환되고 있어 궁금하던 차였는데,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나를 위해 찾아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4년 전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 있었고, 나는 '우리의 삶에 슬픔이 동행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라는 짤막한 글과 함께 저 사진을 올렸다. 지인들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웹 상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했고 그런 일을 경험하고 싶지도 않았다.


생과 사는 우리 주변에서 무한히 반복된다. 변함없는 사실인데, 나는 때로 그것을 눈치채고 있지 못하다 갑작스레 알고서는 그제서야 아파하는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그 '예기치 않았다'라 말하는.


카뮈의 경우 죽음이란 주제는 어땠을까. 그는 죽음을 좀 더 가까이 바라보았는데, 젊은 시절 본인이 죽음 문턱까지 다녀왔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는 죽음과 철학을 연결 지었고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내놓기까지 한다.


또한 그는 사형을 반대했고 그 반대의 목소리를 세상에 당당하게 외쳤다. 그런 이유로 그의 목숨이 위태로워진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런 위기들 속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당시는 세계대전이 한창이라 어느 한 개인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쉬울 때였음에도.


그랬던 그는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도 교통사고로. 그게 가장 의미 없는 죽음이라 그는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위대한 문인은 죽음의 방법으로 교통사고를 택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택해진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그의 어머니보다도 먼저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 그게 1960년 초의 일.


같은 해 아들 카뮈를 따라 뒤이어 그 어머니도 세상을 하직한다. 그런데 그녀가 묻힌 장소가 참 아이러니한 곳이다. 알제의 브뤼가(Boulevard Bru) 묘지. 카뮈가 이보다 살풍경한 장소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 장소인데, 그 곳에 그녀가 묻혔다.


만약 카뮈가 그의 어머니보다 더 나중에 죽음을 맞이했다면, 그는 어머니가 브뤼가 묘지에 묻히도록 놔두었을까. 편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여러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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