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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Jan 19. 2016

미술 전시회를 하겠습니다

먹고 살 문제는 해결되셨는지요?

주알제리 한국대사님께서 현지 기업인들을 위한 만찬 자리에, 나까지 부르셨다. 구체화된 프로젝트도 없는 상태에서 그런 대기업 대표들과 함께 자리하는 것이 나는 불편했지만, 뭔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고 다른 한국 분들과 좋은 교류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참석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야겠다, 배가 고팠다.


대사관저의 배정된 자리에 앉고 나니, 나는 스스로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았는데 갑작스레 예전 프랑스에 건너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여러 기업인들에 함께 있던 어느 자리에서 있던 일인데,  그때 어떤 이가 내게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하시는지요."

"아, 네. 저는 현재 어학원에서 언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나를 빠르게 지나쳤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기억인데, 내게는 사건 아닌 사건이 되었던 것 같다. 학교에 들어가고나서부터 첫 직장을 다닐 때까지, 남들의 부러움만을 받는 삶을 살아왔던 게 이유라면 이유였으리라. 지금은 그와 같은 일을 겪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을테지만 그땐 그랬다.


맛있는 음식이 계속해서 나오고(어쩌면 음식 양이 적어서,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배가 점점 차오르자(시간이 지난 탓으로 포만감이 오른 것이리라), 약간은 경직됐던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사람들의 담소가 여기저기 이어지던 때였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있던 평소 친하게 지내는 Y씨에게 새해 계획을 농담 반 섞어 이야기했다.


"올해는 알제리에서 미술 전시회나 할까 봐요. 하하하"


나름대로 조용히 얘기했던 건데, 무려 두 자리나 떨어져 있는 곳에 있던 대사님 부인께서 어떻게 내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서는 옆에 계시던 대사님을 툭툭 치시며, '저 분이 올해 미술 전시회를 하신대요'라고 말하시는 게 아닌가. 창피해서 어딘가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장 먹고살아야 할 고민을 해야 되는 동시에 미술 전시회 준비까지 해야 되는 병신년 한 해를 살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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