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rick Oct 18. 2020

나의 세 발 두꺼비, 찡찡이.

이철괴도와 하마선인도_셋손

셋손_이철괴도와 하마선인(유해섬)도_도쿄국립박물관

  동양화에서 ‘하마선인도’는 세 발 달린 두꺼비(하마)와 신선(유현영)이 나오는 그림을 말한다. 그림 속 유현영은 행운과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여겨 신선화 중에서도 잦은 소재였다. 유현영 옆에는 항상 두꺼비가 있는데 주인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데려다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유현영은 다니고 싶었던 곳이 많았던 모양이다. 두꺼비를 도망치지 못하게 두꺼비 목에 재물 운을 상징하는 동전이 끼워진 밧줄을 묶고 다녔다. 그런데 두꺼비도 만만치 않아 탈출에 성공해서 도망 다니기 일쑤였단다. 그럴 때면 유현영은 두꺼비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야 했다. 어쩌면 두꺼비가 도망쳤기에 유현영이 이곳저곳을 그리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도쿄국립박물관에 가면 무로마치시대 화가 셋손이 그린 ‘이철괴도’와 ‘하마선인도’를 만날 수 있다. ‘이철괴도’가 되려면 쇠지팡이를 짚고 호리병을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든 늙은 거지의‘이철괴’로 묘사해야 하는데, 도쿄국립박물관의 ‘이철괴도’는 두꺼비와 같이 그려졌기 때문에‘하마선인도’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정작‘하마선인도’의 제목을 달고 있는 그림은 두꺼비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 이름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순간이동이라는 ‘하마선인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중국에서의 오래전 이야기가 전승되다 보니 이런저런 오류가 생겼으리라. 하여 제목은 다르지만, 두 그림 모두 ‘하마선인도’라 생각하고 그림을 감상하면 좋을 듯하다.

  두 그림을 얼핏 보면 ‘싫다.’라는 거부감이 먼저 든다. 아무래도 유현영의 모습도 너무 괴기스럽고 색감도 푸르딩딩한 것이 우리네가 좋아하는 채색이 아니다. 그건 셋손의 그림만 그런 건 아니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낯섦. 낯선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조금만 마음을 열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자꾸만 눈이 가는 그런 매력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요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공익광고처럼 ‘다르니까 더 재미있는 문화’인 셈.

먼저‘이철괴도’를 보자. 두꺼비가 유현영에게서 막 탈출하는 순간을 그렸다. 두꺼비 입에서 뿌연 빛 같은 것이 나오는 게 어디론가 순간이동 할 태세다. 유현영이 조금 다급해지고 초조해져야 할 참인데, 표정을 보니 ‘헤~’ 하고 웃는 것이 전혀 그런 내색이 비치지 않는다. 유현영에게서‘두꺼비 네까짓 게 도망쳐봐야 부처님 손바닥이지. 가긴 어딜 가.’ 딱 요런 마음이 읽힌다. ‘이철괴도’작품에서 가장 뛰어난 건 그림 가운데에서 오른쪽 끝까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여백이다. 여백이야말로 동양화만이 지닌 아름다움의 핵심인데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오히려 무한으로 공간의 확장성을 느낄 수 있다. 특히나 두꺼비의 순간이동이라는 능력을 생각했을 때 여백은 여러 상상 속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하마선인도’는 얼핏 보면 삐죽이 내민 입에서 사람을 뱉어내는 건가 싶지만 유현영이 ‘뿅~’하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공간이동 한다는 것이 말로는 쉬운 일지만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셋손의 재치가 돋보인다. ‘이철괴도’가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하마선인도’는 무언가를 많이 그리지 않았음에도 꽉 차서 충만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오른쪽 소나무의 줄기가 얽히고설켜 왼쪽 부분을, 중앙으로 쭉 뻗은 가지는 그림의 가운데 위 공간을 채워준다. 왼쪽 아래와 가운데의 바위와 풀을 짙게 그려 무게감을 더하면서 좌우 중심을 잡아준다. 힘들이지 않고 그린 듯싶으면서도 유현영의 의습선(옷 주름)이라던가 바위를 그린 선이 짙어 형태미와 섬세함이 돋보인다.

  두 그림을 함께 보고 있노라면 공간의 비움과 채움이 적절해서 보기 좋다. 게다가 재물운을 가져다주는 유현영 을 악귀같이 그려 괴기스럽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익살스러워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 속 이야기에 푹 빠져 나를 어디든 데려다줄 두꺼비 한 마리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특히나 코로나19로 하늘길이 꽉 막힌 요즘은 더더군다나.이 그림을 만난 것은 2019년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 둘째 찡찡이랑 나는 도쿄 여행을 갔었다. 아내의 제주 출장 비행기를 알아보다 정말 우연히 항공검색 사이트에 ‘도쿄’라는 도시를 검색했다가, 갑작스럽게 ‘아빠 어디가’처럼 둘째와 단둘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 ‘찡찡이’라는 별명답게 우리 둘째는 여행도, 답사도 무척 싫어하고 작은 불편도 징징대는 녀석이라, 단둘이 떠난 여행은 즐겁거나 낭만적이지 않았다. 찡찡이와 둘만의 4박 5일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3일째 되던 날.                                   

억지로 웃음 짓는 나와 찡찡이!

  우리는 이른 아침 서양화미술관을 시작으로 에도성, 과학기술관, 도쿄타워를 둘러보고 신주쿠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쿄 도청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는데, 저녁을 먹을 때엔 정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저녁을 먹으니 힘이 났고 도교 도청으로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역시 몇 걸음 가지 못해 또다시 다리가 후들거렸고 힘을 짜내고 짜내 1시간은 걸어간 듯하다. 밤은 깊었고, 구글맵은 영 딴 길만 알려주어 너무 힘들어서 그만 하루 일정을 끝내고 싶었다. 나도 그렇지만 찡찡이가 더 염려되었다. 결국, 숙소로 돌아가자 찡찡이에게 말했는데 전혀 예상 못 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빠 거의 온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찾아봐요. 그래도 야경은 보고 가야죠.”

  오! 놀라워라. 이건 뭐지? 그동안의 찡찡이가 아니었다. 그날 우린 이십여 분을 더 헤매다 결국 도교 도청을 찾을 수 있었고, 야경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인증샷을 찍을 수 있었다. 그날 나 혼자였다면 과감히 포기했을 거다. 그날만큼 찡찡이는 내게 세 발 달린 두꺼비가 되었고 도쿄 도청으로 날 데려다줬다. 

  언제 다시 찡찡이와 둘만의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날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을 듯싶다. 나의 세 발 두꺼비 찡찡이, 내 인생의 걸음걸음을 움직이게 사랑하는 딸.    


작가의 이전글 얼치기 휴머니스트가 보고 싶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