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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pr 10. 2020

꽃보다 카뮈

매우 짧았던 암스테르담 여행

(지난 여행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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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거쳐 아프리카로 가는 길. 경유지로 보통 파리만 거치지만, 나는 우연히 암스테르담과 파리 2곳을 모두 거치는 경유노선을 발견하고선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암스테르담에 '드디어' 갈 수 있게 됐다는 사실 때문에.


프랑스에 유학하던 시절 암스테르담은 지리적으로 가까웠지만 심리적으로 멀었. 사실 학생이었으니 여행할 시간이야 어떻게든 낼 수 있었지만, 나는 당시 우리 집에서 샤를 드골공항까지 가는 교통요금 우선 부담스러웠. 당시 저가항공사 티켓은 때로 고작 몇만 원에 불과했으니, 파리 내 교통요금이 비행기 티켓값의 몇 십퍼센트의 비율을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암스테르담에 유혹되지 않았다. 카뮈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고 지금만큼 원예산업에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위시리스트 상단에 위치한 도시가 되었으니 재밌는 일이다.


이번 여행은 경유시간이 짧아 잠시 암스테르담 시내에 나갔다 오는 게 전부지만 나름의 컨셉은 정했다.


꽃보다 남자!


네덜란드가 화훼, 종묘산업, 그리고 그와 관련된 시설, 장비산업이 얼마나 발전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여행 또한 하고 싶만, 시간 관계상 카뮈에게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가 암스테르담에 잠시 머물렀을 당시 그의 심정을, 혹은 그가 묘사한 네덜란드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카뮈를 숭배하는 내게는 그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암스테르담에 머문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그의 여러 저작 중에서 단 2권만이 필요한데, <작가수첩>과 <전락>이 그것다. 전자에서는 네덜란드 여행 중이던 그의 심정과 그가 바라봤을 풍경 추측할 수 있고, 후자에서는 소설 속 주인공의 시각으로 암스테르담을 바라볼 수 있다. 그는 소설 속에서도 장소에 대해서만큼은 사실적인 표현을 했기 때문에 소설 속 배경 표현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가공의 장소가 아니다.

 

촉박하게 준비한 여행이었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암스테르담은 공항과 시내가 가깝고, 시내에서 특별히 봐야 할 장소는 없었으니까. 운하가 어떻게 도시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지나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 조바심이 났다.


비행기 안에서최신 영화를  편 본 후 잠에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기체는 어느덧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들어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라 창밖은 그저 까맸다.

내가 탄 KLM 항공사 비행기. 네덜란드 항공사지만 지금은 Air France 소속이다.

여권심사를 마치고 나의 행동은 계획대로 진행되어야만 했다. 의 눈은 빠르게 공항 표지판을 훑고 나의 발은 날쌔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기차역에 도착해서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centraal(영어와 달리 a 철자가 2번 반복된다)이란 단어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다행히 해당 플랫폼을 찾았다.

플랫폼에서 발견한 꽃. 누군가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인다.
새벽의 플랫폼. 지나가는 이들은 별로 없다. 있더라도 술에 취한 사람 혹은 불량해 보이는 사람들뿐이다.

기차는 예상한 대로 약 20분 만에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했고, 나는 차가운 새벽 공기를 온몸으로 맞았다. 역 외부에는 부랑자와 불량배로 보이는 이들이 여럿 있었고, 그들을 빠르게 지나쳤다.


암스테르담 시내에 오기 전 위성지도를 봤는데, 정말 '암스테르담=운하'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도시가 온통 하늘색이었다. 그래서 역 외부에 나오면 운하가 바로 눈에 띌 것이라 예상했지만,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반짝이는 호텔의 네온사인이다. 해가 뜨기 전이라 운하는 그저 어둠에 묻혀있었 때문. 50m쯤 앞으로 나갔을 때야 운하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새벽의 암스테르담 운하. 모든 게 적막하다.
비가 투두둑 내리던 날이었다

자전거의 도시답게 자전거 주차장에는 많은 수의 자전거가 있었다. 그곳을 지나쳐 다리 중앙에 섰지만, 엽서에서 보던 그 안개 낀 운하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자전거 주차장에 있는 수많은 자전거들

나는 소설 <전락>의 주인공 클레망스가 등장할 법한 술집을 찾아보려 조그만 다리를 건넜다. 술집이 여럿 있었지만, 새벽이라 가게문은 모두 닫혀있었다.

소설 <전락>에서 주인공은 암스테르담 술집에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는 화자로 나온다.
하이네켄 광고가 붙은 술집

하이네켄 광고가 걸린 술집이 있었다. 만약 그 술집이 열었다면 나는 반드시 맥주를 마셨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술집 종업원에게 맥주는 시키는 상상을 해봤다.


"하이! 네 캔!"


4캔을 달라는 내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한 직원은 하이네켄 단 1 병만을 가져다줄 테지. 


나는 왔던 길을 다시 걸어 중앙역으로 되돌아와서 이번 여행을 갈무리했다. 아주 짧은 여행이었지만 암스테르담의 찬 공기를 마셔 우선 좋았다. 카뮈의 소설 속 배경은 어차피 찾을 수 없는 류의 것이었고, 운하의 안개를 경험해보지 못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위안했다. 이 곳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눈에 담지 않았는가.


짧은 여행에서 모든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리한 욕심일뿐이다. 내가 이 곳에 잠시라도 '존재'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어야 했다.

I am amsterdam. 그래, 나는 이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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