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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Oct 27. 2020

노름판에서 누가 호구인 줄 모르겠다면?

김득신_밀희투전

김득신_밀희투전_간송미술관 22.4㎝×27㎝


노름판에서 누가 호구인 줄 모르겠다면? 그 호구는 바로 너다.


인생은 한 방이지묻고 따블로 가!”


  재미있는 유행어처럼 인생의 한 방을 노리고, ‘묻고 따블로 가!’ 할 만한 일이 있었던가? 돌아보니 난 그냥 가늘고 길게, 그리고 무난하게 잔잔바리 인생을 살았다. 직업도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 게다가 방학까지 있는 교사. 아파트를 30년 만기 대출받아 쪼들리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월급의 상당 부분을 원금과 이자로 갚으며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다 아주 가끔은 스펙타클은 아니어도 삶의 작은 스크래치 정도는 있어야 좀 인생이 재밌지 않을까? 라며, ‘인생의 한 방’을 찾아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에 함께 볼 그림은 김득신의 ‘밀희투전(密戱鬪牋)’이다. 이름만 들으면 왠지 거창한 그림이 듯싶지만 실상 그림을 보면 단순하게 놀음하는 그림이다. 인생에만 한 방이 있는게 아니라 그림에도 결정적 순간 한 방이 있는 건데, 이 그림은 뭔가 좀 약하다. 영화 타짜에 나오는 그런 멋진 장면이 아니다. 손모가지 하나 걸고, 돈이 아닌 인생을 걸고 도박 한 판 해야 하는데, 그림 속 등장인물들 역시 가늘고 길게 잔잔바리 인생을 살아가는 그런 우리 주변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래도 놀음판이다. 엄연히 이 판에도 호구와 타짜는 존재한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림의 배경은 단출하다. 왼쪽으로 커다란 창이 하나 있고 그림의 다른 곳에 비해 밝은 것을 보니 아마도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방안에는 술잔 하나와 술병만 올라간 작은 소반이 있다. 노름꾼들에게 쥐약은 바로 술이다. 술은 도박을 위한 작은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 거나하게 취하면 제대로 놀음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간단히 잔 하나로 목이나 축이며 돌려 마셨다. 그림의 오른쪽 방바닥에는 작은 그릇 두 개가 있다. 놀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판을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앉아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소변을 보기 위한 요강과 침을 뱉기 위한 타구다. 그런데 좀 멋쩍은 건 요강이 작아도 너무 작다는 것?

  놀음판은 역시 호구 조연에, 타짜가 주인공이어야 재밌는 법. 그리고 호구와 타짜는 기본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분명히 이 그림에서는 왼쪽 뒤편의 앉은 인물이 호구이지 싶다. 인물을 자세히 보자. 18세기 조선에서 멋진 안경을 쓰고 놀음을 하고 있다? 역시 돈 좀 있어 보인다. 표정이 죽상인 걸 보니 패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투전 패를 버리는 오른손을 보니 가느다랗게 그려져서인지 살짝 떨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옛그림 속 손들은 정말 못 그렸다. 

  그렇다면 타짜는 누구일까? 주인공은 얼굴이 생명이다. 오른쪽 뒤편에 앉은 사람이다. 관객들에게 그 면모를 숨김없이 보여줘야 한다. 얼굴은 훈염법(움푹한 곳은 붓질을 거듭하고 도드라진 부분은 붓질을 덜 하는 기법)을 사용해서 이목구비를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한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한 성격 할 것 같아 함부로 할 수 없다. 주인공은 얼굴만 멋져서는 안 되고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술은 기본에서 나온다. 투전 패를 잡은 모양새부터 예사롭지 않다. 가늘게 뜬 눈에 투전 패는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두 손으로 자그맣게 모아 잡았다. 벌벌 떨고 있는 호구와는 다르다. 아마도 날도 샜으니 이번 판에서 마무리 기술이 들어가지 않을까?

  그림 밖에서 그림을 보니 타짜도, 호구도 이렇게 잘 구별된다. 하지만 내가 그림 속 놀음판의 인물들이라면 어땠을까? 타짜에게 기막히게 당하고 털릴 호구는 아니라고 큰소리치며, 오히려 나라고 타짜가 아니라는 법 있냐며 기세등등 놀음판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어느덧 내 나이도 불혹을 반쯤 지나 지천명을 향해 가고 있다. 무탈한 삶을 살아온 것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것이 없었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래, 깃털처럼 가볍게 남은 인생에 선빵 한 번 날리며 ‘한 방 인생’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지금이라도 당장? 뭐? 지금은 너무 늦었다고? 그래, 살아보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것이더라.


■ 참고

김득신이 활동했던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진경시대다. 김홍도와 더불어 도화서 화원으로서 조선후기의 화단을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풍속화로는 ‘야묘도추’가 있으며, 1791년엔 이명기, 김홍도, 신한평 등과 함께 정조어진을 그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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